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월 16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연두기자(군정청)회견이 있었다. 1945년 8월 16일 해방되던 그 다음날 방송기자가 된 문제안의 귀중한 사진 속에 군정청 당국자들과 기자들이 함께 한 이 역사적인 사진이 있다. (1945년 11월 1일 신경-지금의 장춘-에서 활동 하던 조동훈이 기자로 오기 전 까지 KBS에는 문제안 기자 만 있었다.
문제안은 해방 전 날 밤 「同盟通信(도오메이 쯔우싱)」에서 해방소식을 취재 하던 중 헌병대에 감금당했고, 해방되던 다음날 아침 임시로 명명된 방송국이름 「SEOUL STATION」을 붓글씨로 써 걸기도 했다.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 모습을 어느 매체보다도 앞서 취재한 주인공으로 첫 '대한독립만세'를 여기서 힘께 불렀다고 했다. 9월 8일 미군이 진주하던 날 그 모습을 취재했으며, 9월 9일 일본어 방송을 하던 제1방송 채널을 우리말 방송을 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10월 16일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 왔다는 이승만 박사 귀국소식을 그 다음날 아침 10시뉴스에 알렸고 11월 23일 김구선생님이 귀국소식을 다른 매체에 앞서 전했다.
방송국이 군정청 소속이었을 때 미군정청과 대한민국의 국민의 생각이 달라 국민의 뜻을 따라 취재활동을 펴다가 파면당하는 쓴 맛을 보기도 했다. 1947년 KBS에 복직한 문제안은 프로듀서가 되어 「스무고개」프로그램을 최초로 편성 제작하는 등 방송발전에 기여했고, 방송국을 떠난 뒤에도 스무고개, 재치문답, 세계여행 등 출연자로 인연을 이어갔다. 「KBS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임을 강조 해 왔다. 문제안은 KBS외에도 자유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HLKZ 등 여러 언론사에서, 그리고 한글학자로 폭넓은 활동을 했으며 6,25종군기자를 하면서 그때의 얘기를 쓴 「남북삼천리」는 명서가 되어 많은 분들이 읽었다. 2012년 6월17 세상을 뜨시기 전까지 해방정국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말 할 수 있는 인물로 필자는 이 분의 육성을 비롯해서 여러 증언을 기록으로 남겨 「KBS 사우회 사이버 박물관」 등에 등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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