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36

대한민국 최초 방송 종군기자 한영섭

現職「6.25 참전 종군기자회 회장」韓기자는 95세로 「흥남철수작전」을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산 증인이다. 1949년 2월 공개경쟁시험을 거쳐 KBS 중앙방송국 기자로 들어와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과 함께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국방부를 출입하게 되었다. 6.25가 터지자 방송이 전시체제로 바뀌어 전쟁터를 누비며 취재 활동을 수행했다. 1950년 11월 최전방의 적진을 무너뜨리며 북진하는 UN 한국군 수도사단의 종군기자로 같은 군 트럭에 타고 가던 병사가 적탄에 쓰러져 가는 상황을 체험하며, 자신의 生死를 가늠 할 수없는 속에서 최북단 청진 끼지 진격, 상황을 취재 보도했다. 북진 중 KBS 원산, 함흥, 청진방송국을 보호하며 그 방송시설의 단파방송을 통해 서울 중앙방송국으로 기사를 송고, 어느 종군기..

남산 방송철탑과 타워

1961년 KBS가 TV방송을 실시하면서 남산정상에 처음으로 철탑을 세운이래(본란 27호 참조) TBC, MBC가 TV방송을 실시하면서 이곳에 각기 철탑을 세웠다. MBC·TBC 개국주역 (고)정환옥이 1965년에 결성된 민간방송협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남산에 모든 방송사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종합철탑건립안을 생각했고 1968년 방송사들이 힘을 모아 「한국 전파 탑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뜻을 실천 해 나가기로 했다. KBS가 이 철탑을 활용 10Kw출력을 50Kw로 대폭 늘려 방송한 것은 1971년 8월로 이때부터 방송사들은 해발 479.7m, 동양에서 제일 높은 철탑에서 TV·FM 등을 송수신하게 된 것이다.(537m인「모스크바」탑에 이어 세계 2번째, 도오꾜오 타워는 3백33m). 이 타워는 전파..

호출부호 「HL」과 방송의 날

왼쪽은 1947년 10월 2일 최초로 방송마이크에 부착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呼出符號/Call Sign이고 오른쪽은 1964년 10월 2일 최초로 우리나라 국·민영 방송인들이 함께 만나 진명여고 3·1당에서 연 제1회 방송의 날 기념사진이다. 1947년 미국 애틀랜타 시에서 열린 國際無線通信會議-ITU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선호출부호가「HL」로 결정됨에 따라 대한민국 방송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4년 10월 2일을 방송의 날로 정해서 해마다 행사를 해 오던 중 KBS 공영방송출범을 계기로 1974년 1월 결성된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게 되었고 「한국방송대상」도 함께 시행되었다. 1978년 한국방송협회 총회 결정에 따라 9월3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1948년 8월 15일 광복의 날 방송국에선

사진은 오랜 세월 우리말방송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해방과 함께 우리방송을 이끌었던 중추적인 인물들이다. 조선방송협회, 회장 이정섭·기술부장 한덕봉, 중앙방송국, 국장 이혜구· 편성과장 김 억 · 박경호, 업무과장 김진섭, 방송과장 이계원 등 해방정국을 대표하는 방송인들이다. 모윤숙은 곧바로 방송국을 떠나 정치·외교계로 옮겼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참전하고 두만강을 건너 8월 13일 대 출력 청진방송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에 앞서 8월 11일 아침 문제안 아나운서가 총독부에 들렸을 때 정보과에서 신문·방송을 장악하고 있던 무료바야시(無量林) 가 「조선에 대한 정책이 곧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총독부는 여운형과 안재홍을 찾고 있다.」는 뜻을 비쳐 해방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감..

이승만 국회의장·방송인이 함께 한 헌법서명 기념사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이 제정 공포되던 날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국회의장과 이정섭 조선방송 협회장(우), 홍양명 중앙방송국장 (좌), 송영호 편성과장(뒤)이 함께 한 역사적인 사진이다. 엄복영 회우로부터 강원도 화진포 이승만 별장에 이 사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송현식 회우에게 전했더니 바로 보여주셨다. JODK 마지막 기획과장 이정섭은 해방 후 조선방송협회장(정부수립 후 대한방송협회장)으로 재직하다가 6.25때 납북되었다. 신경(장춘)에서 만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홍양명(洪陽明)은 군정청 초대 이혜구 방송국장에 이어 1947년 8월 15일 2대 중앙방송국장으로 취임 정부 수립 때까지 재직했고 6.25때 납북되었다. 1938년 아나운서로 입문한 송영호는 (송현식 회우 부친) 해방 후 ..

6.25 마지막 방송과 김현수 대령 순직

1950년 6월 27일 밤 9시 이후의 방송은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급박한 상황에 대전방송국에서 보내온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방송·전황·행진곡·애국 시 등으로 이어지다가 12시에 마치고 방송 거부 장치를 했다. 한강건너 영등포 우체국에서 방송 할 예정으로 비상 방송기기를 트럭에 싫고 새벽 2시 10분경 방송국을 출발했다. 2시30분경 한강교에 도달했으나, 이미 자동차가 한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름비가 내리는 칠흑 같은 밤, 자동차에서 내려 8명의 방송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한강교를 막 건넜을 때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울렸다. 그 폭음이 한강 폭파 음이었다는 것을 한 것은 뒷날이었다. 관악산을 넘어 안양에 도착해서 7시경 라디오 다이얼을 맞추니 뜻밖에도 행진곡이 방송..

동요의 기원 「반달」과 방송

2024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시험방송 전파가 발사 된지 100년임과 동시에 동요 100년을 맞는다. 이 땅에 방송과 동요는 시발점을 같이하고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 방정환선생님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색동회를 결성하면서(어린이 날 기원이 1923년이라고도 하는데 KBS에서 올해 어린이 날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어서 여기에 따름) 일본 유학중인 윤극영을 찾아 동요 제작과 색동회에 참여 해 주도록 부탁한다. 그로부터「반달」이 탄생하고 방정환 창간 「어린이」잡지에 실려 1924년10월 20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때 어린 학생 이정숙의 목소리로 부른 반달을 사우회 사이버 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다.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은 시험방..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아나운서(尹吉九)

방송을 소리로만 듣던 시절! 방송인들의 모습은 상상의 나래를 폈다. 방송을 들으면서도 어떤 분이 어떤 모습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일까? 늘 궁금했다. 방송의 별이라고 일컬었던 윤길구 아나운서 손주 윤병주님께서 보내주신 특이한 두 장의 사진을 골랐다. (좌) 는 1943년 입사당시이고 (우) 는 6.25 피난 시절 부산방송 스튜디오에서다. 특이한 군복차림! 윤길구 아나운서는 전쟁 중 대부분 이 옷을 입고 살았고 그래서 자주 話題에 올랐다. 여름에도 왜? 그런 옷을 입느냐고 물으면 "더운 날에도 이런 옷을 입어야 더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면서 유머러스하게 넘겼고 더운 날 식사를 하면서 옷을 벗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도 벗는 법이 없었다. 실은 內衣를 입지 않아서 옷을 벗을 수 없었을 것이라..

KBS 한국방송공사 창립

2022년 3월 3일은 공사창립 49주년이다. 오른쪽 사진은 공사창립식이 있던 날 임원과 사무관급 이상 간부들이 함께 한 사진으로 KBS사우회 사이버 박물관에 그 성함이 기재되어 있다. (전영효 회우제공) 1970년대 들어 KBS가 더 이상 국영방송으로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1971년 공영방송의 꿈을 안은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이 취임하면서 공사추진이 급물살을 탔다. 최창봉 중앙방송국장 영입과 노정팔 방송관리국장 임명으로 실무진을 갖추어 공사창립 계획을 추진, 1972년 12월 30일, 한국방송공사법이 공포되었다. KBS 유 일봉 기획 조사실장과 민 두식 서무과장을 반장으로 8명의 실무반이 편성 된 것은 1973년 1월 10일경이었다. 실무 반은 공사 창립과 동시에 시행될 기본규정과 예산을 편성하..

그때 그 방송기술인들 1960-70년대

사우회 정근춘 회장께서 언젠가 저에게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아랫부분이 다 달아나버렸다”고 그러더군요. 보내 봐라 해서 살펴봤더니 아랫부분이 달아난 것이 아니고 이게 다 눈이에요. 길도 없는 눈밭을 개를 앞세워 장비를 싣고 가는 거죠. 고지의 송신소에 사고가 나면 인근의 10만 명이 TV를 못 보게 되요. 그러면 이렇게 짐을 싣고 가서 고쳤던 거죠.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이기에 다 그런 줄 알아요. 그래서 “세상에 이런 일 안 겪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하죠. “당신들이나 겪고 당신들이나 알지 그걸 누가 아냐.”고. 기억되어야 할, 한국방송의 역사니까요. KBS가 발행한 공영방송 제5호 (2015년 12월 30일) 「김동식의 마이크를 끄고」에서 필자와 인터부한 글 일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