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4우리나라 「교향악단의 기원」

이장춘 2024. 6. 16. 12:13

1.초기 KBS교향악단 (단장 임원식) 2.1957년 12월 남산 KBS 낙성 기념연주(중앙방송국장 이운용, 지휘 임원식) 3.1958년 동남아 순방예술사절단, 원안 단장 김백봉, 작가 김영수, 교향악단 단장 임원식 (제공 고 박상진) 4.1962년 5월 2일 제1회 국제음악제, 교향악의 밤, 지휘 안익태

 

2024년 3월 29일 역사적인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 연주회가 열렸다.

이 교향악단은 90년을 거슬러 올라가 홍난파가 주축이 되어 1935년 4월 13일 JODK오케스트라 결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전에도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악단이 있었지만 실내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JODK오케스트라를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

30명 내외의 단원으로 방송국의 양악은 이때부터 그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1941년 홍난파가 세상을 뜨면서 계정식이 지휘를 맡고 악장으로 있던 김생려가 운영을 맡았지만 곧이어 제2차 대전이 일어나, 교향악단은 망가지고 관현악단 수준으로 운영되다가 해방되면서 아예 해체되고 민간이 운영하는 고려교향악단이 탄생했다. 이 악단은 어려움을 겪다가 1948년 10월 24일, 25일, 「시공관」에서 김인수(金仁洙) 지휘로 개최된 제26회 정기연주회를 마지막으로 해체, 곧 6.25가 일어나 교향악단의 공백상태가 되었다.

1956년 7월 공보실장이 된 오재경은 KBS교향악단(KBS Symphony Orchestra) 창설에 힘을 기울여 6.25전쟁기간 중 부산에서 육군 교향악단을 창설 운영했던 임원식을 단장으로 9월 1일 창단 12월 20일 역사적인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그로부터 68년이 지난 올 3월 29일 800회 기념연주회를 갖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57년 말 KBS가 남산에 새로운 연주소를 마련하면서 연주활동이 원활해졌고 국내공연 외에도 1958년 한미친선음악회, 3개월간에 걸친 동남아 순회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 했다. 1962 5.2. 안익태 초청 제1회 국제음악제를 열어 교향악의 밤에 출연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69년 문화공보부 소관으로 이관되어 국립교향악단으로 활동한 후 1981년에 다시 KBS소속으로 변경되었다. 2012년에는 전문예술경영형태인 재단법인으로 출범했으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경영체제를 갖춘 현 모습으로 탄생했다.

1956년 교향악단 창설멤버로 생존하신 분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음악평론가 이상만 선생님께서 국내에는 이재헌( 이방에서 함께 하시는 50년대 여성아나운서 김경숙 선배님 부군) 안용기, 미국에 원경수 이렇게 세분이 살아 계신 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