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2월 16일, 이 자리에서 한국의 방송전파가 처음으로 퍼져 나갔다. 비록 우리말을 끝내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을 가슴 깊이 감춘 채였으나, 여기서 비롯된 우리 방송 전파는 우리 손으로 우리 배달겨레를 위해서 힘차게 자라, 앞으로 한가람 푸른 물과 마뫼 (필자 주: 한강과 남산의 우리말) 높은 바위가 마르고 닳도록 겨레의 마음을 실어 하늘 높이 그리고 멀리 쏘아 올려야 한다. 그 뿌리를 잊지 않고 더욱 더 빛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 첫 방송 터에 비를 세워 오래 오래 기리고자 한다.」
1987년 9월 3일 방우회장 문시형
첫 방송 터 碑 후면, 동판에 건립을 위한 마음을 모은 분 122명의 성함과 함께 새겨진 글이다.
6.25로 첫 방송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터는 인근의 덕수초등학교와 조선일보로 주인이 바뀌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방송에 임하고 있는 대부분의 방송인들도 우리나라 방송역사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가 많았다. 방우회(사, 한국방송인 동우회)는 이곳이 첫 방송 터임을 후세에 길이 남겨 기념해야 한다면서 유허비 건립을 추진, 방송인들의 마음을 모아갔다. 지정된 방우회 통장에 5,000원에서 100만원까지 122명의 이름으로 들어온 성금이 1,200만원에 이르렀다. 그 122명의 이름 속에는 경성방송국 설립자 고 노창성, 고 시노하라 쇼조와 조선방송협회(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던 在日 일본인 모임), KBS 아나운서실 이름도 올랐다.
방송인이자 조형미술의 선구자 최만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비가 다듬어져 1987년 방송의 날 제막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유허비 건립에 마음을 모은 방송인들, 그리고 경성방송국 건립자의 한사람이자 일본인 마지막 방송국장 고 시노하라 쇼조 아들부부와 경성방송국 마지막 일본인 여자 아나운서 고가 도애꼬도 참여 했다. 방우회는 해마다 이곳에서 첫 방송 터 기념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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