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한달간의 무정부 상태와 방송국 접수소동 해방 한달이 되던 1945년 9월 15일! 이날 방송국에서는 세가지의 큰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방후 최초로 한국인 방송책임자를 선발했고 소위 인공내각이 구성되어 방송을 통해 발표하라는 실랑이 속에 무장한 미군이 방송국에 들어와 방송국을 접수하던 날이었습니다. 해방을 맞던날로 부..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31
남. 북 분단 비극의 싹 8.26 북한의 남한방송 일방적 중단 남. 북 분단 비극의 싹 8.26 북한의 남한방송 일방적 중단 국민들은 그때까지 3.8선이 무었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던 1945년 8월 26일 남북방송국간에 연결된 방송회선이 끊겼습니다. 남북방송국간에 중계방송도 하고 방송이 나가지 않은 시간에는 소식도 주고받던 그 방송회선이었습..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31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이땅에 들어오고 그닐 오후 네시 중앙청에서 일본의 아배총독이 항복문서에 역사적인 싸인을 했습니다. 도쿄만의 미조리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면서 미군은 전단지등을 통해서 9월 7일 우리나라에 ..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30
해방공간의 첫 방송출연자 안재홍과 방송장악을 위한 세력갈등 해방공간의 첫 방송출연자 안재홍과 방송장악을 위한 세력갈등 해방공간! 말 그대로 공간이었습니다. 통치자도 없고 정부도 없고 서로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주장하면서 정국은 막연하기만 한 때였습니다. 방송국의 장악이야말로 자기 세력을 국민에게 접목시키는 결정적인 매체여..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9
대한민국의 첫 방송기자(문제안)가 탄생한던 날 1945년 8월 16일 대한민국의 첫 방송기자가 턴생한던 날 1945년 8월 16일 이혜구, 문제안 선생님 회고담 세상이 바뀌어 사람들은 새로운소식을 목마르게 기다릴 때였지만 그 소식을 제대로 전달할 미디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그런 소식을 제대로 전할 만한 신문은 모두 폐간 해..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8
해방전야의 정세와 경성방송국에서 있었던 일들 해방전야의 정세와 경성방송국에서 있었던 일들 1945년 8월들어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에 원자탄이 투하되고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8월 8일 두만강을 건너 청진 앞바다에 나타나 제1 공격 목표이기도 했던 청진방송국에 함포사격을 가해서 방송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13일에 이르러 천진..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7
동영상, 일제강점기 한국에 있던 일본방송인들 동영상, 일제강점기 한국에 있던 일본 방송인들 일본이 패망하던 날 일본방송인은 281명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일본으로 돌아간후 서로 해어져 살다가 1972년부터 조방회라는 모임을 갖고 일본 전역에 살고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만나 친목활동을 해 오면서 우리나라에 있을때의 얘기..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5
경성방송국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1 ) 일본에 있던 경성방송국 직원들의 모임 조방회가1980년 제 8 회 모임으로 아니와 회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1 ) 1945년 8월 15일 ! 해방되던 날 조선방송협회소속직원은 모두 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본인은 281명이었습니..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5
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2 ) 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2 ) 해방을 맞던 날 협회 업무부장, 기술과장, 연희 방송소장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방송시설과 경영의 핵심에 있었던 이 분들의 얘기는 경성방송국의 마지막 장면을 짐작케하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방송국장 시..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4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 송영호, 이덕근, 민재호, 윤길구아나운서-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오늘은 광복의 날 방송국 현장에서 그 상황을 방송을 통해서 직접 국민들에게 알렸거나현장을 지켜 보았던 세분의 아나운서들의 얘기를 올렸습니다. 글을 남기신 송영호 선생님은 1938년.. 해방공간의 방송 201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