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노라노가 장안의 화제(話題)가 되고 있다. 실로 길고 긴 세월이 나라 현대의상은 노라노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1944년 경기여자고등학교 (그때는 6년제 중학교)를 졸업한 노명자가 첫선을 보기 위해 이 땅의 최초 아나운서 어머니, 이 옥경 여사의 양장 옷감을 잘라 손수 지어 입은 옷으로부터 올해 꼭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만났던 신랑감은 일본군 대위였지만 뒷날 6.25전쟁 중 다시 한국군 사병으로 입대해서 포병사령관, 중장으로 예편한 신응균 장군이고 그의 아버지는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신 태영으로 1952년 전쟁 중 국방부장관을 지낸 명문가다. 그때의 결혼은 성사되어 신혼살림은 차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광복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여곡절 끝에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서로 해어져 결국 이 나라현대의상을 이끌어 온 주인공으로 오늘의 노라노를 있게했다.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NORA NOH) 패션 70년
노라노(NORA NOH)란 노명자가 학상시절 읽었던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가 집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되 찾았듯 노명자 자신도 '노라"라는 새 이름을 갖고 새 인생을 시작 한 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위 사진은 1953년의 「노라노의 집」 의상차림을 한 1970년대 80년대 인기아나운서황인우와 노라노여사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2013년에 이루어진 만남이어서 꼭 60년 만의 노라노 의상 차림이지만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음을 볼 수 있어서 의미 깊은 사진이다. 작곡가이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변훈선생님 부인은 1953년「노라노의 집」에서 이 옷을 지어입고 며느리 황인우 아나운서에게 넘겨주어 2013년 노라노 여사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노라노 의상 박물관을 만든다고 해서 기증하고 보니 이 옷이 가장 오래된 옷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고 했다.
황인우 아나운서가 들고 있는 앨범은 무엇일까? 이 나라 최초 아나운서 이옥경 여사가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그린 그림이나 습작을 모아놓은 앨범이다. 필자도 이 앨범에서 그림, 습작 몇 장을 가져온 적이있다. 방송인들은 노라노가 소장하는 사료의소중함을 안다. 이 사료는 이 나라 방송국을 최초로 세운 기술자요, 이 나라 방송을 키워온 방송인 노창성의 모습이 있고 이 나라 최초의 아나운서 이옥경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KBS 아나운서실에 가면 경성방송국 시험방송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앙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아나운서들의 성함이 차례대로 쓰여 있다. 이른바 아나운서 족보라고 한다. 이 족보의 맨 윗자리에노라노의 어머니이옥경(李玉景)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필자는 노라노와 깊은 인연을 맺고 2007년부터 노라노에 관한 많은 글들을 썼고 노라노가 스스로 쓴 글도 「춘하추동방송」에 올렸다. 노라노(노명자)는 말한다. “내가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다.”고
2013년 김성희 감독이 노라노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는 예기가들리더니 10월 여학사회 회원들에게 압구정동에서 시사회를 연다고 했다. 그리고 10월 31일부터 전국의각 극장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화제에 올랐다. 1950년 명동에서 노라노의 집을 열고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열리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화제(話題)를 불러일으킨 노라노 의상은 2007년 그의 자서전「노라노, 열정을디자인하다」로 정리되었고 2012년 5월 6일 (일)과13일 KBS TV에서 50분 프로그램 2회에 걸쳐 방송된 「한국 현대사 증연 TV자서전」과 5월 23일 부터 6월 2일까지 청담동 호림 미술관에서 열린 60년 회고전으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가 흡족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오늘이 있기까지 노라노의발자취와 우리나라 의상의 발전사를 조명 해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의미가 있는 줄 안다.
이나라 문화를 선도해온 이여령은 노라노 자서전이 출판될때 노라노가 없었다면 이 땅에「판탈롱」도 「미니스커트」도 없었다. 고 했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 최초의 기성복, 윤복희 미니스커트, 육영수여사 등 영부인 의상, 드라마 찐의 전쟁 의상, 지금도 멈추지않은 도전과 열정의 다큐 모놀로그 50년이라고 평가했다. 과거의 회고담이 아니라 미래의 예언서이며 한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화이다." 라고 했듯이 노라노는 이나라 의상의 선도자적인역할을 해 왔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문화인, 영화인, 연극배우, 가수들이 앞 다퉈 노라노 옷을 입었고 그러다보니 그의 의상은 더욱 빠르게 이 나라 옷차림을 변화 시켰다. 한복 중심에서 일하기 편한 서양 옷 중심으로 바뀌고,맞춤형 옷에서 기성복으로 바뀌어 생활을 더 편하게 했다.
시대를 앞서 가는 「미니스커트」로 한때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지만 결국 미니스커트를 넘어초미니스커트 시대가 왔어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 드린다. 이 영화에서는 의상문화를 혁신한 주인공 노라노가이번 영화의주인공이고 엄앵란, 윤복희 등 그 시대 유행에 앞장섰던 분들이 등장한다. 노라노 의상은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노라노가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 여성으로는 소프라노 김자경에 이어 두 번째의 미국행 비행기 탑승자가 되어 1947년 미국으로 떠나던 때로부터 디자이너 수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956년 우리나라 최초로 반도 호텔에서 패션쇼를 열면서 본격적으로대중에게 그의 의상이 알려졌다.
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6. 25전쟁이 일어나고 부산피난시절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겪던 노명자가 서울로 돌아와 패션계에 힘을 기울이면서 단기간에 그의 명성은 장안에 퍼졌고 일반인들은 패션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195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패션쇼를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1950년대의 패션쇼는 100% 국산기술과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모직을 사용했다는 큰 의미가 있었다.
1956년 패션쇼 이때의 첫번째 패션쇼는 반도호텔에서 열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패션 모델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어서 조미령, 최은희 등 이름있는 영화, 연극 배우들이나 미쓰코리아등 관심을 끌만한 분들이 패션 모델로 등장했다.
위 사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스코리아 진 박현옥양이다. 우리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포즈를 취했고 이때 고려모직에서 생산한 원단 투피스와 실크 불라우스를 입었다. 박현옥양이 한국일보사에서 실시한 제 1회 미쓰 코리아로 선발된것은 1957년이지만 노라노와 잘 아는 사이여서 1956년에 열린 첫번째 노라노 패션쇼에 출연했다. 체크무늬 양장에 검은 장갑을 끼고 처음 무대에 오른 박현옥양은 몇 장면에 등장해서 갈채를 받았다.
1956년 10월 29일 오후 2시 반도호텔에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 1947년 KBS 아나운서 출신 이진섭의 사회로 그 열기는 파리에 못지 않았다고 한다. 박현옥양과 배우 최은희, 김은희, 엄앵란 등에 이어 그 해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이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갈채가 터져 나왔다. 6명의 모델이 50여 벌의 의상을 선보인 이 날이 우리나라 패션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때의 얘기를 노라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생각보다 일찍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티켓도 없이 입장시켜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패션쇼 현장에서 티켓을 판매하지 않기로 하고 시간이 되자 출입문을 닫도록 지시했다. 패션쇼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패션쇼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감이 패션쇼 현장을 꽉 채웠던 것 만큼은 오늘날의 패션쇼와 다르지 않았다.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자관객들 사이에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델 김은희 : 국산 양단으로 만든 이브닝 드래스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인기 스타 엄앵란의 오드리 햅번 의상차림
패션쇼가 끝나고 꽃다발을 밪고있는 노라노
패션쇼가 열리면서 패션에 관한 세인의관심이 모아지고 노라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노라노는 말한다.
"패션쇼라는 역사적인 이밴트를 치르고 미국에서 로마의 휴일이 개봉되자 영화 속 오드리 햅번의 깜찍하고 신선한 스타일이 일약 패션의 새로운 잣대로 등장했다.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을 추종함으로서 패션사에 큰 힛트작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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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단종애사에서 어린 왕비역으로 데뷔한 엄앵란님이 깜찍한 햅번 스타일로 대중을사로 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957년 청실 홍실, 1 959년 꿈이여 다시한번 등 그가 주연을 맡은 수많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 이미지 메이킹에 나도 적잖이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1957년의 패션쇼
노라노 두번째 패션쇼는 1957년, 반도 호텔 옥상에서 열렸다. 강영숙인기아나운서의 나레이션이 들어있는 동영상이 있어서 함께 올린다.
동영상 보기
조선호텔에서 열닌 1958년 세번째 패션쇼
이후 노라노 패션쇼는 해마다 정기적으로열렸고 1959년에, 최은희 주연 영화춘희의 의상을디자인한 이래 오랜기간 연예계나 무대에 오르는 의상은 노라노가 마련한 패션이 주를 이루웠다. 세월따라 변하는 유행도 노라노 패션이 앞서 나갔다. 노라노가 양장 옷을 손수 만들어 입은지 70년이 되었고 디자이어늬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67년, 명동에 노라노집을 연지 64년이 1956년 반도호텔에서 첫 패션쇼을 연지도 60년이다 되어간다. 오랜 세월이 지났고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가 되셨지만 여전히 건강하시다. 지금도 열정과 노력은 젊은이 못지않다. 패션을 위해서 태어 나셨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노라노! 일생을 패션과 함께 해 오셨다. 그는 죽는날 까지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했다.
노라노는 미스코리아에 출연할 미녀을 미리 선보고 특별한 의상을 맞추어 그 의상차림으로 선발무대에 세웠다. 1957년의 진 박현옥양이 그렇고 3회의 진 오현주양이그렇다.오현주양이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할때 특별한 지도로 3개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위, 사진은 트로피를 앞에 놓고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그때의 중앙청앞에서 카 퍼레이드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노라노 의상으로 단장한 1967년의 펄 시스터즈
1970년 노라노 의상으로 단장한 문희
70년대의 노라노 의상차림 여운계
윤복희와 미니스커트
1979년 뉴욕 맨해튼 7번가의 패션거리에 "노라노" 간판이 걸렸다. 쇼룸울 열자 뉴욕의 뷰티크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주문량이 자그마치 700벌이었다. 사무실 팩시밀리로 주문서가 쉴 새없이 들어왔다. 대 성공이었다. 노라노는 그때의 감정을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분 반, 과연 잘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이었다고술회한다.
1985년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고"의 미국판에 실린 광고
노라노는 오늘의 노라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은덕임을 강조한다. 부모님 가신지 오래 되셨어도 부모님을 잊지 않는다.80년이 된 사진첩을 뒤져 그때 방송에 관한 사진기록을 찾아 이 나라 방송을 창설하신 부모님의 발자취를 기리도록 했다. 2008년에는 부모님. 노창성, 이옥경님의 얘기를 직접 써서 본 불로그에 올려 많은 분들이 같이 보고 있다.
자서전이 발간되기전 중앙일보는 노라노님이 집필하신 글을 연재했다. 그 무렵 중앙일보는 2007년 1월 30일! 50년대, 60년대 은막을 장식한 배우들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1950년대부터 처음으로 우리나라 패션계를 주도 해 오던 노라노여사의 그 시대 예술과 패션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그 만남을 중앙일보가 취재해서 2007년 1월 31일자에 보도했다. 그 옛날의 정겹던 그 얼굴도 다시한번 볼겸 그때의 사진을 올린다. 김혜정, 이빈화, 엄앵란, 최지희, 최은희, 문희, 이향자 등 그 시절 은막의 주인공들이다.
「노라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2012년 5월 6일 (일)과 13일 KBS TV에서 50분 프로그램 2회에 걸쳐 방송된 「한국 현대사 증연TV자서전」출연때 노라노와 KBS전복수기자 대담
2012년 5월 23일 부터 6월 2일까지 청담동 호림 미술관에서 열린 60년 회고전
영화 시사회에는 1950년대 강영숙
이혜자(이가인 보나)선생님 글
여고시절 학교가는 버스를 타면 커다랗게 보이던 간판 기억합니다 노라노패션 !! 아 !! 이국장님의 손길은 요술장이 이십니다 놓으신 업적의 공이 대단하심을 알았습니다. 그 시절 미국 뉴욕에 노라노 패션 공간을 마련하셨다니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여건상 감히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을것이라 생각 됩니다. 2012년 회고전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 의상계를 이어오신 모습에서 우아함 단아함이 가득 배어 나옵니다내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안방에서 뛰쳐나와 '노라'로서의 생을
너무도 멋지게 완성시켜가시는 노명자 여사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수있는 많은 자료들로 춘하추동 방송에게시물을 올려주신 덕분에 시대를 탓하지 않고 씩씩하고 멋지게 My way를 살아오신 이나라 여성들의 패션의거장 노라노 여사에대해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언제였나 TV 자서전에 나오셨을 때, 80을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곱고 멋지신 분이시구나감탄했었는데, 2012년이였네요. 노라노 의상 박물관이 세워질만하지요. 요즘에 입고 거리에 나가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개성 뚜렸한의상들 하나하나가 진정 작품입니다. 조건진 전 아나운서실장님 글 2021년 5월 5일
고맙습니다. 사실 노라노 선생님과 저는 50년 인연입니다. 당시 저는 명동성당 뒤 계성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노라노 양장점은 명동 한복판에 있었고 저희 어머님이 단골이셨습니다. 노라노선생님이 어머님께 보라빛 의상이 잘 어울린다고 추천해주시곤 했습니다. 당시 노라노에는 윤복희, 펄시그터즈 등 최고의 인기 연예인들이 단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님이 워낙 단골이셨고 친하셔서 제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제게 옷을 만들어 선물해주시기 했습니다. 아마 노선생님이 남자한테 옷을 만들어 주시기는 제가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제가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제가 실장 당시 인터뷰 녹화 오셨다가 아나운서실에 들리시기도 했습니다. 이장춘 선배님 덕분에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한번 찾아가 인사드려야겠네요. 고맙습니다. 노라노 패션 관련글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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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첫 뉴스 방송인 위진록 아나운서 방한 한국아나운서클럽 환영 만찬장에서 6.25 전시방송국장이자 최초방송인 노창성, 이옥경의 둘째 딸 노명자(노라노)님이 위진록과 만나 반가워하고 있다.
1947년 여의도 비행장에서 여성으로는 두번째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1956년 미국으로 떠나던 때
조건진 전 아나운서실장님 글 2021년 5월 5일
고맙습니다. 사실 노라노 선생님과 저는 50년 인연입니다. 당시 저는 명동성당 뒤 계성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노라노 양장점은 명동 한복판에 있었고 저희 어머님이 단골이셨습니다. 노라노선생님이 어머님께 보라빛 의상이 잘 어울린다고 추천해주시곤 했습니다. 당시 노라노에는 윤복희, 펄시그터즈 등 최고의 인기 연예인들이 단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님이 워낙 단골이셨고 친하셔서 제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제게 옷을 만들어 선물해주시기 했습니다. 아마 노선생님이 남자한테 옷을 만들어 주시기는 제가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제가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제가 실장 당시 인터뷰 녹화 오셨다가 아나운서실에 들리시기도 했습니다. 이장춘 선배님 덕분에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한번 찾아가 인사드려야겠네요. 고맙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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