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향림 (박억별, 박정림) 봄사건 김해송과 함께 박향림과 김해송이 함께 부르는 봄사건! 정겹고도 흥겨운 노래다. 당대의 만능연예인 김해송 (김송규)이 스스로 작곡한 노래를 가수로 새롭게 힘친 발돋움을 한 박향림과 함께 부른 이 노래는 그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던그 무렵.. 방송음악 백년 2015.03.31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4 ) 김영우 아나운서 미국에서의 방송 네 번째 글이다. 1975년 미주방송협회 창설로부터 2001년 까지의 삶의 얘기가 담겨있다. 이 기간에 방송뿐만 아니라 비디오광고제작, 관광지 촬영 등 여러 일을 했지만 방송이 생활의 중심이고 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셨다. 그때 더 많은 일들을 하고.. 기본 2014.03.28
잘있거라 단발령, 장세정노래 조명암작사, 김해송 작곡, 김명희님 70년 추억 1940년에 당대 최고 작사가, 작곡가, 가수가 힘을 모아 1940년 만들어진 노래로 오랜 세월 불려왔다. 식민지 시대의 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 노래는 해방되면서 마음껏 불렀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이 세분과 연계된 노래는 해방공간에서 그리도 많이 불리던 노래였다. 올해 89세의 김명.. 방송음악 백년 2014.02.18
이난영 김해송가족과 가요 노래 남행열차 김해송 : 이난영 부부와 그 가족, 오빠 이봉룡과 딸 애자, 민자, 숙자로 구성된 김 시스터즈, 아들 보컬그룹 김 보이스 한 가족처럼 살았던 남인수, 이난영, 남인수가 스타로 크는데 크게 기여한 박시춘, 손목인, 김해송의 수제자 손석우, 그리고 이난영과 친 자매처럼 지냈던 신 카나리아, .. 방송음악 백년 2013.11.30
작사가 조명암과 그의 노래 모음 ◆동방의 태양을 쏘라◆ 22살의 젊은 청년 조명암의 작품이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당선 되면서 혜성같이 나타나 그로부터 주옥같은 가사를 썼다. 박시춘, 손목인, 전수린 등 당대 최고 작곡가들이 그가 쓴 가사에 곡을 붙였고 이난영, 남인수, 이화자, 황금심, 장세정, 송민.. 방송음악 백년 2013.02.12
이서구님이 쓴 1930년대의 유행가수들과 노래, 왕수복 신방아 타령 1930년대 경성방송국에 근무하셨던 이서구 (李瑞求) 선생님은 방송일 뿐만 아니라 신문사나 잡지사등에 많은 글을 기고해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시절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되어서 방송은 전파와 함께 날아가면그만이지만 활자나 레코드는 오랜세월 기록으로 남아서 후세.. 방송음악 백년 2012.12.09
장세정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무대, 노래 연락선은 떠난다. 데뷔곡 1936년 4월 10일 조선방송협회 평양방송국 개국무대에서 예쁜 모습에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10대 중반의 소녀가 기가 막히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철 오케이 (OK) 레코드 사장에게 픽업되어 전속계약을 맺고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평양방송국 무대에서 부른 노래가 .. 방송음악 백년 2012.11.21
신 카나리아 (신경녀)의 삶과, 노래 나는 열일곱 살 이예요 늘 열일곱 살의 소녀같이 살았던 가수 신 카나리아! (본명 신경녀), 제일 오랜세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신 카나리아! 1912년에 태어나 1928년 17살의 나이로 데뷔곡 뻐꾹새를 부르며 시작된 노래인생은 너무도 잘 얄려진 왕수복, 이난영 보다도 더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2002년 추.. 방송음악 백년 2012.02.15
동영상 최초의 TV방송 HLKZ 1956년그때 그 얘기 동영상, 최초의 TV방송 HLKZ 1956년 그때 그 얘기 일본에서 무선전파를 공부했던 천재 방송기술자 황태영님이 연희 방송소의 동양에서는 중국다음 두번째로 50Kw라디오 송신기를 설치 가동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20대의 젊은 나이에 한국인이 감히 넘보지 못하던 이리방송국 기.. 민영방송 2009.07.03
최초의 TV방송국 HLKZ개국 그때 그 얘기 (1) 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1) 1956년 5월 12일 최초의 TV방송 실시 ! HLKZ라고 불렸던 이 방송은 상업방송으로 시작해서 잠시 방송을 실시했지만 재정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화재로 인해서 방송사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재기할 길이 없어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민영방송 200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