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아나운서(尹吉九)

이장춘 2022. 9. 19. 03:03

방송을 소리로만 듣던 시절! 방송인들의 모습은 상상의 나래를 폈다.

방송을 들으면서도 어떤 분이 어떤 모습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일까?

늘 궁금했다.

방송의 별이라고 일컬었던 윤길구 아나운서 손주 윤병주님께서 보내주신 특이한 두 장의 사진을 골랐다. (좌) 는 1943년 입사당시이고 (우) 는 6.25 피난 시절 부산방송 스튜디오에서다. 특이한 군복차림! 윤길구 아나운서는 전쟁 중 대부분 이 옷을 입고 살았고 그래서 자주 話題에 올랐다. 여름에도 왜? 그런 옷을 입느냐고 물으면 "더운 날에도 이런 옷을 입어야 더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면서 유머러스하게 넘겼고 더운 날 식사를 하면서 옷을 벗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도 벗는 법이 없었다. 실은 內衣를 입지 않아서 옷을 벗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강찬선 아나운서의 말). 그 시절 방송인들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윤길구 아나운서는 단파방송 海內ㆍ外 연락운동으로 많은 방송인들이 자리를 비운자리에 1943년 공개채용으로 들어와 뉴스는 물론, 야구중계방송 등 스포츠 중계방송, 해설방송 등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고, 중앙방송국 방송과장, 부산방송국장, 초대 국제방송국장, 두 차례의 중앙방송국장 (초기 TV방송국장 겸직) 역임하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1966년 5월 16일 49세의 젊음을 뒤로하고 영면하셨을 때 처음으로 “방송인 장” 장례를 치렀다. 어려워도 어렵다 하지 않고,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걱정하지 않고 집에서 끼니 끌일 것이 없던 때도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면서 낙천적으로 살았건만, 그러나 타의에 의해서 방송을 떠나는 괴로움, 그로 얻은 병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님은 49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때까지 공식모임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긴 방송인들은 이 자리에서 송인들의 모임 체를 제안, 鐵塔會를 결성해서(정환옥 님이 남산 타워 건설 할 때 그 이름을 따) 오늘날의 사단법인 방송인 동우회(방우회)가 되어 56년을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