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이장춘 2011. 7. 30. 02:33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이땅에 들어오고

그닐 오후 네시 중앙청에서 일본의 아배총독이 항복문서에

역사적인 싸인을 했습니다. 도쿄만의 미조리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면서 미군은 전단지등을 통해서 9월 7일 우리나라에 들어 올것이라고 했지만

일기가 좋지 않아 하루가 지난 9월 8일 인천에 도착했고 9월 9일에 서울에 왔습니다.

소련은 이에 앞서 8월 20일 원산항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때 그 얘기들을

엮었고 끝 부분에 미주리함 항복조인식실황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배경음악은 대한 제국시절 최초의 애국가를 올렸습니다. 

 

 

 

 

 
우리나라와 국경이 맞 닿아있는 소련은
8.15해방 전에 벌써 국경을 넘어 함경북도를
점령했고 일본의 항복에 즈음해서는 미조리함 상의
항복조인도 있기전에  8월 20일 원산항에 그 모습을 드러

냈고 8월 22일에 평양에 도착, 일본인을  내 보내면서 8월

 26일부터 서울과 연결된 전용방송회선을 절단하면서 

지금까지 중계방송하던 서울방송을 중단시키고

 자기들 자체방송만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남과 북의 방송은 갈라졌습니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온것은 한참뒤의 일로

이때 까지는 패망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미군의 진주소식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방송국의 큰 임무였습니다. 당연히 방송국이 그 상황을 알려야

 했지만 현실을 잘 모르는 미군은 방송국의 취재나 중계방송을 허용하지

않는등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만은없었습니다.

그때의 얘기를 방송국 책임을 맡고있었던 이혜구님과유일한 방송 취재기자

 문제안님의 기록을 바탕으로 씁니다. (조선일보는 그해 11월 23일에

복간되었고 동아일보는 12월 1일에 복간되어서

 주요신문이 없을때 였습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당일인

9월 8일 중잉방송국에서는 미군의 인천상륙상황을

녹음취재하기 위해 이혜구 제2보도과장님이 용산 일본군기지에

부평을 통과 할 수 있는 완장을 청구하러 갔습니다. 당연히 완장을

받아 현장 취재를 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그 일을

 맞고있던 일본군 장교가 "자기는 신문기자에게 완장을 주라는

명령만 받았지 방송국 녹음반 까지주라는 명령이

없었으므로 안 되다"고 했습니다.

  
이혜구과장님은 방송국도 보도기관이니
 허락해야 된다고 한참 실랑이를 했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나운서들은 군의 허가가

 없더라도 갈수 있는데 까지 가서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랜기간 방송국 생활을 했던 운전기사 민 씨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지원해서 강행방법을 의논하고
있을 때 마침 미군으로부터 방송기자를 인천으로
파견하라는 쪽지가 왔습니다.
 
그것은 미군 진주의 준비를 위해서
이미 8월 26일에 상륙 해 있던 미군선발대
정보장교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오후

5시가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한덕봉, 이종일, 이순기,

양기승님 등으로구성된 방송 녹음반은 인천으로 즉시 달려가 

미군들의 움직임을 녹음해서 기사와 함께 서울로 급히 보내

이날밤 미군의 상륙은 역사적인 큰 뉴스로 여러차례에

걸쳐  전국에 방송 되었습니다.

 

 

 

미군상륙으로 인천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지만 하지중장의 명령에 따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인천 전역에

통행금지령이 선포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일찌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가게 문들도 모두 문을 닫아 취재팀이

일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았지만 식사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

 

 

 

미군은 다음날 ( 9월 9일 ) 아침

서울로 이동했고  방송 취재팀도 이들을 따라

서울로 왔습니다. 문제안님의 말애 따르면 "이날 미군의

서울입성을 실황중계하기 위해 민재호, 문제안님이 서울역 앞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화려한 용어를쓸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중계방송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보무도 당당히 행군해 들어올 줄 알았던

미군은 자동차를타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기대했던 

중계방송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고 했습니다.

 
미군은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 근처에서
일부가 행군 해 들어갔지만 선로이동의 어려움

등으로 이동방송을 할 수 없었던 터라 중계방송은 더 이상

할 처지가 못 되었고 오후에 있을 조인식 실황 중계

방송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945년 9월 9일 오후 4시부터 역사적인

헝복 조인식이 있었고 총독부에 휘날리던 일본기가

일본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오르면서 미국 군정의 시작을 알렸

습니다. 항복조인식은 중앙청 (당시는 총독부) 제일 회의실에서 있었고

그 실황은 민재호아나운서와 일본인 아나운서 한명이 끝까지 처음부터 끈까지

중계방송되어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때도 중계뱡송에 참여할 인원을 놓고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8일 인천에 갔던 엔지니어팀과 우리방송인으로 민재호아나운서, 문제안기자

 그리고 일본방송인 각각 두 사람씩 현장에 갔지만 민재호아나운서와 일본인 아나운서

 한사람씩만 현장에 들어가 중계방송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조인식에 참여한 

장운표 아나운서는 인천에서부터 방송국 아나운서임을 밝히고 독자적인 취재를

하게 되어 역사적인 조인식 현장에서 추재활동을 했고 문제안 기자는

그 많은 역사적인 현장에서 취재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인 현장에 가지 못한 것을 안타가워 했습니다 

 

 



 

 

조인식은 양측 문이 열리면서 하지중장일행과

아배총독 일행이 예정시간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아배

 총독은 할복자살 미수의 상처 입은 몸을 부축 받으면서 천천히

 입장 했습니다. UP, AP로이터통신 그리고 자유중국 기자 등20여명과

 연합국 측 영화사 카메라 멘들도 취재했고 식이 끝난 4시 35분에는

중앙청 앞뜰의 국기 게양대 앞에서미군 군악대의 취주와 중앙청

 울타리를 둘러싼 군중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본국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랐습니다.

 

 

 

동영상 미주리함 항복 조인식 실황-1945년 9월 2일-

 

 

 

 

 

 

미주리함 항복실황 내용

 

 

할지(Halsey)제독이 지휘하는 53,000톤인 미국 제3함대 기함인

 전함 미주리함은 오늘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본의 완전한 항복의식이

거행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도쿄만내에서는 미국구축함인 뷰커넌함이 이 일본의

 항복의식에 참가하려는 연합국 측 대표들을 태우고 미주리 함에 계류치 접근중입니다.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지위로 맥아더(Douglas MacArthur)장군이 승함하십니다.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Nimitz)제독과 ,할지제독이 맥아더 장군과 참모장인 서더랜드(Sutherland) 장군을

영접합니다. 니미츠 제독이 20분간 항복의식이 거행될 갑판으로 맥아더장군을 에스코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945년9월2일 입니다. 미주리함상에는 ,붐비는 국제연합군 대표들이

 일장기가 그려진 기념카드를 살피고 있는 가운데 각국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합니다.

 

이제 해군이 보낸 단정 편으로 일본의 항복대표단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단은 수년 전 상해에서 코리아의 애국자가 던진 폭탄에 다리를 잃고

의족에 의지하고 있는 일본의 항복내각 마모루 시게미츠(Mamoru Shigemitsu) 외상입니다.

일본의 항복대표들은 연합국 측의 테이블 반대편에 도열합니다. 중국에서의 전쟁은 8년째

접어들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이 3년9개월이라는 기간에 걸친 치열한 총력전쟁 노력이

이제 동방에서 벌어진 인류역사상 가장 값비싼, 잔학하고 치명적인 전쟁이

수분 안에 종결되려합니다. 맥아더장군께서 연설하십니다.

 

" 평화가 정착될지 모를 엄숙한 협정문을 체결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 주요 전쟁 당사국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문제는 전 세계 전장에서 이미 결판났기 때문에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일본제국군대에게 제시되어 수락될 항복 규약과 조건들이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항복문서 내에 명시 되어있습니다.

 

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서 이제 본인은 제가 대표하는 국가의

전통에 따라 확고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즉, 본인의 목적은

 항복조건의 완전, 성실 이행이 보장되기 위한 모든 필요조치를 취함으로서

공명정대하게 그 의무와 절차를완수하는 것입니다. 이제 일본 천황대표,

일본정부, 일본제국군 지휘부는 항복문서상 표시된 곳에 서명하십시오."

 

시게미츠가 항복문서 테이블로 나옵니다.

 

이 극적인 최초영상은 뉴스영화 제작 특파원과 미육군,

 해군 카메라맨이 제작하여 도쿄로부터 특별공수 되었습니다.

현재시간은 오전9시5분이며, 일본인들이 승함한지 정확히10분이 되었습니다.

일본제국군 총참모부 야시지로 우메츠가 일본제국육군을 대표하여 서명합니다.

본 군대가 완전한 무기투항에 동의하고, 맥아더 장군이 발하는 제반 명령을

준수하기로 한 항복문서는 피폐된 마닐라 지하에서 발견된

드문 양피지로 미 육군이 인쇄하였습니다.

 

이제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서 서명하십니다.

 

첫 번 째 펜은 코레기도 전투의 웨인라이트 (Wainwright)장군에게 건네지며,

두 번 째 펜은 항복된 싱가포르 사령관인 영국의 퍼시벌 장군에게 전달됩니다. 일본제국주의

테러와 침략 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일본에게 가장중요한 문서에 서명하기위하여 맥아더 장군은

모두 6개의 펜을 사용합니다. 미합중국전군을 대표하여 체스 터니미츠 제독이 서명하고 있으며,

그 뒤로 미제3함대 사령관인 할지제독과 ,유명한 수륙양용군사령관인 셔먼(Sherman) 제독이

 서명합니다.중국국가위원회의 수영창 (Hsu Young-Ch’ang)장군이 서명하고, 뒤이어

영국태평양함대사령관 브루스 후레이져(Bruce Fraser)제독이 서명합니다.

 

쿠즈마 미꼴라이브치 되리브이양코(Kuzma Mykolaiovych Derevyanko)

중장이 소비에트 러시아를 대표 서명합니다. 뒤이어 ,오스트렐리아의 토마스 브레미

 (Thomas Blamey)장군이 서명합니다. 카나다의 로렌스 모어 커스그레이브(Lawrence Moore

 Cosgrave )대령이 서명합니다.아프리카와 파리의 영웅프랑스의 wi크 뤽클레어(Jacques LeClerc)

장군이 서명합니다.네델란드의 씨이엘헬후?(C.E.L. Helfrich )과 뉴질랜드의 앨앰이시트

 (L.M. Isitt )공군중장이 서명합니다.짧은 역사적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을

 종결하면서 맥아더 장군이 희망사항을 피력합니다.

 

"이제 세계평화가 회복되고 하느님께서 언제나 이를 보존하실 것을 기도합시다."

이 항복문서 조인 절차는 이제 종료되었습니다. 식이 종료됨에 따라 상공에는 일단의

미국 항공기 편대가 비행합니다. 최종적인 국제연합승리가 쟁취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평화가 여기에 깃듭니다(끝).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흥남 철수작전 주인공 알몬드 Edward Almond 장군 기적의 배

http://blog.daum.net/jc21th/17782406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09

 

흥남철수작전 그때 그 현장 취재 종군 한영섭기자 증언

http://blog.daum.net/jc21th/17782439

 

국제시장 대한민국 건국 월드피스 자유연합 공개사진 이승만 맥아더

http://blog.daum.net/jc21th/17782384

 

 

 

A battle ship Missouri, 53,000 ton flag ship of the admiral Halsey’s third fleet

 becomes the scene of an unforgettable ceremony marking the complete and formal surrender

 of Japan.In the bay of Tokyo itself, United States destroyer Buchanan comes alongside bringing

 representatives of allied power to witness the final capitulation.

General of the army, Douglas MacArthur, supreme allied commander

 for the occupation of Japan, boards the Missouri.

Fleet admiral Nimitz, Pacific fleet commander and admiral Halsey welcome

 MacArthur and his chief of staff, general Sutherland aboard.

Admiral Nimitz escorts MacArthur to the Missouri veranda deck

where the twenty-minute ceremony is to take place. It is Sunday, September second,

1945.Cameramen and reporters of many countries record this historic

moment as United Nations military leaders crowd aboard the Missouri and examine

souvenir cards bearing Japanese flag, special mementos of the occasion.

And now in a navy launch, the Japanese surrender party arrives. They are headed by

 agent Mamoru Shigemitsu, foreign minister of the Japanese surrender cabinet.

 He was wounded by a Korean patriot in Shanghai years ago and walks on an artificial leg.

Japanese delegation lines up on the opposite side of the surrender table from the alliance.

 A war which had entered its eighth terrible year in China which had raged for three years

 and nine months for America and Britain which was the brutal, costly eastern half

of the most horrible world wide war in human history is now within minutes of ending

 for good.General MacArthur speaks:

“We are gathered here, representatives of the major warring powers to conclude

a solemn agreement whereby peace may be restored. Issues involving divergent ideals and

 ideologies have been determined on the battle fields of the world and hence are not for

our discussion or debate. The terms and conditions upon which surrender

of the Japanese imperial forces is here to be given and accepted are contained in the instrument

of surrender now before you.

As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I announce it my firm purpose in the

tradition of the countries I represent to proceed and discharge my responsibilities

with justice and tolerance while taking all necessary dispositions to ensure that

 the terms of surrender are fully, promptly, and faithfully complied with.

I now invite the representatives of the emperor of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Japanese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to sign the instrument of surrender

at the places indicated.”Mr. Shigemitsu comes to the surrender table.

These dramatic first pictures were made by newsreel war correspondents and army and navy

cameramen and were specially flown back from Tokyo. The time is 9:05 a.m. Japanese

have been on board exactly 10 minutes.

General Yoshijiro Umezu of the imperial general staff signs for the Japanese army.

The surrender documents by which Japan agrees to lay down arms completely and obey all allied orders issued by General MacArthur were printed by the army on a rare parchment found in a basement at ravaged Manila.

General MacArthur signs as supreme allied commander. The first pen used is presented to General Wainwright of Corregidor.

The second pen to British General Percival, commander at the surrender of Singapore.

MacArthur used six pens in all affixing what will be the most important signature in Japan to the document that ends permanently that nation’s regime of terror and aggression.

For the forces of United States itself, Admiral Chester Nimitz signs. Behind Nimitz are the third fleet’s Admiral Halsey and Admiral Sherman, famed amphibious commander.

General Hsu Young-Ch’ang, Chief of Military Operations for the Chinese National Council signs for China.

Admiral Sir Bruce Fraser, commander of the British Pacific Fleet for the United Kingdom.

Lieutenant General Kuzma Mykolaiovych Derevyanko for Soviet Russia.

General Sir Thomas Blamey for Australia.

Colonel Lawrence Moore Cosgrave for Canada.

General Jacques LeClerc, hero of Africa and Paris for France.

Admiral C.E.L. Helfrich for the Netherland.

Air Vice-Marshal L.M. Isitt for New Zealand.

Concluding the brief history-making ceremony, General MacArthur expresses a wish.

“Let’s pray that peace be now restored to the world and that God will preserve it always. These proceedings are closed.”

Swarms of United States aircrafts fly in formation overhead as ceremony ends.

The final United Nations victory has been won. The war is over. Peace is here! (END)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대한제국 최초 애국가.mp3

 

 

 

대한제국 최초 애국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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