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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瑞草)을 떠나면서

서리풀(瑞草)을 떠나면서 2024년 10월 서리풀 공원에서 본 서초대로와 테헤란로 아침 정경입니다.가까이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단지와 멀리는 잠실 롯데타워가 한눈에 들어옵니다.그 너머로는 바다의 수평선에 구름이 섬들처럼 펼쳐져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상케 합니다.제가 2003년부터 21년간을 살아온 서리풀을 10월 13일, 21년 만에 떠납니다.블로그 춘하추동방송은 서리풀(瑞草)의 흔적입니다.불로그에 올라있는 4,000여 편의 글, 유튜브, 네이버, 다음에 올라있는 1,000 여 편의 동영상은 이곳 서리풀에서의 21년간의 흔적입니다.길고 긴 세월 관심 가져주시고 지원해 주시며 키워주신 선배님, 동료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제가 옮기는 곳은 충청남도 KTX 천안 아산 역 신도시입니다.제가..

회원님과 함께 2024.10.08

일제 강점기 방송인 지하 독립운동 목숨 건 短波放送 海內·外 連絡

사진 설명1. 단파방송 연락 계통도2. 옥중 사진 : 송진근, 허헌, 송남헌3. 勿忘碑 제막기념 사진4. 勿忘碑 제막5. 물망비의 의미 (동판)6. 73회 순국선열의 날 애족장 수상 이근창 이 글은 2024년 7월호에 발행된 문화회보 통권 제 77호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에서 단파방송으로 들려오는 이승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피가 끓어오르고 정규방송대신 이 방송을 중계방송 하고 싶은 생각이 지배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고 성기석이 쓴 효암행장기에서 인용한 글이다. 「단파방송 수신사건」· 「단파방송 밀청사건」방송인을 비롯한 관련자 350여명이 경찰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받으며 조사가 이루어지고 6명의 獄死者를 포함 75명 이상이 형을 살았던 이 운동은 일제강점기 말 「조선어학회 사건」과 함께 가장..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9 강영숙 아나운서

1.새해 새아침 첫인사 방송 1956년2.KBS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3.KBS-TV 「누가, 누가 잘하나」첫 사회 1965년4.최초 여성 스포츠 중계방송 1964년 도쿄 올림픽 5.여성 방송인회 결성(회장) 청와대 방문 1967년6.서울시 문화상 수상 1968년7.「禮智院」 개원(원장) 1974년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공개방송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그 시대를 사시던 분들은 강영숙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영숙은 시사뉴스·교양·대북방송 등 방송 전 분야에 걸쳐 능수능란했다. 어린이 방송에서 간지러울 정도의 따스하고 달콤함을, 대북방송이나 뉴스해설에서는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강영숙이다. 이 강영숙 아나운서가 2024년 9월 11일 향년 ..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8 방송문화상 -> 한국방송대상

1.제1회 방송문화상 수상자 (좌로부터 한갑수·최요안·성경린·장민호·이종훈·장기범)2.방송문화상 시상식 (고 박상진 제공)3.한국방송대상(최초의)시상식(대한민국 방송 상 4회) (고 유병은 제공)4.제38회 한국방송대상 시상5.특별공로상 수상자 (홍두표·안국정·여운계) 올 61회 방송의 날을 계기로 51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이 있다.한국방송대상이 시행되기 전 최초의 방송인 대상 연례행사로, 방송문화상 시상식이 1958년 8월 16일 남산 연주소 제1스튜디오(공개홀)에서 있은 후 1968년까지 시행되었다. 교양, 문화, 음악, 보도, 연기, 기술 등 각 분야별로 연간 6-7명을 선발 시상하면서 방송계의 큰 행사로 치러졌다. 조풍연·이흥열·장기범·김희창·복혜숙·성기석·장사훈·김영수·이혜경·이인관·임택근·조남..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7방송 할머니 卜惠淑(복馬利)

사진설명1. 시험방송 시절(1925년) : 방송극 출연2. 정동 시절(1956년) 우상 방송출연(서월영과), 좌하 방송인들과3. 남산 시절(1958년) 방송드라마 출연 4. 성우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1957년   「내가 연극이며, 영화에 데뷔 하던 시절, 우리나라에는 첫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나는 그 시험방송에서부터 참여 해 내 딴에는 최초의 레코드 취입 최초의 방송출연 기록을 세웠다」1981년 5월 13일 동아일보에 실린 「나의 交遊錄」 시작 말이다. 1904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복혜숙은 1925년 시험방송시절 최초의 방송극「새벽종」출연으로부터 1981년까지(1982년 10월 5일 사망) 라디오 방송·가수·연극·영화·TV탤런트 등 그의 행적과 그가 남긴 기록은 이 나라 방송사에서 매우 중시되..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춘하추동방송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춘하추동방송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신 분들이 많아 옛날 다음에 올려드렸던 제 소개 글을 다시 올려드립니다. 이곳을 찾아 주시고 평소에 저와함게 얘기를 나누시면서 뜻을 같이 하시는 분, 그동안 제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시고 많은 자료제공과 조언을 해 주신분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신 국, 내외 동포들 이 난을 통해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드리며 늘 건강하신 가운데 오래 오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늘 아껴 주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시던 선배님들과 동료, 후배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정성을 쏟아보려는 마음입니다. 수정해야 할 사항이나보완해야 할 사항 등을 비롯해서 계속적인 충고와 격려, 사랑으로 대해주실것을 간곡히 부탁 올립니다.   2005..

회원님과 함께 2024.07.07

이장춘의 수석! 壽石-나의 애장석 愛藏石

33*13*10 (단위 Cm, 길이, 높이, 측면)벌써 50년이 지난 일이다.그때 수석 붐이 일어       본인도 명석을 찾아 낙월도, 남한강, 섬진강 등 명산지를 찾아 다녔던 적이 있다.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고 전시회 출품을 한 적도 있으며 좋은 작품을 매입하기도 했다.수석! 壽石-나의 애장석 愛藏石  그리 저리 150점 정도가 모아졌다. 세월이 지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또 남한강 등 명산지가 물에 잠기며 수석 애호가들이 줄어들면서 본인의 수석활동은 뜸 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 그때  수집한   수석을   감상하다가 몇 점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17*8*8전옥배 선생님 애장석으로 저에게 넘겨 주셨다.  전옥배 선생님은1975년 KBS광주방송국장으로 부..

우리집 얘기 2024.07.07

맹관영 화백 · 채희문 시인의 交遊錄

아나운서 출신 맹관영 화백 (대한민국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장)께서 2024년 6월 27일 한국아나운서 클럽 카톡 방에 위·아래 그림과 함께 사연을 올리셨기에 사연이나 그림이 마음에 닿아 기록보존을 위해 옮겼습니다.   맹관영 화백 · 채희문 시인의 交遊錄   지난주에, 觀峰 이 계진 회장님 덕분으로,70여년 만에 옛 친구 蔡熙文 詩人과 연락이 돼서, 그제, 내게 자기의 마지막 詩集이라며, 한권을 보내왔는데, 뇌졸중으로 8년이나 불편한 투병생활을 해서 그런지, 마치 遺詩처럼 처연한 느낌이 들더이다.그래서 그중에 한편을 골라, 내가 그림을 그려서 詩畵 한 점을 膳物 했는데, 신혜경의 이모부 이기도한, 蔡熙文 詩한편 감상 하시죠!오래 運身 못하는 詩人이,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 광활한 하늘을 마음껏 날기를 ..

회원님과 함께 2024.06.27

방송인 전미리님과 해금강

전미리님!  초기 mbc에서 근무하시다가 미국에 건너가 오랜세월 그곳에서 활동하시며 최근에는 한국아나운서 클럽 카톡방에 의미있는 글과 미국의 풍물사진을 자주 올리고 계신다. 2024년 6월 24일 6.25를 하루 앞둔 날 위 사진과 함께 다음 글을 올리셨다. 사진도 의미가 있고 글도 마음에 와 닿아 이곳에 기록 보존을 위해 올렸다.  '73년 전 제가 마지막 놀던 바닷가입니다그날 나는 앞에 보이는 작은 섬과 멀리 보이는 구 선봉 사이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머리 위에서 고음과 함께 구 선봉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까만 비행기 북진을 위한 전투기였던 것입니다. 그날부터 피난길은 시작 되었습니다나는 태어나서 부터 그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해당화 향기 와 갈매기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회원님과 함께 2024.06.25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6-KBS 순직방송인 1호 이성실(기술)

1. 이성실과 묘비 문2. 장례식 추도 장면(중앙방송국장 노창성)3. KBS 동료 직원들 묘소참배(사망 1년 후)4. 이성실 마지막 모습(1951년 3월 10일, 제주방송국 500W 출력증강 송신기 설치) 「마지막 1초까지 나리위해 바친 / 순직청년 李成實이 여기 누었다.송신기를 고치던 손이 감전돼 / 스물 세살이 꽃봉오리 모양 꺾였다.자유의 소리 大韓과 함께 영원히 있을 그대 / 동지들의 꽃다발을 안고 고이 쉬시라. 」 단기 四二八五년 칠월 일동료직원이자 시인 노천명의 글로 새겨진 이성실의 묘비 글이다. 당시 이성실의 부산일보 訃告 원문을 옮긴다. 本局 局員 李成實技士는 단기 4284년 7월 29일 오후 6시 15분 순직하였기에 玆以訃告공보처 방송국장 盧昌成, -중략- 장지 釜山市 共同墓地/葬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