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벌써 방송국 아나운서생활을 한지 50년 반세기가 지났건만 어찌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던 그 시절이 기억에 생생하시단다. 4.19때 아직 아나운서생활 1년이 채 안되던 새내기 아나운서가 꿈에도 생각 할 수 없었던 그시절 가장 중요시 했던 낮 12시 마이크 앞에 앉아 뉴스를 전했던 일, 오랫동안 화제거리가 되었던 그 일은 방송사에 전무 후무한 일이 되었다. 4.19 대모가 한창이던 때 데모대가 방송국에 몰려와 임택근 아나운서를 상대로 KBS보도 태도를 따지자 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그 뉴스담당 임택근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갈 남자 아나운서는 없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뉴스를 펑크 낼수는 없는 일이어서 김경숙 아나운서가 그날 뉴스석에 앉아 뉴스를 전했다. 그 일이 오래도록 화제에 올랐고 방송사상 유례없는 일이 되었다. 사진기록과 함께 그 때 그 시절 얘기를 쓴다 김경숙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하기 시작한 여성아나운서가 1959년에도 다섯명의 여성 아나운서에 청일점 김주환 아나운서가 입사했다. 김경숙을 포함한 김순영 김정현, 김현수, 서선벽, 청일점 김주환 아나운서가 그 분들이다. 김경숙은 1959년 5월부터 1964년 Vienna 비엔나 유학 떠나는 남편따라 해외로 떠날때까지 5년여를 재직했다. 여자아나운서가 결혼을 하면 퇴직하던 관례와는 달리 아직 어린 아이가 없던때라 비교적 오랜세월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Vienna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KBS와 TBC의 TV방송 진행자로, 또 비엔나의 음식과 풍물 , 문화 등의 전달자로 방송 마이크 앞에 앉았다. 2015년 9월 15일 서울역 역사문화관 사랑하라 대한민국 광복70년 특별전시회장 방송역사 해설현장에서 김경숙 아나운서가 TV방송에 출연하던 때의 기술감독구본출 선생을 만나 더 할나위 없는 반가움의 회포를 풀었다. 위는 김경숙 아나운서와 함께 들어온 동기생들이 입사교육을 시작하던 시절 1959년 5월 3일 남산약수터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왼쪽부터 김정현, 김순영, 강익수 (계장), 장기범 (실장), 서선벽, 김현수, 김경숙으로 청일점 김주환 아나운서는 이 사진에 없다. 동기 중 김순영 아나운서는 일찌기 퇴직했고 김주환 아나운서는 동아방송 등에서 오랜세월 아나운서 생활을 했으며 김정현, 김현수, 서선벽아나운서는 퇴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김현수 아나운서는 뉴욕, 김정현 아나운서는 워싱턴에 서선벽 아나운서는 LA에서 방송생활을 하다가 시에틀로 옮겼다. 더니 다시 LA로 옮겼다는 소식이 왔다. 그러던중 2015년 9월 30일 새벽 참으로 반가운 메일 한편이 전달되었다. 미국에서 한국어 방송을 개척하고 키워온 김영우 선생님 주선으로 서선벽 아나운서로부터 직접 전해주신 이메일 이다. 그 원문을 옮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선벽 입니다. 김영우 선생님을 통해서 국장님께서 저의 연락처를 찾으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현재 Los Angeles에 살고 있습니다. KBS를 그만 둔후 곧 남편 따라 미국에 온 셈이지요. 이곳에서도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가 나이가 되어서 은퇴 하였습니다. 하도 오래전의 KBS 라서 감개가 무량합니다. 제게는 email로 연락 하시면 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서선벽 올림 이 얘기를 김경숙 아나운서에게 전해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오셨다. 참으로 반가운 일, 뜻 깉은 일이다. 감사합니다. E-mail로 선벽씨 전화번호받아 반갑게 통화하였습니다. 곧 자세한 얘기 전하겠습니다. 김순영, 김정현, 김경숙, 서선벽, 김현수 김경숙 아나운서가 근무 하던 시절은 4.19와 5.16등 격변기에 해당하고 남산과 정동에서 동시에 방송을 하던 시절이며 라디오방송만 하던 KBS가 텔레비젼방송을 새로 시작하던 시기다. 그때는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전에 대한뉴스가 상영되었던 시절이고 남녀 아나운서가 함께 해설을 했다. 1950년대 강영숙, 이현숙 아나운서가 하던 여성 아나운서의 해설은 1960년대 김경숙 아나운서가 담당해서 1년여기간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전, 대한뉴스에서 김경숙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위 사진은 남산방송국 앞에서 동기 김정현, 서선벽, 김현수, 김경숙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이다. 김수녕은 일찌기 퇴직해서 이 사진에 없다. 그시절 김경숙 아나운서는 여러프로그램을 담당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아 보시라고 했더니 "누가 누가 잘하나" 공개방송이라고 했다. 세월이 지나 유혜선 아나운서가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고 있던시절 역대 사회자들을 초대해서 당시에는 이 프로그램을 어떠한 방식 으로 진행했는지를 특집으로 방송한적이 있었는데 당시 출연한 전 사회자들 한테 메달을 만들어 주어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 메달을 꺼내어사진으로 촬영했다. 김경숙 아나운서의 사진에서는 정동방송국 에서 남산으로 옮기던 시절, 정동방송국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긴 남산스튜디오 모습도 볼 수있다. 위 사진은 1959년 9월 김경숙 아나운서가 첫 방송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인데 스튜디오 안에 두개의 턴 테이블이 있고 아나운서 마이크 뒤에 조정판이 있다. 남산 스튜디오에서는 이런모습을 갖춘 스튜디오가 한, 두개 밖에 없었던 것 같아 이런 사진은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다. 원래 정동 방송국에서는 방송국 초기 건립때부터 스튜디오가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어서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려놓고 방송을 하며 조정판을 썼다. 방송하는 아나운서가 그 일을 해야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고 애피소드도 제법있다. 77DX 마이크는 남산방송시절부터 사용되었고 그 이전 정동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던 마이크가 쓰였다. 그래서 마이크만 보아도 어느 시절의 방송국 스튜디오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때 방송국은 1957년 말 남산으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제1방송과만 옮겼고 제2방송과는 정동에 그대로 있었다. 아나운서와 엔지니어도 각각 제1방송과와 제2방송과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김경숙 아나운서가 신입사원으로 발령을 받을 때는 전원 제1방송과 소속으로 발령을 받았고 선배 아나운서들이 제1방송과와 제2방송과 순환근무를 했다고 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5.16직후 1961년 7월 제2방송과가 모체가 되어 국제방송국이 발족한 후에는 직제에 따라 국제방송국 소속 아나운서가 있었지만 근무는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실에서 그 근무 조에 따라 방송을 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굳이 중앙방송국, 국제방송국 소속이 구분 되지 않았다. 그 시절 국제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와 기자는 각각 7명 정도가 있었고 직제상 아나운서는 대공과, 기자는 해외과에 속해 있었다. 1968년 7월 25일 서울 중앙방송국과 서울 국제방송국, 서울 TV방송국이 통합되어 중앙방송국으로 될 때까지 그렇게 운영되었다. 그시절 제1방송은 HLKA이고 HLCA는 제 2방송으로 대공방송을 포함한 국내외 방송을 함께 내 보냈으며 HLSA는 대공 전용채널이었다. 때로는 HLCA와 HLSA채널이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고 국제방송국이 따로 독립된 뒤에는 HLSA채널이 대공방송 전용채널로 사용되었다. 머리사진에도 올라있는 위 사진은 공보실에서 HLCA 홍보용으로 촬영한 사진이라고 했다. 남산스튜디오 HLCA 마이크 앞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77DX 마이크옆에 딩동뎅 실로폰?이 놓여있다. 이런 모습을 담은 사진도 찾기 힘들다. 1962년 9월 남양의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 라고 하는 남양송신소가 준공되었는데 그때 홍보용 사진 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오늘날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 사무차장보로 전 세계을 무대로 활약하는 자랑스런 대한만국의 딸 강경화님의 어린모습이 담긴사진이다. 1963년에 촬영한 사진으로 가운데가 강경화 왼쪽 김경숙 아나운서다. 1963년이면 강경화님 10살때이고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아래는 강익수 아나운서가 장기범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미국 VOA에 파건되던 때 김포공항 환송장에서 촬영한 사진 이다. 그때는 김포공항이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이다. 김주환, 최계환, 김경숙, 강찬선, 김현수, 강익수아나운서가 함께했다. 강찬선 아나운서와 (1961년) 1959년 신인 아나운서 교육후 공보실(그시절에는 방송국이 공보실에 속해 있었다.) 에서 주관 야유회를 갔다. 남한산성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때는 지방방송국 아나운서도 함께 교육을 받아서 앞줄 왼쪽 첫번째는 지방 아나운서이고 두번째부터 김현수, 김경숙, 서선벽, 김순영, 김정현, 뒷분들은 김주환과 지방아나운서, 그리고 공보실 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HLKA 중앙방송국 통근뻐스로 신인아나운서 야유회 길에 올랐다. 위 사진은 그 통근차 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김경숙, 김정현, 김순영, 김현수, 서선벽 김정현, 김순영, 김경숙, 김현수, 서선벽, 뒷줄 왼쪽 김규 야유회에서 계임하는 장면으로 김경숙아나운서가 남자 윗도리를 뺏어 입고 깨임하고 있다. 그당시의 방송관리국장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김순영, 김현수, 김경숙, 관리국장, 김정현, 서선벽 앞 김경숙, 가운데 김정현 남산박송국 김경숙, 김정현, 김현수 김경숙, 김현수, PD 이혜정, 김정현 남산방속국 정문에서 김경숙, 김현수, 김정현 1959년 9월 첫방송 기념사진, 방송국에 아나운서로 들어오면 4-6개월은 실습을 받고 방송 마이크 앞에 앉는다. 김주환, 송영필, 엔지니어 안금선, 김경숙 김경숙, 배덕환 남산 아나운서실에서 송한규, 김경숙, 임국희 남산방송국 정원에서 어린이시간 생방송을 마치고 남산 KBS중앙방송국 스튜디오 에서 늘 가깝게 지내시던 김경숙, 윤영중, 이현숙아나운서와 함께 했던 사진과 윤영중 아나운서 결혼사진 한장을 올렸더니 다음 글을 보내 주셨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안녕하시지요 언제 이런때가 있었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숙 선배가 요즘은 어떠한지 궁금하던 차에 사진을 접하니 반갑기도 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네요 제가 송영필씨와 함께 근무를 많이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교육도 장기범실장님이 같이보냈답니다. 그런데 수십년동안 소식을모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 모르네요 남편따라 미국가서 소식도 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끈켰답니다. 언젠가는 소식듣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춘하추동에서 보았답니다. 결혼식 참석 한것은 기억하는데 사진 찍었는지는 모랐습니다 ^~^ 아나운서실 칸막이 뒤에서 송영필, 김경숙 1961년 잡지 신태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국장님께서 방송부문을 해설하시던 그날 뵈었던 김경숙 여사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김경숙 여사님이 가져오셨다는 귀한 자료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군요. 정말 한장의 사진, 한줄의 글이 해를 거듭하고 세월이 지날수록 얼마나 귀한 사료가 되는지를 실감합니다. 잘 보관하고 계시던 추억의 사진들을 기꺼이 여러사람이 알 수 있도록 알맞는 채널로 제공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김경숙 여사님, 이제처럼 건강 지키시며 늘 즐거우시기를 기원합니다. 김경숙선생님 답글 유카리나 여사님의 따뜻한 말씀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장춘 국장님께서 고맙게 해주셔서 가능한 일이 지요. 유여사님 께서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경숙 아나운서님께서 2015년 12월 21일 아침 국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아침 선벽씨 한테서 반가운소식이 왔답니다. New York 에 가서 김현수씨를 수십년 만에 상봉했답니다. 제가 주소를 알려 주었답니다. 현수씨한테서도 소식이오기를 고대합니다. 국장님께 너무 규마워서 알려 드립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김경숙 드림 2016년 새해 첫날 춘하추동방송 염원의 글에 다음 글을 올렸다. 1950년대 김경숙 아나운서 춘하추동방송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금년에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행복 하였습니다. 타국에 살고있어 수십년 소식이 끊겼던 ann. 동기들과 Ka-talk으로 computer 하루가 멀다하고 추억을 되살리며 80 노인들이 20대로 되돌이 왔다면서 행복해 한답니다. 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금년도 다 기울었으니 새해에도 춘하추동방송 가족 여러분의 댁내 두루 무탈하시고 건강과 함께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2015년 크리스 마스날 참으 로 반가운 카톡과 이메일이 왔습니다. 1950년대 방송선배김경숙 아나운서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살고 계시는 김경숙 선배 아나운서 입사 동기 서선벽 선배로부터 온 이메일입니다, 위 김경숙 선배님의 글은 이내용을 바탕으로 써보내주신 글입니다. 아래 관련글을 올립니다. 선배님들 승인없이 이 글 올리는것이 실례인줄 알지만 너무 감동적인 사연이라 올렸습니다. 수십년간 소식 모르고 살던 선배들이 춘하추동방송을 통해서 만나 또 하나의 만남의기적을 이룬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벽씨가 어제 김현수씨 하고 20년만에 통화 하였답니다. 제가 이번 Xmas에는 큰선물을 받았습니다. 덕분입니다. 감사 합니다. 선벽씨가 우리 사진 올려 주어서 보았답니다. 임국희 회장도 만일 통화하면 안부 전해 달라고 해서 우리 회장님이라 했더니 아주반가워 하였답니다. 임 회장 경기여고 선배랍니다. 김경숙 드립 또 3일이 지나 성탄절 이브 날에 국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아침 선벽씨 한테서 반가운소식이 왔답니다. New York에 가서 김현수씨를 수십년 만에 상봉했답니다. 제가 주소를 알려 주었답니다. 현수씨 한테서도 소식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국장님께 너무 고마워서 알려드립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바로 그날 미국 서선벽 선배님으로부터 이장춘 국장님, 건강 하시고 더욱 새롭고 뜻 있는 많은 일들을 이루시는 새해를 맞으시기 기원 합니다. 잊고 있었던 저의 지나간 세월의 어떤 날들을 다시 찾아주신 국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현수 아나운서의 이메일 주소는 ㅎㅎㅎㅎㅎ입니다. 현재 New Jersey 에 살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심을 기원합니다.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미국 la에서 서선벽 드림 2016년 1월 2일 김현수 선배님으로 부터 2016년 1월 2일 반 미국시간으로는 1월 1일 새해 첫날에 미국 뉴 저지주에 사시는 김현수 선배님으로 부터 이메일로 소식이 왔다. 참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원문을 올린다. 80대가 이메일로 이역만리 멀고 먼 땅에서 소식을 전해주시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선생님께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보람된 일에 더욱 많은 번영이 있으시기빕니다. 이제는 무엇에든 빨리 답하지를 못하고 뜸 드리는 시간이 길어지는군요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운 친구들소식 잘듣고 서선벽씨와 뉴욕에서 반갑게맞났읍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방송사적으로 본 역대 여자 아나운서들 1926년부터 http://blog.daum.net/jc21th/17781609 경성방송국과 최초 아나운서 이옥경 http://blog.daum.net/jc21th/17780398 경성방송국 개국 아나운서 마현경http://blog.daum.net/jc21th/17780244 일제 강점기 우리말 여자 아나운서와 최아지(兒只), 김문경 http://blog.daum.net/jc21th/17780489 京城放送局의 女性 아나운사(아나운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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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jc21th/17782013 김경숙 아나운서 시절에는 아나운서도 국가공무원이이어서 5.16후 아나운서들이 공무원 교육을 받았다(교육장소 한양대학교). 아래 사진은 공무원 교육증에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송영필, 왼쪽 두번째 김경숙, 그밖에 편성과, 서무과직원들이 함께 했다. 옛동산에 올라.mp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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