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방송국에 근무하셨던 이서구 (李瑞求) 선생님은 방송일 뿐만 아니라 신문사나 잡지사등에 많은 글을 기고해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시절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되어서 방송은 전파와 함께 날아가면그만이지만 활자나 레코드는 오랜세월 기록으로 남아서 후세에 전해집니다. 오늘 글은 1938년 8월 1일자 삼천리지 제10권 8호에 올라있는 글로 "流行 歌手 今昔 回想" (류행 가수 금석 회상) 이란 제목으로 올라있고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타베이스에 있습니다. 그 시절의유행가수에 관해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듣고 계시는 노래는 왕수복의 신방아 타령입니다.
이서구님이 쓴 1930년대의 유행가수들 왕수복 신방아 타령
북지사변 - 뒤를 이워 상해사변, 동아의 한 복판에 풍운이 급해지매 달큼한 레코-드 소리에 안일한 꿈자리를 찻든 세상은 돌변되고 마랐다. 「나를 사랑해 주서요」 소리가 흘너나오든 스피카에서 「총용무쌍의 우리 병사는...」 동시에 비상시 증세를 맛나 이활식이나 세금이 부과되는 판에 레코-드 값은 10전 내지 15전 값이 오르고 마랐다. 이 모든 대세에 밀녀서 일시 풍성하든 레코-드 황금시대는 넷이얘기가 되고 만 감이 있다. 요사이도 여전히 각사에서 매삭 신작 레코-드의 발매가 있으나 곡조에서나 가사에서나 사변 전에 보든 달콤한 맛이나 면구스러운 넉두리는 일소되고 마랐다.
인식하고 은인자중하야 이 비상시국을 견듸어 나가자는 비장한 결의를<150> 가지고 있다. 따라서 류행가수의 인기도 일시 잠잠해진 늣김이 없지 안타. 어쨋든 오락 기관이 넉넉치 못한 반도에서 레코-드가 이바지한 공로는 적다고 볼 수가 업고 조만간 시국이 평정되면 또다시 레코-드의 황금시대가 올 줄 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봄을 기다리는 동면 중의 류행가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빅타! 레코-드에서는 아즉도 평양기생가수 김복희(金福姬)를 팔고 있다. 음정이 화하고 성량이 크것만도 부드러운 맛이 있어서 그에게는 무슨 곡조를 주든지 실패가 적다. 다만 일시 아양석근 소곡이 횡행하는 판에 애교필 줄 모르는 그의 성격은 노래에도 드러나 머리를 흔든 기역이 있으리라. 전속 기한이 끝나 일시 다른 회사로 옴겨간다는 소문이 높드니 마춤내 그대로 눌너 앉어 바렸다. 필경 복희에게도 빅타-만한 회사가 없었고 역시 회사에서도 복희만한 가수가 없었든가 보다. 복희의 뒤를 이여 나타난 애기가수 박단마(朴丹馬)는 금년 17세의 봉오리 같은 꽃! 언니가 기생노릇을 하는 등너머에서 어더드른 민요가 판에 박은 듯이 언니숭내를 잘 내는 통에 차차 소문이 높아 굀¹단의 막간가수로 출진을 해서 전선적으로 절찬을 받고 아즉 나이는 어리지만 버리기 아깝다는 소리가 들니기는 했드니 어느새에 빅타- 전속가수가 되고 마랐다.
가수로 또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로 기대가 가장 크다고 본다. 남자로는 아즉도 리규남(李圭南)군이 단연 우세인가 보다. 설도식(薛道植)이니 조영은(曹永恩)이니 있으나 세상에서 아즉 그의 일홈을 모르는 이가 많은가 한다. 좀 더 선전을 했으면 하는 느낌을 주는 점에 빅타-의 매력이 있는지도 모르나 훌륭한 가수를 가지고도 적용을 하지 못하는가 싶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상 내세을 가수는 적다. 가수는 많고 발매 레코 - 드의 매수는 적은 만콤 그같이 많은 가수를 일시에 모다 살닐 수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돌여가며 선전을<151> 한다. 그러니까 여간 재수가 좃치 않고서는 일년에 두번 히트판 내기가 힘든다. 선전없는 히트는 없고 선전은 일시에 전가수를 한꺼번에 다 - 못하겠으니까 역시 돌녀가며 차례를 기다리게 된다.
만년 명성의 리란영(李蘭影)도 싀집을 간 뒤로는 한층 더 농연해진 맛이 있으나 역시 당시의 미성은 옛꿈에 도라갔는가 싶은 느낌이 있다. 따라서 요사히는 평양 화신백화점 점두에서 발견해 온 처녀가수 장세정(張世貞)의 인기가 우세한가 싶다.
「연락선은 떠난다」
그의 출세작은 0·K 레코-드 개설 이래의 제2의 히트- 리란영의
「봄마지」
봄마지는 임의 몇해 전 이야기라 세상인심은 옛이약이보다 오늘 이얘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 덕택에 장세정이가 리란영이보다 앞을 서게되고 만 것이다. 리란영, 장세정, 두 가수의 앞을 닷호오는 류행가 틈에 독자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가수로 신민요 전속 이은파(李銀波)가 있다. 진남포기생으로 빅타- 에서 발견해다가 0K 넘긴 가수이다. 아름다운 음성, 곱게 빼는 숨길! 신민요의 명인임에 틀님이 없다. 「요핑게 조핑게」 상당히 팔니는 것만 보와도 그의 세력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남자가수로는 포리돌 김룡환군의 아우인 김정구(金貞九)가 새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남인수(南仁樹) 송달협(宋達協) 량 군은 막상막하의 중견가수로 역시 좋은 곡조에 주려서 고개를 시원히 못드니 우울한 일파의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리란영의 남편으로 장세정의 출세작 「연락선은 떠난다」
영수로 그러고 짜쓰노래의 가수로 있는 김해송(金海松)군은 최근 빅타- 음악부로 자리를 옴긴 모양이다. 그의
「범벅 서울」
이라는 류행가는 준 걸작급에 들만한 성가가 있었다. 0K를 위해서는 애석한 일일지 모른다.<152> 콜럼비아처럼 신진가수를 많이 끄러내는 회사를 다시 없을 것이다. 가수시험을 보기 위해서 음악회를 연 회사도 이 회사이다. 따라서 력사도 물론 오래지만 총 목록에 가수의 일홈이 많이 느러씨워 있는 점에 단연 우세하다. 만년 불패의 신민요가수 강홍식(姜弘植)군의 「열여듧 시약시」
팔닌다 하며 더욱히 채규엽군의 취입이 일시 중단된 이 때 박세환(朴世煥)군의 등장은 매우 기대할만 했다. 박군은 본시 태평레코-드의 국어전속가수이었는데 콜럼비아에
평판이 좋아 맞춤내 콜럼비아레코-드 일본내지어 조선어 쌍방의 전속가수로 채용된 것이다. 근작으로
일시 빅타-시에론에서 분쟁까지 이르키여 다려가게 하는 간도 출신의 남자가수 유종섭(劉鍾燮) 군이 있으며 은근한 조자의 풍이 있어 노래 속에도 그의 풍모가 느껴지는가 싶은 가수에 정찬주(鄭讚柱)군이 있다. 녀자 가수로는 인기의 제일선에선 평양 출신 기생가수
金仁淑 와 신진 여가수 유선원(柳善元)양이 있다.
「離別의 處女」
아즉 일는 편에 속하니 다음 날을 기대할 뿐이며. 있는 점에 단연 그 특색이 있다.
이 네 가수는 포리돌지 정창설초에 당시의 문예부장으로 조선레코-드게의 가장 공로가 큰 이원배씨가 단심성력을 기우려 뫃은 진용 이었다. 이래 4년 동안 그 같은 가수를 가지고 당당 대회사의 가수진을 대항해 가는 것을 본다면 리원배씨의 선배다운 점을 인증치 않울 수 없다.
요사히 신인으로
두 미희가 전속진에<153> 가당되야 있다. 역시 신민요의 선우일선은 각 사를 통해서 제 일인자가 될 것이요 김룡환군의 독특한 노래는 아즉도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본다. 리화자의 신민요는 선우일선에 비하야 선이 굵다. 그 대신 깊은 맛이 있다. 이 점에 리화자의 새로 개척할 길이 있지나 않을가 한다.
끝으로 태평레코-드에는 최남룡(崔南鏞)군이 있다. 태평 조선 문예부 창설 초부터 빅타-에서 강석연과 같이 태평에 전향해 가지고 오늘까지 꾸준히 태평의 마이크를 직히고 있는 온건한 남아이다. 그의 걸작은 빅타, 태평에 누히 누느러 놓여 있는지라 갱론할 여지도 없으나
울면서 취입을 했다는 이얘기까지 전하는 걸작이었으며 최근에는
논산서 발견된 울금향(鬱金香)이라는 어였분 아가씨가 있다. 장세정이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떠들은 가수인만큼 그 제1회 작품의 일홈조차 장세정의
하소연- 울금향의 가슴에 달닌 금단추는 누가 사 주었는가? 이 노래의 매력은 이 가사에 있는가? <154> <15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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