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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봉 초기사진

한덕봉은 한국인 최초의 사설무선 전신통신종사 1급 자격을 취득한 (1922년 7월8일) 무선기술자로 일본 무역선을 타고 세계를 누비던 항해사였다. 그런 한덕봉이 1924년 12월 수많은 인사들의 환영을 받는 가운데 제물포항을 통해 입항하면서 앞으로도 배를 더 타겠다고 했지만 다시 출항하지 않고 시험방송을 하던 경성방송국 설립에 참여해서 1950년 6.25전쟁으로 납북 될 때 까지 방송기술을 이끌었다. 위는 1933년 새로 준공된 연희송신소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1931년 12월14일 무선통신사1급 자격검정합격증(일본 체신성)이다. 필자가 사우회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전영효 회우로부터 한덕봉 후손이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KBS박송박물관 준비요원으로 있던 서용석학예사에게 얘..

우리말 전담방송 초기방송인들

二重放送 실시를 위한 인원을 확충하고 1932년 10월 경성방송국 현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당대 최고 문화예술인 반열에 있던 윤백남이 「제2방송과장」으로 영입되고 이혜구·異하윤·최아지·김문경이 공개시험을 통해서 채용되었다. 사진 중 박충근 · 남정준은 1931년부터 근무하던 아나운서이고 그 외의 인물은 일본인이다. 이혜구는 연예, 이하윤은 교양프로그램을 편성제작해서 지금으로 보면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 이혜구는 김성호 회우의 인물탐구에서 자세히 설명되었고 이하윤은 방송국 퇴직 후 오랜 세월 학계에서 명성을 떨쳤다. 최초의 방송과장 윤백남과 축구중계방송의 원조 박충근은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쓸 예정이다. 「KBS사우회 사이버박물관」 참조

최초의 방송소 (송신소) 연희와 二重放送

1933년 4월 26일! 고양군 연희면에 새로운 방송소를 설립, 출력을 1Kw에서 10Kw로 대폭 올리고 우리말·일본어 방송을 각각 다른 채널에서 방송하기 시작한 날이다. 이 사진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엽서다. 처음 1,400 여대가 보급된 라디오를 기반으로 방송을 시작했지만 수신기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청취범위가 좁고 수신기 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조선어 방송에 대한 차별편성으로 조선인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의 요인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특단의 조치로 50만원의 기채를 받아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전국적인 조직「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로 개편하고 출력증강과 二重방송을 실시하면서 부산, 평양, 이리, 함흥 등 전국적인 방송망 확장에 나섰다. 이때 설립된 연희 송신소는 1971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