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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 어린이날과 경성방송국

시험방송 때부터 「육아강좌」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방정환은 개국 다음날인 17일 "兒童과 職業"이라는 제목으로 경성방송국 정규방송에 출연한 최초연사다. 천제적인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릴 수도 있는 재능을 지닌 방정환이 있는 곳에는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였고 방송전파를 타면서 역량은 한층 더 발휘되었다. 1899년에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선린상업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총독부 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만두고 1917년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가 되면서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해서 활동했고. 보성전문학교 재학중 3·1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22년 5월 1일, 서울 안국동 천도교 광장에서 「어린이날」 첫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

스포츠 중계방송 개척자 박충근 아나운서

박충근 아나운서는 축구·권투실황을 우리말로 중계방송 한 최초 아나운서다. 1920년대 김영팔 아나운서로부터 시작된 야구와 함께 세 종목만 중계방송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법학도 출신 이었지만 학창시절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중계방송 연습에 열중했고 1931년 방송국에 입문해서 그 꿈을 펼쳤다. 이때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등 32명이 응모, 「박충근」한사람만 합격해서 1936년 9월까지, 경성방송국과 부산방송국 개국아나운서로 활약했다. 이중방송으로 우리말 전담방송을 시작 할 무렵에는 스포츠와 연예오락을 중시하던 때라 제2방송에는 축구·야구·권투 중계방송프로그램을 자주 편성해서 스포츠 붐을 일으켰는데 그 스포츠열기를 확산시킨 주인공이 바로 박충근 아나운서다. 참고로 권투중계방송 기원이 언제인가? ..

최초의 편성원 최승일

최승일(崔承一)은 경성방송국 시험방송시절 이옥경이 입문하기 전까지, 오직 한사람밖에 없던 방송요원으로 최초의 편성원이자, 아나운서, 방송극 작가 · 연출가였다. 최초의 공모 아나운서 마현경의 남편이고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있게 한 주인공으로 5남매의 큰오빠이며 그 시절의 아나운서 김영팔은 둘도 없는 친구로 그를 아나운서로 영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최고 반열에 있던 文士로 그가 쓴 많은 글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오고, 최승일이 제작한 최초의 방송극 「새벽종」에 출연했던 복혜숙의 회상기 등이 있어서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동생 최승희, 妹弟 안막 등과 월북 북한 핵심부에서 활동했다는 아쉬움이 있고 그로 인해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