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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폐합, 언론통폐합, 언론인해직 1980년

이장춘 2013. 4. 17. 22:45

  

 

방송학살, 언론학살, 땡전뉴스,

 세상을 암흑세계로 만들고 군부가 일방 통행하던

암울했던 그 시절, 신문, 방송, 잡지 등 모든 언론매체는

군부에 의해서 검열되어 지면과 내용이 한결같았던 1980년대, 

이때에 이루어진 방송통폐합은 언론자유를 송두리째 말살한

하나의 악명 높은 쿠데타였다. DBS동아방송이 막을

내리면서 청취자에게 전하는 인사말을 전영우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방송통폐합, 언론통폐합, 언론인해직 1980년 

 

 

1979년 10.26이 12. 12 쿠데타로 이어지고

80년의 봄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학살사건으로 권력을

한손에 쥔 신군부가 국가보위 상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고

전두환이 스스로 상임위원장 자리에 앉아 자기 뜻에 맞지 않은

모든 언론인들을 해직했으며 누구도 저항 할 수없는 공포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뜻과 각본에 맞추어 언론사를 통폐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때의 통폐합에 관한 대체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1979년에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10.26을 계기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한 보안사령부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 해 갔고

 언론을 통제 해 나갔다. 통신, 신문의 지면배열이나 모든

언론의 편성, 편집순서, 기사내용, 지면배열, 심지여

글자크기, 사진크기 까지를일일이 정해주면서

언론사의 숨통을 죄어 나갔다.

 

그러면서 자기 뜻에 밪지 않은 연론인들의

 명단을 만들어 수많은 언론인들을 축출 해나갔다.

그 그 상황, 시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왜? 저항하지 못했느냐고.....왜 못 물러난다고 버티지 못했느냐...

왜? 거기에 굴종했느냐고.... 지금은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아니었다. 모든 언론인들에게 사표를 내도록 강요

받았고 그 중에서 자기들의 뜻에 거슬렸던 사람들의 사표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사표가 수리되는 것이다.

아무도 이유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때의 현실이었다.

 

명분이야 무능 부패한 언론인을 축출한다느니,

국가의 암적 존재를 제거 한다느니 별별명분을 붙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들의 뜻을 거스른모든 언론인을 축출

했던 것이 그 시절의 “언론인 해직”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언론사가 군부의 지시를 받아 언론인들을 내 몰았다. KBS의

경우는 1979년 말부터 80년까지 네 번에걸쳐서 군부의

뜻에 맞지 않은 사원들을 모두 해직해 버렸다.

 

 

 

 

방송 출연자도 그 방송내용도 철저히

가려졌다. 연예인 까지도 비위에 맞지 않으면

방송출연이 금지 되었다. 자질 부족은 당연한 것이고,

수다 떤다고 출연금지시키고, 퇴폐성이라고 해서 출연 금지

시키고, 통폐합 고별방송에서 눈물 흘렸다고, 또 특정인과 닮았다고,

특정인 앞에서 노래 부르다가 언행이 이상했다고 방송출연을 금지 시키는 등

납득 할 수 없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 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 했다.  탤런트

강부자, 이주일, 허진이 TBC 고별방송과관련해서 방송출연이 정지

되었고 또 무슨 일이었는지는잘 몰라도 전원주나 박용식,

이은하등도  방송출연이 제한되었다.

 

 

언론인 방송출연자등을 옥죄어 나가던 군부가

1980년이 다 가기 전 모든 언론을 통폐합해서 자기들의

뜻 데로움직일 수 있는 체제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언론통폐합”이다.. 모든 통신은 연합통신으로 일원화하고 모든

언론사는 이 연합통신의 기사를 받아쓰도록 했다. 명분은 한국

신문협회나, 한국방송협회가 자율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내 세웠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었다. 

 

 

 

 

언론사는 한 경영주가 두 개 이상의 매체를

가질 수 없도록 했고 종교방송은 뉴스를 할 수없도록 했다.

지역에는 한 도에 하나의 신문사만 인정되었고 신문사와 방송사를

겸업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아서 통폐합을 해야만 했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가지고 있던 소유주는 방송사를 내놓아야 해서서울의 MBC를 비롯한 지역

 21개 MBC, TBC-TV , 라디오와, DBS동 아방송, 광주전일방송, 군산

서해방송, 대구 한국 FM방송이KBS에 통합되고, 기독교방송은

보도부문을KBS에 통합시킴으로서 전국의 방송사는

 사실상 KBS로 일원화되었다.

 

MBC를 KBS에 통합되도록 한 방법으로는 먼저

서울 MBC가 지역 MBC의 주식 51%에서 100%를

인수해 모든 지역 방송사를 본사 계열사로 만들고 본사는

KBS에 주식의 70%를 넘겨 KBS 지배 방송사로 만들었다.

MBC는 민영방송인 줄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 이래 외형은

민영방송일지라도 속내는그때도 지금도 민영방송이

 아니다. 명분은 공영방송으로 유지된다.

 

 

 

 

지역 신문은 각도에 하나씩만 인정되었다.

이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통신으로는 연합통신사만

존재 할 수 있어고  방송에는 KBS로 일원화 되었으며,

신문은 조선, 동아, 중앙, 서울, 한국일보의 5개만 인정

되었다.  지역에는 한 도에 하나의 신문사만 있게

되었다. KBS는 연합통신과 서울신문의

주식도 가지고 있었다.

 

방송의 땡전시대가 상징하듯이 모든 언론은

군부의 뜻대로 움직였다. 신문의 기사는 그 내용은 물론

특정 시진이 실리는 지면의 위치나 크기까지도 같았다. 무엇

이든 국가보위 상임위원회가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그대로 하던 시절이었고 국민의보고 알 권리는 상실 되었다.

그때 어렸던필자의 아이들은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느냐"고 하지만 총. 칼로 탱크로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군부가 못 할일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의 절정을 이룬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6.29 선언이 있은 후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론사가 생기고 MBC는 KBS에서 분리되는 등몇 가지는 옛날

그 상태로 돌아간 것도 있었지만 모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원래의 소유주들은 방송사, 신문사 등을돌려 달라고 청원도

 해 보고 법원에 소송을 하는경우도 있었지만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에는모든 것이 너무 변해 버렸다.

 

 2007년 5월 25일 80년에 방송사를

넘겨 준사장님과 받은 사장님은 한자리에서 만나

 그때 그 얘기를 했다. 이원홍님은 KBS사장을 하시다가

 문화공보부 장관을하신 분이지만 그때 그 결정사항은 발표

 이틀 전에 알았고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본인의 영향력밖에 있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서 인수

과정에서흡수 통합되는 방송사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잘 해주려는 노력을 기울

였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때의 KBS사장 이원홍님은 민주화가 된 후

그때 그 일은 원상으로 돌아가야 진정한 민주화가

이룩된다는 주장을 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또 원래

소유주가 제기한 소송에증인으로 나가 증언도 해 주었지만

이미 흘러가버린 일들이 되돌아오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두 분모두 아쉬움만 간직한 채 이제는 아무리 얘기해도

메아리 없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역사는 아이러니컬한 일들이 많은가 보다.

세월이 흘러 신군부의 핵심 세력은 구속되고 12·12는

군사반란으로 규정됐다. 그리고 그때 민주세력이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정권을 잡았지만 이들도 기회만 되면 언론을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는데

언론인 출신이 있었다는 씁쓸한 현실이 사라졌으면 한다. 5.16후 나라에

헌납했다는 MBC는 헌납이 아니라 강요에 못 이겨 내 놓은 것임으로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된다는 얘기도 있고 보면 씁쓸한 일

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일들을 바르게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자세가 확립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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