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듣고 계시는 육성은 KBS 청주방송총국 「사람세상 인터뷰 황간역장 강병규」프로그램 동영상에서 따온것이다. 2015년 5월 2일에 있었던 황간역 「한글 꽃 음악회」를 감상하고 그 예기를 쓰려고 했던것이 뜻밖에도 열 한편의 글을 올리고 오늘 열 두번째 글로 그동안 못다 한 얘기 종합편을 쓰게 되었다. 뜻밖의 얘기거리가 많아져서다. 5월 2일에 있었던 그날의 얘기외에도 문화예술역으로 변모한 황간역 여기저기 장식된 시 항아리, 강병규 황간역장 얘기,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최정란 시인, 시를 노래하는 박경하 가수, 한일철도교류, 달이 머물다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월류봉과 그 주변을 휘감아도는 초강천, KBS 1박 2일 촬영지이기도 했던 원촌마을 등등 지나칠 수 없는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을 접해서여기에 관한 얘기들을 올렸다. 그동안 올린 글과 동영상들을 여기서 볼수 있도록 연결하고 못다한 얘기를 보충하려고 이 글을 쓴다.
황간역과 강병규역장 그리고 2015년 5월 2일의 이야기 종합편
영동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최정란 시인은 황간역을 일러 「세계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이라고 했다. 110년의 역사를 이어온 황간역,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별볼 일 없는 역으로 전락 해 버릴 법한 시골역, 추풍령 고개를 오르는 험한 소백산맥, 산중의 고향역 황간역이 오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모으는 역으로 변신한 것이다. 황간역 여기 저기에는 시가 쓰이고 삽화가 그려진, 항아리가 있는가 하면 돌에 쓰여진 시로 장식 되어있다. 옛 고향에서 쓰던 골동품들이 장식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옛 고향을 연상하게 해서 일명 고향역이라고도 불린다. 닭을 기르고 옛 시골정취를 살렸다. 큰 돈을 들여서 조성한 박물관이나 공원을 조성하고 입장료를 받는 곳은 있어도 한 사람의 발상과 실현으로 이토록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듯해서 감동을 받아 여러 얘기를 썼다. .
황간역에는 누구나 와서 공연 할 수 있는 열린무대가 마련되어있다. 그 무대에는 레드카페드가 깔리고 그 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추은 겨울에는 좁은 대합실에서 하지만 봄, 여름, 가을 에는 역광장에 무대를 마련해서 제법 넒은 공연장이 된다. 대합실 한쪽 공간에는 쉼터 겸 전시장으로 만들어 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또 전시장 안에는 마을 주민들과 그 소식들 들은 전국여러곳에서 보내온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첵은 그곳에서도 읽지만 책을 빌려 기차로 왕래하는 동안 읽고 반환하는 사람도 있다. 황간역에는 늘 여러대의 자전거를 준비해놓 고 기차로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무료로 빌려준다. 그 자전거를 타고 초강천 주변길 따라 월류봉을 감상하고 원촌마을에가서 쉬고 돌아 올수 있다.
그림과 서예에 재능을 타고난 강병규역장은 어린시절부터 전국규모의 서화전에 입선하는등 특기를 발휘 해 왔다. 그는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시골역장이 되고픈 꿈이 있었다. 그리고 시골 황간역장이 되어 그날부터 황간역을 문화예술공간 으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에 옮겼다. 옛 장독에 놓여있던 항아리를 모아 아크릴 물감으로 그의 특유한 서채의 글씨와 삽화를 입혀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역장은 황간역에서 할 행사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실현한다. 행사날에는 손님안내나 접대도 하고 공연사회를 보며 직접 카메라에 영상을 담아 인터냇에 올려 세상사람들이 공유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다가 꼭 잡아야 할 영상을 놓치는 날이면 공연 참여자들에게도 미안하고 또 할 일을 다 못한 것 같은 마음으로 부담을 느낄때도 있다. 황간역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하고 글을 써 인터냇에 올린다. 황간역과 인연이 있거나 시 항아리 등에 올라있는 시 노래를 동영상에 담에 인터냇에 올리고 시인이나 작곡가, 가수들에게도 보내준다. 그작품을 받은 당사자는 감동을 받고 황간역을 찾는 이도 있고 도움을 주는 이도 있다. 또 강역장의 시화詩畵에서 악상이 떠 올라 곡을 붙인 작곡가도 있다. 그 노래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니다. 이런일은 스스로 손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가 인터넷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황간을 더 널리 알리고 친근감을 갖게 하는데 큰 힘이 된다. 필자가 짧은기간에 황간역을 이해하고 여러편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강병규 시골역장 블로그와 최정란 시인의 도움에 힘 입은바 크다. 한일 철도교류회가 황간 에서 열릴 수 었었던 것도 또 오늘처럼 황간역이 세샹에 널리 알려진것도. 새상 사람들이 강병규 역장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의 인터냇을 할 줄 알고 밤낮없이 힘을 기울인 결과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가 어떤 일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하며 그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동안 황간역은 방송, 신문, 잡지등에도 자주 그 얘기들이 올랐다, 필자가 방문했던 그날도 일본 NHK에서 취재하는 모습이 보이더니 5월 15일 밤 11시 20분에 방송된다는 연락이 왔다. 강병규역장 그에게는 타고난 재능과 실천력, 현시대에 부응하는 특히 인터냇 세상을 알고 실현하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 2년 남짓되는 짧은 기간에 오늘의 황간역을 이룬것이라고 믿는다. 그도 연세가 있어서 머지않아 정년을 맞거나 다른 역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황간역이 이런일을 더 발전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인데 강병규역장과 같은 분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가 필자의 궁금증이고 관건으로 남는다.
박물관, 문화예술공간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황간역이 말해준다. 황간역 열린공간, 이런곳이 바로 시골 역시박물관, 고향박물관, 항아리 시 박물관이고 문화예술의 전당이다. 이곳 주민들은 얫것을 헛되이 하지 않고 황간역에 넘긴다. 역장은 그런 물건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작업복차림으로 손수 운전를 하며 그 물건이 있다는 곳을 찾아 차에 싫고 온다. 시골역에 기동력이 갖추어 있을리 없지만 강병규 역장의 하는일에 적극 협조하는 분들이 계셔서 도움을 받는가 보다. 그날 황간역 행사에 혼신의 힘을 쏟은 최정란 시인을 비롯해서 믾은 분들이 참여, 도움을 준다. 그날 필자가 타고 월류봉을 들린 승용차 주인 정태경회장도 그런분 중의 한분이다.
황간역에 역무원이 있다고 해도 역장 포함해서 6사람밖에 없어 2사람씩 근무해야 하는 간이역이라 역장이라해도 역무원과 똑같이 표팔고, 플랫폼 오가며 여객 안내하고 안전살피는등, 일상적인 업무가 많아 늘 바쁜 일정일 수 밖에 없다. 본연의 업무 외에 여러일을 하는 역장은 물론 역무원들도 큰 힘을 기울이는 조력자들이다. 현재 황간역에는 강병규 역장외에 다섯분이 근무한다. 근무조에는 역장도 포함된다. 수고가 많으실 역무원의 성함을 알아 보았다. 박내덕 부역장, 신상종 부역장, 고규환 역무원 손재수 역무원, 김성운 역무원이다.
강병규역장은 옛 항아리 자체가 예술품이라고 한다. 유약을 많이 쓰는 요즈음 항아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술품의 항아리에 예술적 창작품을 입였으니 예술품 중의 예술품을 만들어 황간역을 장식한 샘이다. 황간역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예술 문화 공간이고 국내외 유명인사들도 찾으며 전시회나 음악회를 여는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시골역, 고향역이다. 역사(驛舍) 안의 작은 전시관은 늘 크고 작은 작품으로 가득찬다. 한사람의 발상과 실천으로 별볼 일 없을번 했던 시골역이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는 역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새상은 더 뻘리 넓고 깊게 살맛나는 세상으로 거듭날것이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는동안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더 자세한 그동안 올린 글과, KBS에서 제작한 두편의 동영상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앞으로도 황간역에 깊은 관심을기울일 것이며 못다 한 얘기들은 계속 보완 해 나갈 것이다.
황간역을 처음 가던날 가면서 느낀 얘기를 간단히 쓴다. 서울역에서 경부선 무궁화를 타면 그 다음은 완행으로 쉬는 역도 많고 속도도 느려진다. 그래서 서울에서 영동까지는 약 세시간이 걸리고 옛날 완행역차타고 여행하는 기분이다. 다른것이 있다면 좌석이 정해져 있어서 서서 가는 가람은 볼 수 없다는 것과 그래도 가끔은 옛 기차역을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그 지나쳐 버리는 역은 폐쇠되었거나 다른 용도로 쓰일 것이다. 영동역은 경부선이 놀일때 세워진 역으로 1905년부터 역 기능을 수행 해 왔으니 경부서에서는 젱애 오래된 역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석난을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는석탄응의 화물열차를 비롯해서 꽤 만은 기차가 머물며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세상은 바뀌어 석탄대신 기름과 전기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고 구비 구비 돌아 다니던 자갈길을 달리던 자동차는 바로뚤린 고속도로로 변하면서 영동역은 시골역 전락되었다.
정완영 시인과 황간역
97세의 원로시인 흔히 100수 시인이라고 불리는 정완영 선생은 외갓집이 황간이어서 황간과 관련되는 많은 시를 남겼고 황간역에는 정완영시 항라이가 많다. 황간역에 있는 정완영시와 최정란 시인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시 항아리는 50여점이 된다. 아래 글은 최정란 시인이 보내온 정완영 선생 돤련 글과 사진이다.
2014. 8. 9 음악회날 황간역은 국보급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님의 외갓집 가는 길의 늘 '지나던 역으로 시의 역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시의 역 강병규 역장님은 백수 정완영님께 명예 역장님 모자 씌워드리고 강역장님과 주변인들과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답니다. 백수정완영 시조시인의 외갓집은 경북 상주군 모동면 오도티 마을이랍니다. 황간역에서 현재는 차로 10분거리인 경북상주로 넘어가는 재넘어 경계지역 마을이랍니다. 버스가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라 걸어서 다니던 길 이었을거예요
이 글 화보 끝 부분에 시골역장 강병규블로그에서 옮긴 자세한 글이 있다.
2014년 8월 9일 정완영 시인 명예역장 칭호를 받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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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 인터뷰 황간역장 강병규 KBS 청주방송국
황간역 기차타고 온 고향집 시골 간이역의 겨울
오카리나 연주 유카리나 고향의 봄 그린플루트앙상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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