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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부호 「HL」과 방송의 날

왼쪽은 1947년 10월 2일 최초로 방송마이크에 부착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呼出符號/Call Sign이고 오른쪽은 1964년 10월 2일 최초로 우리나라 국·민영 방송인들이 함께 만나 진명여고 3·1당에서 연 제1회 방송의 날 기념사진이다. 1947년 미국 애틀랜타 시에서 열린 國際無線通信會議-ITU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선호출부호가「HL」로 결정됨에 따라 대한민국 방송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4년 10월 2일을 방송의 날로 정해서 해마다 행사를 해 오던 중 KBS 공영방송출범을 계기로 1974년 1월 결성된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게 되었고 「한국방송대상」도 함께 시행되었다. 1978년 한국방송협회 총회 결정에 따라 9월3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이승만 국회의장·방송인이 함께 한 헌법서명 기념사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이 제정 공포되던 날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국회의장과 이정섭 조선방송 협회장(우), 홍양명 중앙방송국장 (좌), 송영호 편성과장(뒤)이 함께 한 역사적인 사진이다. 엄복영 회우로부터 강원도 화진포 이승만 별장에 이 사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송현식 회우에게 전했더니 바로 보여주셨다. JODK 마지막 기획과장 이정섭은 해방 후 조선방송협회장(정부수립 후 대한방송협회장)으로 재직하다가 6.25때 납북되었다. 신경(장춘)에서 만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홍양명(洪陽明)은 군정청 초대 이혜구 방송국장에 이어 1947년 8월 15일 2대 중앙방송국장으로 취임 정부 수립 때까지 재직했고 6.25때 납북되었다. 1938년 아나운서로 입문한 송영호는 (송현식 회우 부친) 해방 후 ..

6.25 마지막 방송과 김현수 대령 순직

1950년 6월 27일 밤 9시 이후의 방송은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급박한 상황에 대전방송국에서 보내온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방송·전황·행진곡·애국 시 등으로 이어지다가 12시에 마치고 방송 거부 장치를 했다. 한강건너 영등포 우체국에서 방송 할 예정으로 비상 방송기기를 트럭에 싫고 새벽 2시 10분경 방송국을 출발했다. 2시30분경 한강교에 도달했으나, 이미 자동차가 한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름비가 내리는 칠흑 같은 밤, 자동차에서 내려 8명의 방송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한강교를 막 건넜을 때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울렸다. 그 폭음이 한강 폭파 음이었다는 것을 한 것은 뒷날이었다. 관악산을 넘어 안양에 도착해서 7시경 라디오 다이얼을 맞추니 뜻밖에도 행진곡이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