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9 강영숙 아나운서

이장춘 2024. 9. 16. 12:40

 

1.새해 새아침 첫인사 방송 1956년

2.KBS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3.KBS-TV 「누가, 누가 잘하나」첫 사회 1965년

4.최초 여성 스포츠 중계방송 1964년 도쿄 올림픽

5.여성 방송인회 결성(회장) 청와대 방문 1967년

6.서울시 문화상 수상 1968년

7.「禮智院」 개원(원장) 1974년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공개방송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그 시대를 사시던 분들은 강영숙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영숙은 시사뉴스·교양·대북방송 등 방송 전 분야에 걸쳐 능수능란했다. 어린이 방송에서 간지러울 정도의 따스하고 달콤함을, 대북방송이나 뉴스해설에서는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강영숙이다. 이 강영숙 아나운서가 2024년 9월 11일 향년 93세(1931년 생)로 영면하셨다.

부산 피난시절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도 기회 될 때마다 방송에 참여했고 서울 환도 후 1954년 아나운서 공개채용시험에 합격 아나운서 꿈을 이루었다.

여성 아나운서가 결혼을 하면 방송국을 떠나야 했던 시절, 그를 아끼던 방송 최고 책임자 오재경 공보실장은 결혼 후에도 아나운서 직을 계속토록 한다면서 당시의 보도실 내신부장 ‘한영섭’을 알선해서 둘의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둘째 아이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의 아나운서 생활이 어려움을 인지하고 고등하교 선생님 길을 택했을 때, 그때 발족한 MBC는 강영숙의 재능이 절실히 요구되어 신생 MBC에서 아나운서 생활이 재개되었다. 여성으로는 최초로 스포츠 중계방송 석에 앉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실장이 되었다. 육영수 여사와의 깊은 인연으로 「禮智院」창설을 제안 받고 1974년 「禮智院」을 창설했다. 국무총리 가족을 비롯해서 모든 공직자외 그 가족은 출국하기 전 해외 채류기간에 지켜야 할 예절교육을 받고 출국하도록 해서 국위선양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35만 여명이 예지 원을 거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