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항일 독립 애국지사 성기석

이장춘 2022. 9. 18. 12:28

필자가 이사진 설명을 듣는 순간 숨이 막일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한국방송사에서 가장 소중한 기록의 하나 「항일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의 주역 성기석을 광복의 역사적인 날, 그 역사적인 곳에서 역사적인 모습을 보인 사진설명을 들어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 조선·동아일보를 비롯해서 모든 민족지들을 폐간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했으며 모든 단파수신기를 몰수 하는 등 해외소식을 단절시키고 일본의 일방적인 선전만을 늘어놓았다. 그 시절 성기석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할 수 없었던 미국, 중국 등지에서 들려오는 세계정세와 독립운동 소식을 단파수신기로 듣고 극비리에 독립 운동가들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발각되어 1942년 12월 28일 경찰에 끌려갔다. 사상범으로 몰려 미결수로 10개월간 갖은 고초를 겪다가 1943년 10월 21일 2년형을 언도 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형 만기 65일을 남겨놓고 해방되어 그 다음날 8월 16일 깃발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며 형무소를 나와 기다리던 시민들과 함께 도로를 행진했다. 이 사진은 바로 그 장면이다. 350여명이 경찰에 끌려가고 70여명이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6명의 옥사자를 낸 이 일은 오랜 기간 「단파사건」·「단파밀청사건」 등으로 불리며 전해오던 중 1970년대 유병은 선생을 비롯한 방우회 (사단법인한국방송인 동우회) 가 각종 재판기록 등을 수집, 집대성하고 세미나 등을 통해서 정리하면서 그 공식명칭을 「항일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이라고 정했다. 1990년 처음으로 유공자 포상신청을 해서 성기석을 비롯한 조종국, 홍익범 세분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9분이 포상을 받았다. 1991년 9월 여의도 KBS안에 「勿忘碑」를 세우고 해마다 9월이면 뜻있는 방송인들이 그 앞에 모여 그 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