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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과 어린이날 노래 윤석중작사 윤극영작곡

이장춘 2013. 4. 19. 04:16

 

 

서울 안국동 천도교회관 앞에

 어린이날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곳이

어린이 날 발상지로 1922년 5월 1일, 서울 안국동

천도교  광장에서 첫 기념행사를 가졌고 1923년 방정환

선생님이 윤석중, 윤극영, 마해송선생님 등과 색동회를

구성하고 이해 5월 1일을 기해서 어린이를 위한 대대적인

행사를 염과 동시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 어린이를

대하는 길잡이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어린이 날 기원입니다. 

 

 

방정환 선생님과 어린이날 노래 윤석중작사 윤극영작곡

 

 

어린이날은 1927년부터 5월 5일로

바뀌었고 해방 후에도 이 행사는 계속되어

 1946년, 윤석중선생님이 쓴 가사에 안기영선생님이

곡을 붙힌 어린이날 노래가 불렸습니다. 안기영 선생님이

 월북함에 따라 그 곡은 금지되어 1948년 윤극영선생님이

곡을 다시 붙여 오늘날까지 불립니다. 1924년 최초의 동요

반달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윤극영이 만주로부터 광복된

고국에 돌아와 만든 첫 번째의 동요작품이기도

합니다.  (한용희 한국 동요음악사 참조

-KBS어린이 담당 PD출신-)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었고 1961년 제정·공포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국정기념일로 되어 여러 행사를 가졌는가 하면

1975년부터 공휴일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1899년에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어려워선린상업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총독부 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만

두고 1917년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가 되고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구락부를조직해서 활동했습니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20년 일본

東洋大學에서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고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 운동에 나섰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천제적인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릴 수도 있는 재능을 지니셨기에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는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였습니다.

 

 

 

 

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방송을 내보내던 시험방송 시절부터 방송에서

얘기 보따리를 풀어 유익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셔서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최초로 방송에 출연한 연사기 되였습니다.

내용은 어린이에 관한 얘기였지만 어른들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

이었습니다. 아래 프로그램에서 보시듯이 시험방송 프로그램인 2월 15일

1시 5분 육아강좌시간에는 "어린 아기와 작란감"이 방송 되었고 2월 16일

개국일은 개국 행사로 방송이 안 되었지만 다음날 2월 17일에는

"어린이와 직업"이 방송되었습니다. 이때는 새싹회를 구성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들을 위해서

여러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31년 고혈압으로 세상을 뜨실 때까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색동회 창립자, 아동 문화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등등

선생님에게 붙은 수식어는 많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뒤에도

색동회를 같이 하시던 윤석중, 윤극영님 등이 그 뜻을 이어

가셨고 이분들의 활동은 방송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오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어린이 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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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동요 반달과 윤극영 선생님, 노래 이정숙

http://blog.daum.net/jc21th/17780779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