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잘있거라 단발령, 장세정노래 조명암작사, 김해송 작곡, 김명희님 70년 추억

이장춘 2014. 2. 18. 18:40

 

 

 

1940년에 당대 최고 작사가, 작곡가,

가수가 힘을 모아 1940년 만들어진 노래로

 오랜 세월 불려왔다. 식민지 시대의 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 노래는 해방되면서 마음껏 불렀다. 노래뿐만

 아니라 이 세분과 연계된 노래는 해방공간에서 그리도 많이

불리던 노래였다. 올해 89세의 김명희 여사가 전화에 대고 

노래 한곡을 불렀다. 지금 듣고 계시는 장세정의 “잘 있거라.

단발령”을 89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신다. 웬일인지 여쭈어 보았다.

 

 

잘있거라 단발령, 장세정노래, 조명암작사, 김해송 작곡, 김명희님 70년 추억

 

 

1945년 해방되어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들이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오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분들을 위해 부산 영도다리 부근에 수용소를 만들어 천막집에

거적을 깔고  기거하면서 주위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는데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 이 노래를 부르신다는 것이다.   20세의 김명희 여사님이 

서울 보광교회 ( 2013년 100주년을 맞음) 합창단과 1945년 해방직후에 결성된

 “조선 재외 전재동포 구제회 (朝鮮 在外 戰災同胞 救濟會)”  봉사단원으로 부산에

가서 일본에서 돌아와 오고 갈 곳 없어 수용되어 있는 동포들을 위안하기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노래와 춤 연극 등으로 즐거움을 안겨 주기도

 하는 등 활동을  하던 중 이  “한 많은 단발령  ( 잘있거라 단발령 )”이나

“목포의 눈물”을 부를 때, 또 연극 “김수일과 심순애”을 공연 할 때는

감회에 젖어 눈물 글썽이던 그때 그 동포들의 모습이 70년이

 더 지닌 지금도 끊임없이 머리에 스쳐가고 이 아름다운

 노래가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지금도 입버릇

처럼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때 그 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 왔으며

 또 그 자손들은 어찌 사는지 지금도 그 분들이 살아

계신다면 그때의 그 노래, 그 연극을 재현 해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미주방송인회 양방수 총무국장님께서 김명희 여사님 남편 유석진박사님이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장으로 활동했다는 글을 보내 오셨다고 했더니

 그때의 추억담을 한 시간 넘게 얘기 하시며 양방수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도 하신다.

김명희 여사님의 70년 넘은 추억담을 들으며 장세정이 불렀던 노래를 전화로 들려

드렸더니 “그거 내가 부른 노래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어쩌면 전화로

울려오는 김명희 여사님 노래 음성이나 흐름이 지금 들으시는

 장세정 노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있거라. 단발령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장세정 노래

 

 

한많은 단발령에 검은머리 풀어쥐고

한없이 울고간다 한없이 울고간다.

아 ~아 아 아 정든 님아 잘 있거라.

 

두눈에 피가흘어 시들어진 진달래는

한많게 붉었고나 한많게 붉었고나

아 ~ 아아아아 정든님아 잘있거라

 

단발령 참나무에 붉은댕기 풀어걸고

마즈막 울고간다 마즈막 울고간다

아 ~ 아 아 아 정든님아 잘있거라

 

 

장세정 노래 더 보기

 

 

장세정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무대, 노래 연락선은 떠난다. 데뷔곡

http://blog.daum.net/jc21th/17781504

 

장세정의 생애와 노래 역마차

http://blog.daum.net/jc21th/17780830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잘있거라 단발령 장세정.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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