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이장춘 2011. 7. 24. 12:01
 

 

 

- 송영호, 이덕근, 민재호, 윤길구아나운서-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오늘은 광복의 날 방송국 현장에서 그 상황을

방송을 통해서 직접 국민들에게 알렸거나현장을 지켜

보았던 세분의 아나운서들의 얘기를 올렸습니다. 글을 남기신

송영호 선생님은 1938년에 방송국에 들어와 일제강점기 아나운서,

편성일을 했고 해방공간에서 편성계장, 연출과장등을 했으며 6.25

전시 방송과장을 거쳐, 5.16후 방송관리국장을 지내셨습니다. 이덕근

선생님은 1943년에 방송국에 들어오 해방전야 숙직 아나운서로

해방당일의 방송을 했으며 해방공간의 보도계장 연출과장으로

6.25후에 신문사와 대학에서 활약했고 방송평론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윤길구 선생님은 오랜세월 아나운서를

했고 방송과장, 서울 국제방송국장, 중앙

방송국장등을 역임하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송영호 선생님의 회고담

 

 

 

 

8월 15일 아침부터 기다리던 정각 12시가 되었다.

방송부장실 겸 제1, 제2보도과에 부직원 전원이 모인가운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일본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극히 불량한

수신 상태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어귀 마디마디는 잘 들리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전체의 뜻으로는 일본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뜻임에는 틀림없었다. 실내 모니터 앞에서 부동자세로 서서 근청하고 있던

일본인직원들은 방송을 듣자 소리 내어 우는 자도 있고절망의 긴 한숨과

함께 창백한 얼굴을 서로쳐다보며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 꼴이란 측은

하기도 하면서도 어찌나 흥분했던지 그 자리에서 소리높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충동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우리 한국인

정황은어떠했던가? 속으로는 통쾌하고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그들 앞에서 서로 흘금 흘금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일본인들에 뭐라
말을 붙이자니 쑥스럽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겸연쩍고 해서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몰랐다. 하나씩 둘씩

모여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웅성이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 우리는

일제의 소위선전완수를 모토로 한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무슨 방안이 설 때까지 사용할 레코드를방송과에 맡기고 내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근처의단골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숙의를 했다. 당분간뉴스와 레코드음악을 계속

하기로 하고일단 해어졌던 것이다.

 

 

 

 
 
이덕근 선생님 회고담의  

 

 
15일 아침 10시에 윤용노아나운서가
출근전에 동맹통신에 들려 새로 들어온 통신
다섯 벌을 가지고 왔다. 그것은 일본 천황이 낮 12시에
항복하는 이른바 “옥음방송” 의 원문이었다. 이 통신을 받아든

이혜구 과장님은 통신을 쥐고는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있었는데

한국인 직원들은 자연히 미소가 떠올랐다. 12시가 되자
누군가가 “기립” 이라고 하여  모두 일어서서
천황의  방송을 들었다.
 
여자 아나운서가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고일본 직원들은 정신 나간 사람 같았다. 이것이 

해방된 순간을 맞는방송국 분위기 이었다. 이날 오후 7시 40분에는 

한국인 직원들 30여명이 제 4 스튜디오에 모여 애국가를 불렀다. 구곡으로

부른 애국가는 오랫동안 불러 보지 못해 음이 제각각 이었으나 모두

흐느끼면서 불렀고  일본인 직원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16일에는  출근하면서  우선 방송국
이름부터 새롭게 하고 간판을 걸자고 해서
그 이름을 “서울 라디오 스테이션”  이라고 하고  우선
경성방송국 간판은 그냥 둔채  문제안 아나운서가 스스로
먹을 갈아 영어로 간판을 써 붙혔는데  너무 다급한 나머지
 그 간판의 철자까지 틀려  RADIO STATION 을 RADIO STAITION

이라고 I자 한자를 더 넣어서 써붙인 것을 이정섭 과장님이 발견

하고  바로 잡기도 했다.  방송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날

(16일) 낮 12시  뉴스와 함께  해방만세 방송을 해야

했는데 급히 나온 연합통신의 뉴스가

 

 
 해 방 만 세,
 
 자 유 만 세,
 
 독 립 만 세,
 
이 석줄 만  되어있어서 큰 일 앞에
뉴스를 보내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 재호 선생님 회고담

 

다음은 민제호님의 글입니다.
경성방송국은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 방송을
도쿄 증앙방송국에서 중계를 받아 방송하는 동시에
녹음했으며 천황의 방송이 끝난 후 녹음한것에다 해설을 붙혀
재방송했다. 제1방송은 오후 5시 30분에 제2방송은 9시 30분에 반복해서

방송 되었다. 내용은 포츠담 선언의 요지와 수락의 경위를 해설 한 것이었다.

 일본천황의 항복선언 가운데는 한국의 해방을 시사하는 내용은 없었다. 러나

포츠담 선언의 제8항에 일본의 주권은 본토 등 연합국이 걸정하는 제 도서에

한정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 조항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부터자유로워 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며 방송에서이 같은 사실을 자세하게

 보도 한 것이다. 

 

 


 

 

윤길구 선생님  회고담
  

 

일본인 아나운서 등정(藤井)은 낡아빠진  

긴 칼에  기름을 바르며 “이제 쓸 때가 올 것 같다” 고

혼잣말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는 소위 대본영 발표의 거짓

전황이 오기만 하면 “이기고 말해. 이기고 말이야”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당시 일본어 방송과장 대사(大飼)는 “너도 일본인이냐”

하고 꾸짖었는데 그것은 상사로서의 말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화살이었다. 그러나 등정(藤井)은 일본인이든
 아니든 간에 일본이  손을 들게 된 게
아니냐고 대들곤 했다.
 
마침내 8.15 ! 나는 당시 직업 탓인지
일본 천황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당시

한국어 방송과장이던 이혜구씨는 일본인은 우리의 손님이

되었으니 한민족의 금도와 관용을 보이자는 말을 강조했다.  이 말을

할때 그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도 힘찼었다. 그래서 등정(藤井)의 칼은

쓸모가 없게 됐다. 그는 해방  후 난동에 대비코자  칼을 매 만졌던

 것이다. 그는 해방 전 일본인에게만 주는 특배품의 하나인  

담배를 나에게 곧잘 대주곤 했는데 해방이 되자  이제

 담배는 네가 대라고 하기에 내가 대 주었다.

 

 

  

 

일본인들은 9월까지 머물러 있다가 갔으나
아나운서 나카무라만은 군정청의 요청에 의해 그 해
12월 초까지 머무르게 되었다.  그가 하는 일본어 방송은
뉴스에 한했는데 나는 그 번역을 구술로 해 주곤 했다. 내가

일본 천황 히로히또는 ........하면 그는 하이하고 원고에

적고는 방송을 할때는“ 천황폐하께 옵서는 .....”

하는 것이었다.
 
 
 광복의 날 방송국 현장에서

 그 상황을 방송을 통해서 직접 국민들에게

알렸거나 방송현장을 지켜보았던 세분의

아나운서들의 얘기를 올렸습니다. 

 

 

 

관련 글 더 보기

 

 

춘하추동방송 카테고리 "해방공간의 방송" 에서

몇편의 글을 연결했습니다. 영문자를 클릭하셔요.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던 날 & 초대내각,1948년 8월15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9

 

해방 첫 돐을 맞던 때 1946년 8월 15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7

 

태극기! 애국가와 함께 중앙청에 처음 펄럭이 던 날 1946년 1월 14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6

 

이승만박사, 김구선생님 환국과 해방정국, 그때의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16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09

 

남. 북 분단 비극의 싹 8.26 북한의 남한방송 일방적 중단

http://blog.daum.net/jc21th/17780911

 

해방전야의 정세와 경성방송국에서 있었던 일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904

 

경성방송국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1 )

http://blog.daum.net/jc21th/17780898

 

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2 )

http://blog.daum.net/jc21th/17780169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http://blog.daum.net/jc21th/17780902

 

1945년 광복의 날을 맞은 경성방송국, 그 최후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905

 

 해방정국의 최대 이슈 신탁통치 소용돌이와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21

 

군정 3년간 실질적인 통치자 존 하지장군 (John Reed Hodge)

http://blog.daum.net/jc21th/17780915

 

문제안 선생님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8.15 해방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164


 

 

패망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

 

 

 

광복절노래.mp3
2.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