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나운서클럽

김규홍 아나운서와 한국아나운서클럽

이장춘 2014. 3. 31. 10:13

 

 

 

김규홍 아나운서! 1968년 KBS에

입사한 이래 오랜세월 아나운서로, 프로듀서로,

 방송국 간부로 일해왔다. 사회교육방송국장을 지낸

김규홍 아나운서가 클럽 창립 초기부터 20여년의 세월

아나운서클럽과 함께하며 살림을 맡기 시작한 이래  

사무총장, 부회장 역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김규홍 아나운서와 한국아나운서클럽

 

 

2014년 3월 15일에 발행된 제13호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를 받았더니 “끼어야

일이 되고 궂은일도 마다 않는 순수한 흥행사” 라는

제목,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 3주년 특집으로 김규홍

부회장에 관한 얘기가 줌인(Zoom-in)되어 있다. 김규홍

아나운서에 관한 글을 쓰려던 차에 이글을  본 필자는

이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 글은 한국나나운서클럽

회보 편집장 황인우 아나운서가 썼다.

 

 

댁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후배들에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한 김규홍 부회장

 

 

창간 3주년 특집 줌인-김규홍(전 KBS) 부회장

 

끼어야 일이 되고 궂은일도

마다 않는 순수한 흥행사”

 

클럽 소식지 만들며 5년 전부터 클럽 회보 구상

 

 

회보 창간 3주년을 맞아 편집장으로서

아나운서클럽의 산 증인이자 회보 발행의 산파역,

아나운서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김규홍 부회장을 만나보았다.

 무슨 일을 벌이건 ‘엽렵한 김규홍 선배님’이 끼어야 모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기에 ‘순수한 흥행사’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능력을 상업적인데

쓰셨으면 돈 많이 버셨을 텐데,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골치 아픈 편집 일을 하며 얻는 게 있다면 ‘김규홍 선배님

같은 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된다’를 말하기에 앞서 무엇

이든 될 수 있는 쪽으로 해결해보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탁월한 유머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남들이 꺼리는 일을 성심성의껏 해낸 김 부회장

덕분에 한국아나운서클럽이 지속되고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글 / 황인우 편집장

   

 

  글 : 황인우 아나운서

 

 

먼저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추진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사실 클럽회보를 5년 전부터 구상했지만

예산 문제와 편집진 구성이 큰 걸림돌이었지요.

 그러다가 이혜옥 회원의 적극적인 제안과 든든히 받쳐주는

회장님 덕분에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창간 3주년을 맞기까지

연회비 납부와 열심히 광고를 수주해주시는 회원들의 노고와 편집진의

열정이 빚어낸 결정체이지요. 박민정 사무총장과 황인우 편집장을

 비롯해 정경래, 이혜옥, 이형균, 정영호(미국 LA) 편집

위원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부터 아나운서클럽 일에 관여하셨나요?

 

소그룹 모임 때부터 참여했습니다.

30년 전쯤 되네요.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전영우, 박종세, 최만린, 김동건 회장에 이르기까지

내내 모임에 관여해왔기 때문에 다른 회원보다 사정을

좀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까요? 지금은 바통을 이어

받은 박민정 사무총장이 훌륭히 해내고 있지요.

 

 

컴퓨터,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얼마나 일이 많았을까요!

 

물론이지요. 회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소식지를 작성해 초청 안내장을 만들어

봉투에 일일이 우표를 붙여야 했고, 일반 다이얼 전화

연락을 하기 위해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지요. 현재

미국에 살고 있지만 당시 간사 일을 맡았던 강미란 아나운서와

나누어서 모임 연락을 하는데 한 사흘 걸렸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좀 하는 편인데, 엑셀, 일러스트 등을 다루다 보면 정말 옛날에

고생했던 생각 많이 납니다. 그래도 보람이라면 아나운서

클럽을 모범적인 모임으로 발전시켰고 아나운서들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이지요. 회보까지 발행

하게 되어 정말 뿌듯합니다.

 

 

 ‘일은 많지만 좋은 소리는 듣기 어려운

’ 동호회의 총무를 오랜 기간 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내신 겁니까?

 

글쎄요. 한마디로 그때그때 충실히

했을 뿐입니다. 아나운서 직종은 특히 선·후배

 사이가 반듯하고 선배에 대한 존경과 후배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기에 총무 일을 하는데도

힘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선배님은 어떤 방송을 하셨나?’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1968년도에 KBS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가 되었는데, 벌써 46년 전의 얘기가

되는군요. 여의도가 군용 비행장이던 당시, 공군병장으로

제대를 앞두고 문화공보부 공채 1기 아나운서 모집에 응시해

 입사했는데, 동기생이 김영소, 박찬숙, 이정부 등입니다. 방송은

뉴스는 기본이고 시사, 교양, 오락 등 프로그램을 골고루 많이 했지요.

 음악 DJ도 했습니다만, 1970년대 제1라디오 <오후의 교차로>를 3년간

 진행하며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을 만났던 것이 떠오릅니다.

 

 

방송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사회교육국장을 끝으로 2005년에 KBS에서

퇴직할 때까지 37년간 아나운서와 PD로 일했으니

추억거리가 많지요. 특히 1983년 처음으로 실시한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예술단 공연의 방송단원으로 김동건

회장과 함께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어 역사적인

방송을 했던 것은 영원히 잊지 못 할 겁니다.

 

 

가정생활과 사회활동도 소개해주세요.

 

독일상공회의소에 근무하던 아내와

 결혼하였고 아직 미혼인 아들과 사는데, 영리한

애완견 보스턴테리아 한 마리도 가족이지요. 교회 선교회

직분도 맡고 있고 용인시의 지역 노인회장으로서 아침 교통봉사

활동도 하지요. 또 KBS 사우회 이사, 용산JC 특우회 회장단의

대표회장 등 이런 저런 일을 맡아 즐거운 마음으로

분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끝으로 회보 편집위원으로서 바람도 들려주십시오.

 

300여 명의 클럽 회원과 500여 명의

현역 아나운서 그리고 국내 각 신문, 방송사와

 유관단체, 정부기관, 주요 도서관, 각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사회 저명인사와 미주지역 동포 방송인에게 현재 총 2,000부를

발행해 우송해 큰 호응을 받고 있어요. 5주년이 될 때는 월간으로,

 발행부수도 3,000부로 늘어나 직종별 모든 방송인이

 받아 보는 회보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유경환(유카리니) 여사님 글

 

아나운서 클럽회보가 발간된지 3주년이

 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도월마을에서 뵌적이 있는

김규홍 선생님께서 편집책임을 맡아 다방면으로 활동하시고

계시니 반갑습니다. 그분과 함께했던 많은 분들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분이 계셔야 모든것이 풀리고 잘 되어가는 긍정적인 분이겠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는데, 틀리지 않았군요. TV가 집집마다 있던
시절이 아닌
시절에

아나운서가 되셨고,제가 멀리서 살고있던 그 때부터 많은 활동을 하신 분이시군요.

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는 분이 계시고, 수많은 전, 현직 아니운서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동참할 때 아나운서클럽과 클럽회보가 튼실한 기념수가

되어가리라 믿고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황인우 아나운서는

여성 대통령시대와 걸 맞는 여성 편집장이시군요. ^0^

'옛동산에 올라'를 누군가 플루트 분위기있게

 부는군요.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입니다.

 

 

이정부(강아지 아범) 선생님 글

 

 

춘하추동 방송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글과 영상을 펼치면 어느새 멋진 배경음악이

흘러나와 설렘을 준다는 점입니다. 이장춘 회장님이

여러차례 올려주셨던 '오카리나'의 명인 유카리나 여사님의

 연주를 번번이 인상깊게 들었던 터라, 이번에도 '오카리나(ocarina)'

 인 줄 알았더니 '플루트(flute)'였군요. 제 '상식의 귀'가 퇴행하고

 있는 증거인 듯합니다. 우리가곡 '옛동산에 올라' 가 플루트

연주로   춘하추동 방송을 타니 더욱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유카리나 여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나운서 클럽회보가 어언 3주년을

넘겼군요. 아나운서 일(특히 궂은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는, 반세기 넘게 사재 터시는

방송인 김동건 아나운서클럽 회장님과, 그를 꼭 닮아 아나운서일,

방송국 일, 노인회일(길거리 교통정리까지)할 것 없이, 발로, 편지로,

메일로, 전화로 열성을 다해 뛰는 김규홍 부회장님, 클럽의 필수 불가결한

업무를 빈틈없이, 소리없이 처리해 나가는 박민정 사무총장님, 회보 교통정리의

달인, 문장가 황인우 편집장님, 남다른 경륜으로 회보를 가꾸어 가는데 도움을

주시는 무임소 편집위원인 정경래 선배님, 김명숙, 이혜옥 아나운서님... 해외에

계신 정영호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분... 이분들의 노고를 제물로 해서 저희는

또하나의 긍지를 얻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이분들은 사무실과 연봉없는

영원한 아나운서요, 훈장없는 방송영웅입니다. 제가 진짜

정부(政府)라면 국민훈장이라도 드리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박노순 선생님 글


김규홍 부회장님,

우연히 2014년 blog 을 보게

 됐습니다. 반깁습니다. 1967년 공군

 제대 하자마자 뉴욕으로 유학, IBM 에서

 줄곧 일하다 2013년 은퇴. Seattle 에

서 살고 있습니다. 보시면

 연락 주세요.

 

 

 

 

 

 

옛동산에 올라.mp3

 

 


옛동산에 올라.mp3
2.3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