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대한민국 최초 방송 종군기자 한영섭

이장춘 2022. 10. 20. 19:40

사진설명 ; 좌. 6.25 전쟁 중 한영섭기자, 우. 6.25 군 지휘관(백선엽, 유재흥, 김계원)과 종군기자 (한영섭, 김진섭), 2007년 10월 2일 국군의 날 계룡대에서

現職「6.25 참전 종군기자회 회장」韓기자는 95세로 「흥남철수작전」을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산 증인이다. 1949년 2월 공개경쟁시험을 거쳐 KBS 중앙방송국 기자로 들어와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과 함께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국방부를 출입하게 되었다. 6.25가 터지자 방송이 전시체제로 바뀌어 전쟁터를 누비며 취재 활동을 수행했다. 1950년 11월 최전방의 적진을 무너뜨리며 북진하는 UN 한국군 수도사단의 종군기자로 같은 군 트럭에 타고 가던 병사가 적탄에 쓰러져 가는 상황을 체험하며, 자신의 生死를 가늠 할 수없는 속에서 최북단 청진 끼지 진격, 상황을 취재 보도했다. 북진 중 KBS 원산, 함흥, 청진방송국을 보호하며 그 방송시설의 단파방송을 통해 서울 중앙방송국으로 기사를 송고, 어느 종군기자, 어느 언론사보다도 빠른 소식을 세상에 전했다. 그러던 한기자도 흥남에서 퇴로가 막혔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처참했던 그 현장, 흥남부두에 모여들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울부짖는 10 여만의 동포들을 보며 그들을 배에 태워 피난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동분서주한 그 주인공, 그가 바로 23살의 젊은 KBS 한영섭 기자였다. 휴전회담 중의 판문점 취재, 공비들의 활동중심지 남원방송국 건립, 1958년 3월 KNA여객기 납북·송환과 판문점 최초의 실황 중계방송 등등 숱한 전쟁비화를 않은 한 기자는 4.19가 일어난 해 10월 KBS보도실장을 마지막으로 현업에서 물러났어도 늘 마음은 방송에 있었고 오랜 기간 한국방송인 동우회 (사, 방우회)회장, 대한언론인회 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