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방송의 기원 최초의 시험방송

이장춘 2022. 9. 18. 12:31

 

1924년 12월 9일 11시 30분! 京城府 本町 一丁目 三越 吳服店!(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 이곳 3층에 설치된 기이한 나팔형 전기 확성기에서 기계적인 소리로 전해진 인사말과 더불어 양악, 국악, 피리소리 등이 흘러 나와 백화점 고객과 지나가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의 광화문에 있던 무선국 실험실에서 보낸 「무선전화방송!」 우리나라 「방송의 기원」이다. 이에 앞서 11월 29일에 첫 시험방송이 있었지만 담당 관리들이나 기자들을 상대로 한 비공개 시험방송이어서 공식적으로는 이때의 시험방송이 최초다. 곧이어 12월 17일, 18일, 19일 3일간에 걸친 조선일보사의 시험방송이 있었다. 시험방송은 「近世科學의 一大驚異」,「驚異의 눈!」,「驚異의 귀」등의 제목을 붙여 크게 보도되었고 이후 시험방송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모두 11개의 단체나 개인이 방송국 설립의 뜻을 가지고 추진했지만 사단법인 비영리 단체로 한다는 총독부의 방송정책에 따라 결국 경성방송국으로 일원화되어 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이 문을 열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설립 실무자는 총독부 체신국 관리 「노창성」 일본인 「시노하라」다. 노창성은 방송부, 기술부, 사업부 3개부서중 사업부장, 최초의 함흥방송국장, 우리말 전담 제2방송부장을 지내다가 단파사건으로 물러났다. 해방 후 1949년 11월 KBS 중앙방송국장이 되어 6.25 전시 중앙방송국장으로 임무를 수행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초대 방송관리국장이 되어 방송 총괄책임자로 임무를 수행 하던 중 1955년 지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오늘의 사진은 최초의 시험방송 기념사진으로 노창성의 둘째 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노라노」(노명자) 여사께서 제공 해 주셨다. 이 사진의 배경 글을 해독 할 수 있었으면 하지만 필자로서는 해독이 어렵다. 더 자세한 사항은 사이버 박물관이나, 춘하추동방송을 참조 해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