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전영효! 노정팔 선생님의 저서 「한국방송과 50년」에 있는 기록을 인용한다.
「전영효씨는 61년에 서울중앙방송국 PD로 입사 처음 농어촌의 시간을 맡았다. 그는 원고를 쓰다가 "엔시레지", "사이로"라는 외래어가 나왔다. 그는 그동안 농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 그게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았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고 쉽게 풀어썼다. "엔시레지"는 가축의 사료, "사이로" 는 그 사료를 저장 해두는 탱크로 써 방송했다. 그랬더니 "사이로"나 "엔시레지"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터인데 왜 일부러 풀어써서 혼동을 느끼게 하는냐고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치듯했다. 과공(過功) 이 비례(非禮)라는 말이 이런데 맞는 말이다. 그는 이렇게 친절하고 자상했다. 그는 그후 농사용어뿐만 아니라 사회교양 모든것을 숙달했다. 이런 성격으로 해서 문공부 차관실, KBS비서실장을 지내게 했다. 그리고 라디오 제작부장, 라디오 최고봉인 본부장까지 지냈다.」
농어촌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시절의 전영효 프로듀서가 현장에서 녹음취재하는 모습이다. (노란 선 안), 농어민이 70% 이상을 점하던 1960년대 까지 농사는 천하지대본이어서 농어촌 프로그램이 중요시되던 시절이었다. 전영효 PD가 이 농어촌 프로그램을 위해 바쁘게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이다.
방송인 전영효님과 노정팔님
「한국방송과 50년」의 저자 노정팔 선생님은 누구인가? 1945년 아나운서 공개채용으로 들어왔지만 처음부터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해서 방송 2년만에 조사계장, 편성계장을 지내며 1993년 KBS이사장직을 뒤로 할때까지 50년 반세기에 이르는 세월을 방송과 함께 해 오셨다. 뛰어난 재능과 기억력으로 님이 몸담아 온 기간동안의 모든 일들을 기억 속에담고 계신다는 평을 들어온 노정팔 선생님은 체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50년간의 방송기록을 담아 「한국방송과 50년」에 집대성 했다. 7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 속에는 님의 방송 체험기록이 모두 수록외어있어서 오늘날 그 시절의 방송을 얘기하는 학자, 방송인 등은이 책을 인용한다. 이 책속에는 방송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그 시대 방송을 거쳐간 모든 인사들의 기록이 있어서 또한 방송인명사전이기도 하다. 그 시대, 방송에 종사했던 분중에 간혹 이 책에 성함이 수록되어있지 않은 분은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다른 기록이나 메모를 참고 하셨겠지만 기억에 바탕을 둔 책이어서 다소의 착오가 있을지라도 생생한 체험기록이어서 나무랄데 없는 방송역사서다. 필자는 선생님이 국제방송국장을 하던 1963년 방송국에 들어와 1968년부터 71년까지 선생님의 라디오부장시절, 1988년부터 1993년 KBS 이사장시절 기간동안 모시고 일하면서 많은 일을 배우고 얘기를 들었다. 필자가 방송국에 들어온지 30년이 지나 선생님의 이사장 재직시절에도 말단 직원으로 들어왔던 때 필자의 인상을 그대로 얘기 해 주실 정도로 님의 기억력은 특출하시다. 선생님에 관한 얘기는 오래전에 본 블로그에 써 올린 글이 있어서 그 글을 연결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PD에 관한 짤막한 글을 인용한다.
「PD는 자기가 담당한 프로그램을 자신보다도 더 귀하게 여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때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것 처럼 PD는 자기 프로그램이 부족한데가 없는가 시의에 잘 맞는가. 완성도가 높은가. 제작 을 다 해 놓고도 다시 살펴본다」이 시대의 전영효 PD .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80이 된 오늘에도 건강한 모습이고 얼굴은 늘 명랑하시다.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포근함으로 다가 온다.
노정팔 선생님 (이하 존칭생략)이 생전에 가까운 분들과 함께하는 모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오늘날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는 「산길회」라는 모임이 있다. 선생님이 세상을 뜨시면서 오랜세월 함께 해온 박경환님이 회장을 맡고있는 이 모임은 박경환, 전영효를 비롯해서 가나다 순으로 김수웅, 김승한, 김일영, 박진우, 배덕환, 송영수, 엄복영, 이상익, 정기채, 최경호가 함께한다. 80세로부터 89세에 이르는 원로방송인들의 모임이다.
남산방송국 앞에 작은 다방이 있었다. 남산방송국에서 근무하신분, 그시절 남산을 찾으시던 분들 산길다방을 모르시는 분이 없다. 남산 방송국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직원의 이름은 잊어버려도 그시절 늘 웃는 얼굴로 포근한 정을 담아 감싸던 아가씨 미쓰 정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없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사람들은 젊었을때의 그 얼굴을 떠 올리며, 화제에 올린다. 그 산길다방에는 잠시의 휴식을 위해서 또는 방송국에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들리는 방송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출근시간이면 의레히 그 다방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퇴근시간에도 잠시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산길" 하면 그 다방을 연상하는것이 자연스럽다. 노정팔선생님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임을 시작하면서 그 이름을 "산길" 이라고 붙혔다. 그 다방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산길하면 그 다방을 떠 올린다. 선생님이 생전에 만든 "산길회", 세월이 흘렀어도 그 모임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아무라도 회원이 되는것은 아니다. 그 모임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추천을 해야하고 100%가 찬성을 해야 입회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모임이지만 오랜세월 끈끈한 정으로 이어온다. 필자는 그 구성원이 아님을 밝혀 둔다. "산길회"의 무궁한 발전, 그리고 구성원분 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사진과 함깨 보는 전영효님
1973년 공사창립을 위한 임원과 부장, 국장급 첫 발령을 받은분들이 함께 한 사진. 참으로 귀한 사진을 전영효님이 제공해 주섰다. 머리사진과 같은 시기에 촬영한 이 사진은 공사 창립때의 임원과 부장급 이상의 간부 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진이기도 하다. 전영효님은 한국방송공사 초대 사장 비서실장을 지내셨다.
사진의 앞줄은 임원진으로 1973년 2월에 부임하면서 정관과 직제를 제정 국장, 부장, 차장, 일반 사원순으로 1973년 4월 초까지 공사창립 인사발령을 일단락 지었다. 앞줄 왼쪽부터 임원진, 강찬선이사, 최창봉 부사장, 홍경모사장, 노정팔 감사, 조돈준 이사, 이인관 이사다. 사장과 부사장은 당연직 이사이고 이때 최창봉 부사장은 방송총국장, 조돈준 이사는 경영총국장, 이인관 이사는 기술 총국장, 강찬선 이사는 연수원을 맡았다.
두번째 줄 부터는 국장급과 부장급 간부들이다. 번호순으로 7. 한기선, 8. 방흥안, 9. 10. 이완규, 11.유병은 12. 13. 김성열, 14. 이상설, 15, 전옥배, 16. 김덕수, 17. 신정휴, 18. 김도진, 19. 이종만, 20. 이명석, 22. 민두식, 23. 전영효, 24. 김상헌, 25. 윤치호, 26, 유신박, 27. 황병찬, 28, , 29. 김헌수, 30. 조남두, 31. 김필수, 32. 채유석, 33. 장영오, 34, 권오진, 35. 성기석, 36. 조찬길, 37. 김광식, 38. 이규항. 이춘명, 40. 박경환, 41. , 42. , 43. , 44. 홍삼용, 45. 윤헌영, 46. 박수환, 47. , 48. 이용실, 49. 최규락, 50. 51. 이병열, 52. , 53. 이범경, 54. 변형하, 55. 최두헌, 56. 정하룡, 57. 오승룡 모르는 분이나 잘못된 성함은 추후 수정 보완 하겠습니다. 이 가운데 몇분은 차장 으로 발령받은 분도 있습니다.
1968년 11월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일본 NHK연수소에서 KBS와 PD, 등 방송요원 20 여명이 "TV프로그램 제작 연수를 받았다. NHK 연수소 현관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번호따라 1. 송영수 2.님태우 , 3.김문무 , 4. , 5. 신윤생, 6.이동희, 7.차범석 , 8. .9. 10.황은진(MBC) 11. 전영효, 12. 윤일우, 13. 홍삼룡, 14.최승일, 15. .16. 17.김기주(MBC). 18. 19 , 당시 최연장자였던 차범석(1924년생)이 반장을 맡았고 연수생 가운데 KBS 김홍태 PD 전재만 기자는 사진에서 빠졌다. 1965년 국교가 정상회 된후 최초의 일본 단체연수로 알려져 있다. 70년대는 칼라방송 준비등 국내의 급변하는 방송환경과 한.일관계 개선 등으로 일본연수가 자주 있었다.
1975년 홍경모사장 광주국 순시때 광주방송국 간부들과 함께 한 기념촬영, 전영효님은 비서실장으로 광주방송국에 와 이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윤일우, 변형하, 전영효, 전옥배, 홍경모 (사장), 임준택, 전응우, 임동익, 뒷줄 왼쪽부터 이성수, 오이열. 장영길, 임연택, 이장춘, 박재복, 조웅, 위준양, 변영준님이 함께 한 사진.
2014년 문공회 송년회, 서규석님과(가운데)함께 전영효님
2014년 문공회에서 아! 이 얼마만인가? 남산방송국 시절에 해어져 이제야 만나다니.... 프로듀서 전영효님과 엔지니어 고흥복님이...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한국방송과 50년이라는 방송 역사서가 저자의 생생한 기록으로 쓰여졌다니 이보다 더 진실된 벙송역사가 없을터인데, 더러 자신에 관한 기록이 누락되어 섭섭하셨을 분들 계시겠지만 이런 기록서를 책으로 펴내신 노정팔 선생님, 참으로 귀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75년이면 제가 강진군청 공무원 시절, 광주 동구 학동에 있는 전남지방 병무청을 뻔질 나게 드나들던 시절 입니다. 빛 바랜 한장의 사진속에서 이장춘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반갑고 기쁨니다. 청운의 푸른꿈이 부플던 시절,화사한 모습의 이장춘 사장님!을 노정팔님!의 덕분으로 보게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보답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꼬박 꼬박 답글을 올려드리는 일 밖에 할것이 없습니다.수 고하신 글과 방송계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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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KBS사우회 원로회우 모임에서 오른쪽부터 전영효, 조부성,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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