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수 재미시인

죄는 죄의 꼬리를 물고 재미시인 박복수

이장춘 2019. 4. 7. 04:39

 

 


이 글은 방송인이자 미국에

사시는 춘하추동방송 가족 박복수

시인께서     여기 올린 사진과 함께

4월 7일 보내오신 글입니다. 배경음은

박복수 시인께서 스스로   낭송하신

 윤동주 별헤는 밤입니다.

   








  죄는 죄의 꼬리를 물고 / 재미시인 박복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사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죄를 지으면

여생을   고통 속에서 피를 말리는 삶을 살다

가야 한다는 것도 다 알고도 남음이 있다.  허나

본의 아니게     혹은 타의에 의해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이나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단 한번인    인생이기에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다.    자식들의 성장은 대견하고 기쁘나

한시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듯 곧 대학을 동부로

떠난다는 쌍둥이 손자 손녀가 사위랑

저녁을 사 들고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잔다. 너무 감사하게 동부,

서부의    명문대가 다 입학을 허락하는

축하 편지들을 보내왔단다.     나는

살며시 서제로 와 컴퓨터 앞에

와 앉아 이 글을 쓴다.

  



  

아주 오래전일이 생각난다.

조카의 U.C. Berkeley 졸업을 축하하러

두 살짜리 손자 손녀들까지 (금년에 대학을

가기위해 동부로 다 떠난다.    그러니 16년 전

이야기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 매이씨 백화점

건너편에 위치한 하이엇 호텔,   27층에 여장을

풀었다.   방은 동생내외의 세심한 배려로

32층에 있는 리전씨 클럽( Regency

Club)에서 제공하던 가벼운

식사를 포함시켰다.

 

원래 리전씨의 말뜻은 섭정,

정치를    논의한다는 뜻이다.

찾아 온손님 대접하는 장소로 투숙자들을

 위해 마련된 듯싶다. 어린것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먹을 수 있도록 한 이모내외의 지극한 사랑이였다.

맛있는 충분한 음식들이었으나    저녁식사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졸업하는 조카의

친구들을 초대한 졸업

축하연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가족들

보다 한 발 늦게 승강기에 올랐다.

32층을 눌렀으나 32층을 지나 그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동승했던 중년

백인부부도 기계가 고장이라 한다. 그럴 리가

없어 찬찬히   패널 (panel)을   드려다

보니 방 키를 입력시키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클럽문도 투숙한 방열쇠로

열어야했다. 철두철미한 조치였다.

리전씨 클럽 써-비스가    포함된 방에

투숙한 경험이 그때가 처음이어서 (지금은

감사하게 많이 경험해 익숙해 졌지만)

그런 촌극을 벌린 것이다. 감사하고

재미있던 추억이다.

 

식탁에 앉으니 바다 한 복판에

알카출애즈 Alcatraz)  감옥이었던

섬이 한 눈에 들어왔다.    죄! 얼마나

무서운가 범죄라는 것이!     잘 알려진

이야기로 그 섬 주변의 바닷물은 하도

차고 상어들이 있어 절대로 탈옥을

못하는 곳으로 유명했었다.

 

어느 한 탈옥수는 바다를

건너가기는 했으나 몸이 너무 얼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 후 탈옥수

3명의 행방을 알지 못해 감옥은 폐쇄

하고 그 때는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다.

    

생각난다. 35년 전,

어느 날 새벽 예배에선 살인

현장에 있었다는 혐의로 이십 오년 형을

받은 열여덟 살의 L청년의 감형을 위해 교인들이

함께 기도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즈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스무 살인 K 청년을 위하여

많은 부모들이 함께 기도하며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사연인즉 그 는 동생이 일하는 PC 방이 K가 동생

픽업 하러 갔다 나온 지 십오 분 후에 강도

에게 털렸다. 용의자가 K청년의 바지와

신발이 꼭 같다는 그곳 지배인의

증언이었다.

 

불리한 것은 주인이 며칠 간

부재중이라 현금이   다른 날 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것을 아는 동생의

제보일 것이 분명하다는 증인의 말이 치명적

이였다. 그 PC 방은 경영자도 지배인도 한인동포다.

"그 사람들도 자식들이 있을 터인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판사, 검사는 동양인을 배척하는

사람들이고 불행하게도 두 아이는 같은

판사가 담당이었다.

 

"죄가 없으니 변호사를 쓰지 말라" 는

아들 말에 가볍게 생각 했던지 한인들과

친분이 있는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에게 의뢰한

것이 일단 실수였다.   포근하던 가족과의 밤은

차디찬 공포에 쌓인 외로운 담요 한 자락이

되어 가족을 대신했다.

 

심한 감기까지 한 몫 들어

고통을 더 해 줬다. 가족을 보면

뜨거운 눈물로 무죄를 호소했다.

아들을 지켜보던 부모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귀에 들려오던 어떤 죄수들이

당해야 했던   강제 음행으로  인한

불치의 병균 등   소름끼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되는 악몽이다.

또 내가 속한 합창단에도 늘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또 하나의 어머니가 있었다. 평소에는 의리 있고

자상한 친구가 살인범인줄도 모르고 차를

태워 준 죄다.     사건 후 한국에

나간 것이 온 갓 누명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무죄를 주장하는 부모에게

"그러니 와서 밝혀야한다." 는

권유에 따라 그분은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던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수갑을

채워 끌려가는   자식을 보며   통곡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갇힌 몸이 되어

돌아오지 않던   아들로 인해 헛된

돈을   뿌려가며 피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한다.

오직 감방에 가 있는   사람과 감옥 밖에

 있는 사람차이 일 뿐이다. 성경에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는    말씀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영국의 극작가이며 배우인 카워드

(Coward Noel 1899) 라는 사람은 좀 지나칠

정도로 장난하기를 좋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런던의 명사

20명에게 다음과 같은 속달 우편을

보냈다.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치라" 는 것이었다.

이것을 받은 20명 전부가 런던을 떠났다.

덴마크의 문학자이며 동화 작가인 앤더슨

(Andersen Hans Christian)   의

작품 중에<분홍신> 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마술사가 지어 놓은 분홍신은

한 번 신기만 하면       일생 춤을

추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한 소녀가

그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드디어 신을 신는다.

그 순간 소녀의 비참한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소녀는 춤을 추며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어떤

때는 화려한 거리에서 많은 남성들의 칭찬을

한 몸에 모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무서운 악마의      계곡을

지나기도 한다.

 

자기 집 대문 앞에 까지 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들어오라고 손짓 하지만

분홍신은 억지로 소녀를 이끌고 집을 떠나게 한다.

결국 소녀는 춤을 추다 죽는 것이다. 이것은 죄의

노예가 된 사람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다.

 

죄는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곧 노예로 만들어   자유를 잃게

하고야 마는 것이다. 삼손이 죄에

빠져 당한 일도 그러하다.

 

목숨을 걸고 피할 수 있는 한

피해야 되는 것이 죄라는 생각을 하며

그 아름다운 섬과 바람을 업고   출렁이던

파도는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며 우리 주변에

잠복해 있는 죄와 벌의 경종이 되어 들려온다.

아무리 임시동안 일 할 곳이라도    자녀의

장래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곳인지

잘 심사숙고할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배운다.

 

늘 알며 모르며 크고 작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나의

눈은 해방된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찬

졸업생들, 자랑스러운 조카의 늠름한 모습,

감격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며 아들을 얼싸

않던 동생을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험악한 세상으로 발을 내 딛는 젊은이들의

앞날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오늘 밤은 18년 살아 온 둥지를 떠나

험한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 손자,

손녀들을 위해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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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박복수 시인님과 오른쪽 남편 박영곤 박사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