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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4 )

이장춘 2014. 3. 28. 12:17

 

 

김영우 아나운서 미국에서의 방송 네 번째

글이다. 1975년 미주방송협회 창설로부터 2001년

까지의 삶의 얘기가 담겨있다. 이 기간에 방송뿐만 아니라

비디오광고제작, 관광지 촬영 등 여러 일을 했지만 방송이 생활의

중심이고 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셨다. 그때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뒤로도 13년간 일을 더 하고  2014년

 2월 12일 은퇴 하셨다. 2001년 이후의 얘기는 다음 기회를

기약 하면서 오늘은 2001년까지의 얘기를 한다. 내용은

음향과 동영상에 사진을 올려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다른 몇 가지 얘기를 더 쓴다.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 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4 )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미국 LA,

 김영우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 한편이 왔다.「이

국장님의 Site에 올린 그림과 글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지난번 불로그에 실린 글 중 "민재호 선생님 음성과 가수 백년설씨의

 대담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국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백년설 씨의

 "번지 없는 주막" 제작 당시의 이야기는 그 분 생애의 처음 녹화된 화면일 것입니다.

민재호 선생님이 북가주 몬태리 (필자주 : 새크라 맨토로 이전하기 전 캘리포니아

수도 Montrey) 에 계실 때 "스트록"으로 부자유스러웠던 상황에서도 몇

말씀 해주셨던 그 당시의 그 음성 잊혀지지 않습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어렵던 시절 미국으로

가신 분들이 많았다.  KBS에서 VOA에 파견되었던 아나운서

6분 가운데 초기 장기범, 강익수, 강찬선 아나운서는 국내에 돌아와

 방송을 하면서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뜨셨지만 그 뒤에 간 송한규, 김영호,

이광재 아나운서는 결국 미국에서 자리 잡았다. 이광재 아나운서는 LA에서

방송활동을 하다가 영면했고 김영호 아나운서는 미국 동부에 산다. 송한규

아나운서는 소식을 모른다. 이 밖에도 홍양보, 위진록, 이계원, 민재호, 

황재경, 호기수 아나운서 등 여러 아나운서들이 이러

저런 인연으로 미국에서 살았다.

 

보이던 연예인들이 안 보인다. 싶으면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백년설,

장세정, 심연옥, 조미령, 송민도, 박재란, 구민, 오정한,

천선녀, 임옥영, 유병희, 송춘희, 최선미 등등 그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연예인들 역시 수없이 많다. 이분들 얘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동요의 산 역사 안병원, 권길상 등 알고 싶었던 얘기, 미국에서 있었던

 한인독립 운동사나 삼일여성동지회 소식 등을 비롯해서 한인사회의 

움직임을 김영우 아나운서의 자료나 미주방송인협회 소식을 통해서

 알았고 앞으로도 더 알게 될 이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는

 대한민국 역사의 연장이고 미주방송 50년사는

 한국방송사의 연장이다.

 

 2005년 4월 24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방송역사와 인연을 맺어온 춘하추동방송이 미주

방송협회, 또 김영우선생님과 얘기를 주고받게 된 것은 소중한

 인연이다. 김영우 선생님께서 자료를 더 찾아서 보내주시겠다고 했고

미주방송인협회 김정수회장님과 양방수 총무국장님께서 힘을 기울이시겠다고

 하셨다. 오랜세월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리고 있는 성우출신 박복수님이 사이트를

개설한다고 함으로 그런 자료도 기대가 가는 부분이다. 필자가 블로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KBS 사우회 회원들간에 마음의 끈을 연결 해 주었으면 하는 뜻으로 시작된

"춘하추동방송"에 성원과 격려 그리고 많은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이 계셔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밤, 낮없이 글을 써 올리다보니 초기에 엠파스에

 쓴 글이 다소 없어졌어도 2,000건에 달하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요즈음 "춘하추동방송"을 검색해서

들어 오신분들도 많다. 간혹 "춘하추동"으로

검색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검색어로는 찾기가 불편

함으로 "춘하추동방송"으로 검색하셔야 쉽게 들어오실 수 있다.

 글은 다음에서 쓰지만 검색은 다음을 비롯해서 네이버나 각 사이트에서 쉽게

 할 수 있다. 네이버나 사이월드에도 초기에 쓴 글이 있지만 그 글은 옛날에

 쓴 글들이고 다음에는 요즈음에 쓴 글까지 모두 있다.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고 자료를 보내주신 모든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김영우 선생님의 네 번째의 글 사진을 올린다.

  

 

김영우 아나운서 네번째 동영상 보기

 

 

보시기전에 음향을 먼저 끄셔요.

 

 

 

 

 

관련글 보기

 

미국내 한국말 첫방송 1965년 그때 그 목소리 김영우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2086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3 )

http://blog.daum.net/jc21th/17782089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2 )

http://blog.daum.net/jc21th/17782087

  

김영우아나운서 미국 이민사회와 함께 한 방송 50년

http://blog.daum.net/jc21th/17782051

 

김영우(Richard Khim) , MBC개국 아나운서 미국내의 방송활동 50년을 축하합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2043

 

미국에 사는 한국인, 한국방송인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990

 

  

 

 

미주방송인협회 창립 초대회장은 김봉구

아나운서이고 총무국장은 김영우 아나운서였다.

김봉구회장은 1956년 우리나라 최초 TV방송 HLKZ가

개국하면서공모한 아나운서로 대한민국 최초

 공개모집 TV아나운서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비록 고국을 떠나 이국에 살고 계신다해도,

 내 어머니의 나라를 한시인들 잊을리야 있었을까만은
고국을 떠나보면, 진정 자신이 얼마나 내 나라를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꿈속에서라도 그리게 되지요. 해외에 계시는 방송인

들에게는 KBS나 MBC 보다도 한국에 '춘하추동 방송'이 더 따뜻하고

 형제간의 우애같은걸 느끼며 찾게되는 고향집 같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장춘 국장님의 열성으로, 흩어지고 묻혀있던 사진이나 기록들이

 많은 분들앞에 알려지고 보여지니, 이 귀한 기록들이

 잘 보전되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방송이 전파를 타던 시절이

어느 시기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김영우

 아나운서님이 안식교 교인이실 것 같군요. 저의

 이종 오빠 되시는 분이 안식교의 원로 목사님이신데

 (권만복 목사)강원도 평창에 80 을 넘으셔서 은퇴하시고

 전원생활을 하시지요. 아사바사카 Ice Field를 2000년도에

 갔었는데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아사바사카 폭포도

 바라보는데만도 오금이 저리던 생각이 납니다.

 

답 글

 

오랜세월 해외에 계시던 유여사님이라

해외에 계신 동포들의 마음알 잘 아시는 군요.

제가 국제방송국에서 근무한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이나 위성방송이 없던시절이라 대출력 송신 중파방송이나

단파방송으로 세계 각지에 방송을 내 보냈지요. 이역만리 남의나라 땅에서

애국가를 듣고 아리랑을 듣는순간, 또 고국의 방송을 듣는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고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깊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곳에

살던지 한겨레 한민족은 하나였습니다.

올리신 글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재미 김영우 선배님이 보내주신

귀한 자료들을보고 읽고 음성까지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방송이라는 단어에 세상에 널리 알린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들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분의 노력으로

이렇게 귀하고 방대한 자료가 오래전부터 완벽하게 보존되어온 사실이

 놀라웠고, 그것을 역시 한분의 노력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적같은 일을

이뤄내고 있는 춘하추동 방송에 보내,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에게 널리

알리게 된 쾌거를 바라보며 후배로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재미 김영우 선배님과 춘하추동방송이장춘 선배님! 두분 합작의 시너지를

 물씬 느낍니다. 구경이나 하고 있는 저희는 손바닥이 닳도록 끊임없이

 박수라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 두분 다. 청사 없는

방송사의 연봉없는 영원한 회장님이십니다. 두 선배님의

 방송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거듭 경의를 표합니다.

 

 

김무생 선생님(아나운서) 글  

 

*대선배님 김영우 아나운서님의 방송으로

엮어진 삶을 통해서 "또 하나의 인생의 불꽃"을 발견

하게 됩니다. 이국땅에서도 방송을 통해서 제2의 방송의 역사를

 기록하셨군요! 이렇게 생생한 자료들을 여기 "춘하추동 방송" 까지 항공

우편으로 공수가 돼 자료의 보고(寶庫)의 이 곳간이 더 풍성하게 된 것 같아

 행복해집니다. 연세가 꽤 되셨는데도 아직도 해야 할일이 있다고 말씀하시다 못해

 그 일을 하시는 모습에서 삶의 의지를 배웁니다. "춘하추동 방송"을 이끌어 가시는

 이장춘 이사님과 여기에 기록되는 모든 분들의 그 삶의 모습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보배 중의 보배 같아서 볼 때마다 '보석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김영우 대선배님 더 건강하게 지내시고

 하시고자 하시는 그 일들이 만사형통 하시며

 축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기독교방송 CBS KY 아나운서실장출신 김정태, 깅영우 아나운서 (아래 김정태아나운서 방송장면)

 

  

 

가수 고운봉의 방송출연

 

 

 

원로 가수 장세정 무대초대 풍으로 거동불편 다른 가수들이 한많은 단발령을 불러줌    

 

 

 

해방후 삽화계의 거장 코주부 김용환

 

 

 

송춘희 구세군 특별무대에서 공연후 상을 받고있다.

 

 

 

배희영과 함께 비디오 촬영

 

  

 

  

 

  

 

비디오 촬영에 열중하는 김영우 아나운서

 

 

 

캐나다 아사바스카 만년설 - 필자가 2010년 이곳을 찾았는데 만년설이 녹아 이 사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의 신앙을 방송하던 때의 김영우 아나운서

 

 

 

 

 

 

 

 

 

 

 

 

신계훈 목사 서울 삼육대학교 학장

 

 

 

박형종 목사

 

 

 

김광오 목사

 

 

 

문영석 목사

 

 

 

 

 

 

 

 

김영우 한인방송4.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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