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화 아나운서! 그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민영 라디오방송 최초 아나운서, 부산 MBC 개국 아나운서, 서울 MBC 개국 아나운서, RSB 라디오 서울 개국 아나운서, TBC TV 개국 아나운서, 최장수 아나운서, 5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의 주인공!, 방송계의 진정한 인간문화재, 그토록 이름 앞에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이성화 아나운서가 1964년 5월 9일라디오 서울 (RSB) 개국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오는 KBS 해피 FM (수도권 106.1㎒)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최초의 진행자로 2014년 8월 21일 방송개시 50주년 기념 ‘리멤버 50’ 행사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이성화 아나운서에 관한 여러편의 글이 올라 있지만 오늘은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이 글을 올린다.
이성화 최장수 아나운서 1959년 4월 15일 부산 MBC개국
이성화 아나운서 왕팬은 수 없이 많다. 필자 이장춘도 이성화 아나운서 왕팬들의 댓글 등으로 오늘처럼 친근해지고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박광희 선생으로 부터 몇장의 사진을 받아 올린 그 사진을 보고 여러 얘기를 해 주신 분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날 춘하추동방송과 가장 깊은 인연을 뱆고 있는분 증 한분 이가인 선생도 여고시절 "밤을 잊은 그대에게" 의 왕펜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959년부터 시작된 아나운서 생활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1970년대를 지나 1980년 마이크 뒤로 물러 서는듯 했지만 80을 바라보는 오늘도 방송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57년의 긴 세월이다.
오늘날 방송에서 정규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최장수 아나운서가 되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2년전 방송 50주년 기념행사를 갖은적이 있다. 이성화 아나운서는 그보다 4년이 앞선 1959년 4월 15일 부산 MBC가 개국할때 방송을 한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오늘날 방송을 하는 최장수 아나운서다. 60년,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고 오늘날 최장수 아나운서로 자리 메김한 이성화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 이장춘이 마이크를 함께 하며 두차례에 걸친 방송을 했고 부산 MBC 개국 요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다. 아나운서클럽이나, 방송의 날에도 만나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를 나눈다.
2015년 9월 2일(방송의 날은 9월 3일 이지만 축하연은 9월 2일에 갖는다.) 방송의 날에는 참으로 귀한 선물을 받았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앨범 깊숙히 간직해 온 방송사료 사진을 춘하추동방송에 넘겨주신 것이다. KBS사진이나 또 민영방송의 남자분들로 부터 받은 사료는 있어도 여자 분으로 부터 받은 사진史料는 많지 않던 터이고 더군다나 여러 민영방송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사료인지라 참으로 귀한 사료이다. 오늘 그 사료의 일부를 올려드리고 앞으로도 글씀에 귀중한 사료로 활용 될 것이다.
부산 MBC 아나운서들과 함께 한 사진으로 왼쪽부터 고 권정애. 고 최창식. 전응덕보도과장. 고 이성규. 이상길. 뒷줄 송종두(일찍 하와이로 유학 후 소식 모름), 이성화. 윤미자. 민병진. 주수광님 모두 아나운서 분들입니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쓴 소중한 역사기록들 중에 부산문화방송 사우회(2008년) '빛 과 소리"에 실린 글이 있다. 부산문화방송 초기역사의 훌륭한 기록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따로 만난것이 아니라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중 이성화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며 기록한 구술채록인데 전문가도 힘든 일을 이성화 아나운서가 한 것이다. 그 글을 춘하추동방송에 옮긴 필자는 그 기록을 위해서 몇번의 모임을 갖고 기록으로 정리 한 줄 알았는데 3개월에 한번씩 만나는 식사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그 얘기를 기록해서 책에도 올리고 이성화 아나운서의 블로그에도 올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밑에 그 글이 연결되어 있다.
부산 MBC 창립주역 정환옥선생님 그때의 보도과장 전응덕 선생님과 함께
이성화 아나운서는 방송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야에 걸친 활동영역이 넓다. 부산 MBC 아나운서 시절 한국일보사에서 실시하는 미스코리아 본선에 진출 할 수 있는 부산 미스코리아를 선발 이를 대동 하고 서울에 와서 김지태 MBC사장 댁에서 하룻밥을 머문 적이 있다. 이때가 1961년 5.16 전날로 아침에 일어나 보니 5.16 소식이 들렸다고 했다. 이때 이성화 아나운서가 대동하고 김지태사장 집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냈던 미스코리아 후보는 아래 사진의 엄순영 양인데 이성화 아나운서가 그해 3월 길거리 캐스팅으로 처음 만나 미쓰 경남 1등으로 당선 될 수 있도록 해서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미쓰코리아에 출전 시키려고 서울에 올라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뜻밖의 5.16으로 당선은 물건너 갔지만 이때 김지태 사장 집에서 보고 느낀 얘기, 엄양에 얽힌추억 등을 글로 보내 오시고 댓글로도 써 놓으셔서 보내오신 글과 댓글을 종합해서 올린다.
이성화님이 보내주신 글 중에서
제가 위 사진에서 보는 미스코리아 후보를 데리고 김지태 사장님 집에서 잤던 일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당시 엄양의 나이는 18세였던 것 같습니다, 수십년 연락이 끊겼는데건강하게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엄양에 관한 얘기는 부산문화방송과 인연이 있었고 부산문화방송 창사 50년 사진에 김지태 사장님 아드님 사진도 함께 있어서 옛 추억을 새기며 사진을 드렸습니다. 김지태 사장님 아드님은 아래사진에서 제 오른쪽 있는 키 크고 머리가 흰 분입니다. 김지태 사장님 집에서 자낸날 밤이 5.16 전 날이었는데 아침에 사모님이 저를 깨우시면서 (엣날이나 지금이나 아침 잠이 많아서요) "미쓰 리, 구테타가 일어났대요. ' 나는 "?'이었죠. '구테타'를 22세 처녀가 어떻게 알아 듣겠습니까. 하여튼 이상한 말이고 해서 시청 앞에 가보니까 군 탱크며 . . . 한마디로 해서 5.16 하면 나오는 사진 그 모습을 목격했답니다. 더 길어지는 것을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자막을 멈추면서 떠오르는 그림은 그 때 그 댁의 긴 마루를 닦기 위해 걸래를 집는 바구니를 보니까 새하얀 광목이 비틀어 짜여져 수북히 담긴 바구니를 보면서 내가 느낀 일입니다. "응? 광목이 걸레네. 옷 해 입는 것 아닌가?' 그런 후 세월은 여기까지 왔고 이장춘 춘하추동 방송국 사장님 인연으로 옛 일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한 말씀 올리고 갑니다
이성화 아나운서는 지금도 다문화인을 위한 우리말 회화등 다방면에 걸쳐 쉼없이 할동하신다. 80을 눈앞에 둔 이성화 아나운서는 잠시도 쉼이 없다, 어쩌다 만날때면 그때도 전화 통화 등 쉼이 없다. 그 정력은 타고난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길이 없다. 지금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계신다. MBC부산방송 얘기가 있고 多文化에 관한 얘기가 있으며 관악방송에서 방송한 "쾌지나 청춘"에 관한 얘기가 날자별로 모두 정리되어 있다. 아래 블로그 주소가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이성화 아나운서에 관한 많은 글들을 올려서 오늘은 그중의 몇 부분을 옮기고 지난날의 글들을 연결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한국 아나운서 클럽회보 줌인 황인우 아나운서 대담 중에서
국내 최초의 심야방송 (주 :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획 시 DJ 선정이 관건이었을 텐데요.
제 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연극 연출가 오사량 선생이 제 목소리를 두고 ‘5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당시 잡지 ‘아리랑’의 아나운서 인기순위조사에서 제가 1위를 차지할 때였지요. 게다가 애드리브가 뛰어나다고 소문나 PD들이 생방송을 하게 되면 저부터 찾곤 했으니, 음성, 인기, 순발력이 캐스팅 요인이라 할까요? 문제는 통행금지인데, 김현 PD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 줄 테니 걱정 말고 하자.”고 해 선뜻 응했지요.
첫 방송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라디오서울 스튜디오가 있는 태평로 1가 신문회관 옆 건물에서 첫 방송을 했어요. 대본 없이 청취자와 전화 연결해 가요, 팝송 등 희망곡을 틀었는데, 레코드를 찾으러간 보조 PD가 바로 오지 않으면 대화하며 시간을 끌어야 했지요. 자정부터 1시까지 생방송을 마치고 관훈동 집에 갈 때면 네온사인도 없는 깜깜한 거리에 제가 탄 지프 한 대만 움직였던 게 어제 일같이 떠오르네요.
지금도 제 귀에 예전에 들었던 ‘밤그대’ 시그널뮤직이 생생합니다.
'시바의 여왕', 참 좋은 곡이지요. DJ 프로그램에서 시그널뮤직이 매우 중요한데, 그 곡은 프로듀서들이 많은 곡을 듣고 의논해서 고른 거라고 기억합니다. 밤늦은 시간, 라디오와 벗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따뜻함,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의 사회상은 어떠했나요?
우리나라가 몹시 힘겨울 때, 방송이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라디오는 따뜻한 진실을 담고, 정서와 정서를 잇는 매체니까요. ‘밤그대’가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는데 프리랜서 DJ 최동욱 씨가 맡으면서부터 청년문화 성격이 부각된 것 같아요.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 연말에 프로그램이 정비되며 아나운서인 제가 다시 방송을 맡아 이듬해 가을 개편까지 팝송 대신 세미클래식과 건전가요를 틀며 진행한 적도 있답니다. 그 뒤 다시 원래 형식으로 바뀌어 DJ가 가수 양희은과 서유석, ‘밤그대’ 일등 공신인 황인용 아나운서와 송승환 등으로 이어졌지요.
선배님은 블로그 (http://blog.naver.com/unjena55)도 운영하며 재능기부도 하시고, 요즘도 어디서나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계신 것 같아요.
방송 그만두고 쉴 때도 사회를 보는 감각 등은 여전했지요. 그러다 다문화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싶어, 모든 일에 말이 첫 번째인데 말의 전문가로서 다 문화인 들을 위해 우리말 회화를 알려주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고향 집 그리워’, ‘코리아 정 들었어요’ 등 가사를 쓰고 작곡가 정풍송 씨가 노래를 만들어 음반까지 냈는데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화 보
위, 아래 사진은 부산문화방송(1959년) 개국당시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위 사진 계단 윤미자아나운서, 아래 민병진 아나운서. 한분 건너 김혜순 pd, 고 이성규아나운서, 이성화 아나운서. 고 이용태 pd님이고 아래는 민병진, 이성화, 윤미자 송종두 아나운서들. 근데 이 작은 4층건물이 나가면 도로여서 옥상 으로 올라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나운서실이 4층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한층만 올라가서 열고나가는 편리함 때문이기도한 것같구요. 너무 오랜 기억이라서요.
부산 MBC 초기 안성수 사장
부산 MBC창립 주역 정환옥(우) 이수열
tbc 동양방송 초기(라디오서울)시절 신년 하례 때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왼편부터 주수광. 이성화. 최계환 (아나운서실장). 원종관. 박병학. 이장우. 윤미자 아나운서.
왼쪽 앞 코리아헤럴드 사장 시절의 김봉기님 (金鳳基 - 국회의원등을 지내셨씁니다.), KBS 외국어 아나운서 박용순, ( ),( )안은 정창명에게 확인요) kbs pd, 정창명, 군복 그 유명한 김재규 사단장 시절. 김재규 오른족 뒤 강영숙, 옆 조봉남, (tbc -tv pd), 이성화 (이 글의 주인공), mbc pd 문숙영, 당시 여류방송인클럽이 있었어요. 그 클럽에서 군부대 방문 가, 사단 둘러보고 대접 받고 기념사진 찍은 기억이 납니다. 그 옆에 선 김재규가 그시절 방문한 군부대 사단장이었는데 후에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역사적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다는 말이 이런 경우같군요. 그시절 강영숙 아나운서가 클럽회장을 맡으셨고 이성화 아나운서는 클럽부회장으로 일 했습니다.
여류방송인클럽이 김재규 사단에 위문갔을때 위에 있는 사진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앞줄 두번째 부터 김봉기사장. 이성화 아나운서(클럽 부회장). 정창명 프로듀서. 강영숙 아나운서 (클럽회장), 한분건너 조봉남프로듀서. 김재규 사단장.
우리나라 여성 단체 첫 운전면허 취득 경험담 좌담방송 장면. 이성화 아나운서 한분건너 조봉남프로듀서. 문숙영 프로듀서. 한분건너 정창명 프로듀서. mc고, 민창기 아나운서. 장소 kbs스튜디오
판문점 남측 초소에서
사라진 동양라디오, TV 아나운서, 탤런트, 가수등 jtbc 재탄생을 앞두고 중앙일보 사옥에 옛 동료들이 모였을 때 촬영한 기념사진으로 뒷줄 왼편부터 류현순 현 ktv 국민방송(국가정책 방송원장). 이희옥 아나운서, 이성화 아나운서, 최명희 보도그래픽 담당, 앞줄 왼쪽부터 이정애 아나운서. 박성희 아나운서 (현 도예전문가 교수). 이영혜아나운서 (현 언론학박사)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윤미자(부산 MBC 개국 아나운서) 엄기형(MBC사장)님과 함께 엄기영
전응덕, 안광민, 윤미자님과
이성화 아나운서님의 글
2015년 9월 15일에 발행된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글을 옮겼습니다.
지난 6월 3일 상암동 MBC 신사옥을 처음 가보게 되었다.
아나운서클럽 제8대 임국희 회장님의 수고로 36명이 현관
에 모이니 과거 이 나라 방송의 주역들이 총집합한 것 같은
시간의 화려함을 느꼈다. KBS, MBC, TBC, CBS, DBS 등
반세기 전에서부터 최근 퇴직 사우들까지 어우러지니 꽃
한 묶음이 보이지 않는 향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듯했다.
손자뻘 되는 현역 아나운서들이 마중을 나와 반겨주며 우
리로 하여금 4·50년 전 에너지 넘치던 청춘 시절의 스튜
디오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누가 청춘을 인생의 꽃
이라 하였으며 누가 아나운서를 방송의 꽃이라 하였던가?
그 시절엔 몰랐다! 많은 세
월 지나고 나니 그 말은 맞
더라.
상상을 해본다. ‘지금 여기
36명이 모여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다면 각양각색의
직업이 있겠지. 긴 세월 지
나는 동안 다른 길에서도 성
공한 그 분들에게 지녔던 직
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추
억을 꼽는다면 어디에 찍을
까? 아마 아나운서가 아닐
까?‘하고 내 마음을 기준해
답을 내 본다.
아나운서는 마이크 앞에서
‘준비된 방송 내용을 종합해
마무리하는 책임과 소화능
력이 있다’라는 긍지가 바로 언제나 마음속에 ‘꽃을 한 송이
가진’ 기쁨의 모습으로 내 벗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기사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림, 물건 등을
나열하면서 기쁨이
보이는 표정을 관
찰해보니 꽃을
볼 때 표정이 제
일 밝아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꽃을 한 송이씩
갖고 있는’ 우리들
전·현직 아나운서
들이여! 살아가면서 현
실은 복잡할 수 있으나 마
음 속 마이크 꽃에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향기를 피우소서.
아울러 광복 70주년을 맞는 동
안 우리는 여성 대통령도 보고
아나운서클럽의 여성 회장도 본
다. 모든 힘의 근원 여성들의 앞
날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6월 3일 MBC 상암 신사옥 견학 시 아나운서 선배라는 인
연으로 불편한 나를 편안하게 안내해준 신동호 국장과 후
배 아나운서들에게 고마움의 글을 씁니다. 특히 나를 호위
무사처럼 끝까지 돌봐준 김대호 아나운서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 날 나는 MBC의 최신 시설과 사옥의 위용에 자랑스러움
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옛날과 달리 잘 정돈된 아나운서실
에서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KBS TV 개국 준비요
원과 초대 아나운서실장으로 일하여 보았던 나는 금석지감
에 또 한 번 구시대 사람임을 절감하였습니다. 1951년에 입
사해 공무원 아나운서 신분으로 일하던 내가 오죽하였으면
신문에 “인기만 먹고는 못 산다”란 성명서를 내고 1963년
에 남산에서 하산, 퇴직하였겠습니까. 그러나 ‘한번 아나운서는 현직이든 전직이든 영원하다’는
건 나의 인생역정에서 겪은 인생관이요, 철학입니다. 이 말
을 꼭 당신 같은 좋은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 자 적어
봅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랑스러운 천직天職 아나운서입니다. 그
러나 일시적 인기와 매명賣名에 도취되어 인간성이나 품
위, 무엇보다도 고귀하고도 소중한 선후배의 정과 단합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산천초목이 변하여도 우리들 세계
의 우정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나운서의 자격
은 소멸되고 맙니다. 이는 MBC 아나운서들에게 전하는 고
마움의 메시지이며 부탁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후배 아나운서들의 활동에 한없는 성원을 보내며
귀사貴社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신동호 국장과 김대호 아
나운서와 맺은 깊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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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1961, MBC개국 아나운서, 1965, 미주방송 개시) 선생님 글
스튜디오 안 마이크 앞에서 DJ 방송을
하고 있는 건강한 이성화 아나운서의 모습!! 반갑고 감격스럽습니다. 벌서 반세기전 일인데 처녀 시절 (MBC초창기)의 이성화 아나운서가 이제는 중년 층 (본인의 연세가 85세인 김영우 아나운서는 본인보다 연세가 다소 낮은 이성화 아나운서가 지금도 중년층인 줄 아시는가 봅니다 ㅎㅎㅎㅎㅎ) 여성으로 변하였으니 격세지감을 느낍 니다. 이성화 아나운서는 그 당시도 방송을 잘 했지요. 앞으로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애청자들을 위해 좋은벙송 많이 하여주십시오 ......
덴뵐에서 김영우 드림
이정부 (강아지 아범) 아나운서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스타...
<나이를 잊은 그대> 이성화 선배님과, <청사 없는 방송국 춘하추동방송>의 <연봉없는 영원한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 이 두분의 관악방송 스튜디오에서의 만남은, 마치 56년전 부산 문화방송 HLKU에서 이성화 아나운서가 탄생하셨던 시점에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자연스럽고, 화기애애 하며, 필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악방송 FM프로그램 <인생은 아름다워>코너를 통해 이미 송출된 내용인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방송도 나가기 전에 춘하추동방송을 통해 여러 스튜디오 영상을 곁들여 듣게 된다는 전무후무한 사태로 하여, 감동이 극대화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56년전과 똑같은 음성과 열정으로 진행하시는 이성화 선배님, 짧지만 저희들이 줄겁고 흥미롭고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갖도록 애써주신 이국장님, 두분의 세월을 거슬러 가시는 노력과 탁월한 능력에 또한번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국장님께선 늘 취재만 하시다가 모처럼 직접 방송 역사 한폐이지를 쓰셨네요, 정담 나눠주신 두분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인수의 '무정열차',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구슬퍼서 좋았고, 박해영의 '레몬트리'는 상큼해서 좋았단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기자에, 엔지니어까지 1인 3역을 하시는 박현숙 프로듀서님께 함께 감사드립니다. '세분은 영원한 방송인'이시라고 엄지손가락을 펴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정부 드림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글
이성화 아나운서님!의 집념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지금도 마이크를 잡으면서 다문화가족에게 언어를 가르친다고 하시니 직업에 대한 정력은 타고 나셨나 봅니다. 9월 14일 아침(7시~8시) 관악 FM 방송에 귀를 귀우리겠습니다. 괜시리 마음이 설레는 것은 무슨 까닭 일까요? 이장춘 사장님!과 이성화 아나운서님!의 감사합니다. 춘하추동 방송 이장춘 사장님!...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한줄의 글, 한장의 사진이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음을 확연하게 느낍니다. 한 모임의 식당에서 사회를 보며 오고 간 말들을 기록으로 적어 남기시는 프로 정신이 대단하고 투철하신 분이시군요. 그 어느 싯점에서고 사람들의 중심에서 인기를 받으셨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니 존경 받으시는 어른이시지요. 젊은 이들의 본이 되시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케이양 선생님 글
아름다운 작품 올려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 이성화 아나운서님 우리나라 최초의 부산문화 민영방송의 ... 최초의 아나운서님 되심을 축하축하 합니다 ^.^* 청사없는 방송 .. 연봉없는 대표님 ..밤낮으로 일생을 오로지 봉사의 ~~ 길을 걸어오신 ㅠ 봉사가 삶의 전부이신 대표님 ㅠ ~!! 너무나 존경 합니다 ^ㅡ^;; 행복은 돈이나 명예나 지식이나 ..그어떤 것으로 도 결코 ~~ 얻을수 없는 것이지요 ... 행복은 희생과 사랑으로만 얻게되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님의 사랑같은 ... 진실된 사랑만이 ..절망과 상처받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 치료할수있으며 ..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가 있답니다 ^.^* 즐거운 월요일 되시고 ..늘 건강하세요 ~!!
언제나 함께해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 ♡♡♡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자요 ~~ 그것을 거듭 말하는자는 친한벗을 이간하는자니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옥수, 박종세, 이성화(필자), 이영혜, 이정애, 정흥숙, 박성희, 임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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