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54

대한민국 최초의 아나운서 李玉景

우리나라 방송의 시발점 1927년 2월 16일 1시, 첫 방송을 내보낸 최초의 아나운서라는 역사적인 인물로 1926년 6월 시험방송시절부터 1928년 둘째 딸 노라노(본명 노명자)가 태어나기 까지 약 2년간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요술상자」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는 등 숱한 話題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12월 3일 이옥경 둘째 딸 노라노 여사님 제공으로 이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진이 없었음은 물론 李玉景 한자 이름을 비롯, 그에 관해 잘못 전달된 내용이나 보충할 내용들이 많아서 필자가 초안을 작성하고 둘째 딸 노라노여사가 최종수정, 보완「노라노가 쓴 최초방송인 노창성, 이옥경」이라는 제목(http://blog.daum.net/jc21th/1778007..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

1926년 7월 1일 기공, 동년 12월 5일 준공되었다. 1927년 2월 16일 1시, 출력 1Kw, 파장 345m로 정규방송이 시작되어, 1950년 6.25로 잿더미가 될 때까지 약 23 여년, 이곳에서 방송을 내 보냈다. 방송국 흔적이 사라진 이 터는 조선일보와 덕수초등학교에 편입되었고 1987년 한국방송인 동우회(방우회)가 덕수초등학교 교정에 첫 방송터 유허비를 세워 해마다 4월이면 이곳을 찾아 기념식을 갖는다. 태조 둘째 왕비 신덕왕후의 무덤 정능 터, 정동 1번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의 李왕실 땅 190평을 빌려 지하1층, 지상 2층 건물과 45m안테나 2기를 세우고 송신기는 지하에 설치되었다. 개국당시에 촬영된 이 사진에는 그 이전에 세워진 영국공사관, 덕수초등학교, 영국성공..

방송의 기원 최초의 시험방송

1924년 12월 9일 11시 30분! 京城府 本町 一丁目 三越 吳服店!(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 이곳 3층에 설치된 기이한 나팔형 전기 확성기에서 기계적인 소리로 전해진 인사말과 더불어 양악, 국악, 피리소리 등이 흘러 나와 백화점 고객과 지나가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의 광화문에 있던 무선국 실험실에서 보낸 「무선전화방송!」 우리나라 「방송의 기원」이다. 이에 앞서 11월 29일에 첫 시험방송이 있었지만 담당 관리들이나 기자들을 상대로 한 비공개 시험방송이어서 공식적으로는 이때의 시험방송이 최초다. 곧이어 12월 17일, 18일, 19일 3일간에 걸친 조선일보사의 시험방송이 있었다. 시험방송은 「近世科學의 一大驚異」,「驚異의 눈!」,「驚異의 귀」등의 제목을 붙여 크게 보도되었고 이후 시험방송..

항일 독립 애국지사 성기석

필자가 이사진 설명을 듣는 순간 숨이 막일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한국방송사에서 가장 소중한 기록의 하나 「항일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의 주역 성기석을 광복의 역사적인 날, 그 역사적인 곳에서 역사적인 모습을 보인 사진설명을 들어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 조선·동아일보를 비롯해서 모든 민족지들을 폐간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했으며 모든 단파수신기를 몰수 하는 등 해외소식을 단절시키고 일본의 일방적인 선전만을 늘어놓았다. 그 시절 성기석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할 수 없었던 미국, 중국 등지에서 들려오는 세계정세와 독립운동 소식을 단파수신기로 듣고 극비리에 독립 운동가들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발각되어 1942년 12월 28일 경찰에 끌려갔다. 사상범으로 몰려 미결수로 10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