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나운서클럽

배덕환아나운서 특집대담 PBC 평화방송 김지현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이장춘 2014. 6. 23. 18:57

 

 

이 글은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제 14호 (2014년 6월 15일발행)에 실린 초대석

 글입니다.  이 초대석 글을 쓰기 위해 1961년 배덕환

아나운서와 52년차 후배 PBC 평화방송 현직 김지현

아나운서가  2014년 5월 29일 만났습니다. 아나운서

클럽 회보에 실린 글과 함께 그날의 얘기를

 담은 동영상을 올립니다.  

  

 

 

 

 

동영상 보기

 

 

 

 

 6‧25 참전용사로서 1961년 KBS에 입사,

1989년 정년퇴직 후 호주로 이민 갔다가 7년 전

귀국해 남산 시절 동료들의 모임인 목멱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며 노후를 즐기는 배덕환 아나운서.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명동성당 부근 카페에서 가톨릭 신자인 대선배님을

만났다. 싱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선배님의 모습을 뵙자

 나는 긴장이 설렘으로 바뀐 채 선배님의 자상한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글 / 김지현 (PBC) 아나운서

 

 

선배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입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나운서들도

남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지현 아나운서

 

 

대북 심리전 방송과 정락현 대위 북한 전투기 귀순

애기봉 크리스마스 점등식 중계가 가장 큰 보람

 

 문서 작성에 서툰 동료들이 답답해 군 행정 경험 살려

 총무 일 맡으면서 ‘서무과장’이란 공식 명칭 얻어

 

 신앙생활의 힘은 믿음에서 나오지요

제2국민병으로 6.25 참전, 성대 법대 졸업 후

 1961년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 

 

 

6.25 유공 훈장을 받으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작년에 받은 6.25 참전 화랑 무공 훈장을

 비롯해 유엔군 참전 종군 기장, 6.25 참전 호국 영웅

 기장을 보면 전장의 모습과 대북방송을 진행했던 때가

 떠올라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간절해집니다.

 

 

몇 살 때 입대를 하신 건가요?

 

 6.25 때, 만 열일곱 살이던 1950년

12월 19일 제2국민병으로 징집되었습니다.

정부가 만 17세부터 40세까지 장정들을 격리 보호하고

군의 전력을 증강시킬 목적으로 ‘국민방위군’을 조직했었어요.

 나는 19일간 도보로 경남 진주로 내려가 101사단 103연대에 배속되어

3개월간 훈련을 받고 후방에서 탄약을 운반하는 지원 병력을 관리하는

 기간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이 경북 팔공산

까지 침투한 위급한 상황이었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북진할 때는 우리 ‘국민방위군’도 서부전선으로 이동했습니다. 진주에서

 마산항과 군산항, 인천항을 거쳐 경기도 의정부읍 법원리에 집결해

개성 근처까지 하루 자고 이동하는 생활을 반복했지요. 그러다

 1953년 7월 1일 휴전 후 육군 병장으로 전역, 행정병으로

복무하다 1954년 8월 30일에 제대했습니다.

 

 

무려 5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신 거네요!

 방송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55학번으로 성균관대 법대에 들어가

 농구부도 만들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무얼 할까?’ 하다가 아나운서 한번 해보고 싶어

 1961년 6월에 국가 공무원 공채 시험 우리말

아나운서 모집에 응시해 합격했지요.

 

 

아나운서 신입 시절은 어떠했나요?

 

1600명 가운데 나와 인주희, 임국희,

최정연, 4명이 뽑혔습니다. 엄청난 경쟁률

만큼 경쟁도 치열했어요. 채널이 라디오 두 개뿐이라

 신입사원이 방송에 투입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콜사인과 시보만 1년 하다가 첫 뉴스를 진행할 때

 그 떨림과 설렘은 잊을 수 없습니다.

 

 

방송뿐만 아니 서무도 맡으셨다면서요?

 

아나운서실은 군대생활을 방불케 하는

 엄한 분위기였는데, 우수한 인재는 많았지만

궂은일을 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문서작성에

 서툰 동료 아나운서들이 답답해 내가 자질구레한 일은 물론

군 행정 경험을 살려 총무 일을 맡다 보니 실장이던 

이광재 선배가 나에게 최초로 ‘KBS 아나운서실

 서무과장’이란 이름을 붙여주셨지요.

 

 

방송 생활도 들려주세요.

 

일이 많을 때는 제1라디오 오전 11시 뉴스,

 오후 4시 경제 뉴스, 밤 10시 종합뉴스, 11시 시사해설을

 비롯해 낮 12시 10분부터 김주혜 아나운서와 함께 <노래의 꽃다발>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서부전선 ○○기지 비둘기부대가 건설지원단으로

월남전에 파병됐을 때 위문공연 사회를 보았고, 민요 명창들이 출연하는

 <민속의 잔치> 사회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공개방송 하러 많이 돌아

다녔지요. 그 밖에 개천절 기념식, 각종 중요 기공식 등 기념식

중계방송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 후 부산방송국을 거쳐

라디오국 PD, 국제국 PD, KBS사업단 프로그램

 판매부장, 시청자상담실 방송위원을

지내다 1989년 퇴직했습니다.

 

 

어떤 게 기억에 남습니까?

 

 <새 소식>을 비롯해 <그리운 옛 노래>,

<자유의 종> 등 대공 심리전 방송을 맡았을 때,

 북한의 정락현 대위가 공군 전투기를 몰고 귀순해온 사건은

 큰 충격이자 큰 보람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장춘 PD와

함께한 1968년 12월 18일의 ‘애기봉 크리스마스 점등식’ 중계입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위로의 불빛’을 보이기 위한 행사지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치는데, 입이 얼어 방송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방송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던 중 눈앞에서 철모를 쓴 해병대

 용사 세 명이 벼락을 맞고 쓰러지는 거예요!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나중에 그들이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주여!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옵소서.’란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들을 위해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바쳤습니다.

 

 

어떻게 신앙을 만나셨나요?

 

마리아가 본명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며 전 요셉을 세례명

으로 택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성가정을 닮자는 의미지요.

 

 

신앙생활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믿음은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내의 인도로 시작되었지만, 견진성사나 M.E.,

꾸르실료를 통해 기도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깊어졌습

니다. 이제는 믿음 자체에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교의 종류와 상관없이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신앙생활의 힘이라고 느낍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선배들을 따라하다가

 내 특색을 찾아야지요. 선배들과 시‧청취자의 모니터를

 끊임없이 들으며 나 자신을 다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듣다보면 각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겁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이렇듯 대 선배님과 신세대

후배가 서로 마음을 열고 대담을 하는

 예는 어떤 분야에서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족간에도 대화가 중요하듯이,

 각 전문직 안에서도 참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정부 선생님 글

 

다른 사람의 3곱 4곱의 삶을 살아오시고도

 여유롭고 건강하신 선배님 모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최고인기를 자랑했던 민속의 잔치 명사회에 아나운서실

서무까지 맡아 후배들을 자상하게 돌봐주시던 모습이 바로

어제 같습니다. 이렇게 부드러우신 분이 농구는 또 어인 일이며,

5년동안의 참전은 또 무슨 숙명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남이

 하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꺼이

 해내시는 삶의 철학과 인품이 인기와 영광의 세월도

 있게 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상낙원이라는 호주에서의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복귀 하신 것도 어려움은 따랐겠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귀중한 삶의 체험과 무형의 재산을

축적하시라고 신이 내린 축복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디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내외분이 행복하시어

후배들에게도 끊임없이 좋은 교훈들을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 위 왼쪽 KBS뉴스를 전하는 배덕환 아나운서, 

▶ 1965년 2월 최초로 월남전에 파병되는 비둘기부대 장병들을 위해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위문방송 아래 왼쪽 군 시절 동료들과 함께

▶ 아래 오른쪽 1952년 101사단에서 복무 중인 18살 소년병

 

 

KBS2기  송재극, 강찬선 이사님과 함께 1992년 10월 8일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배덕환.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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