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쟁에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에 군대를 파견했다, 1965년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 파견으로부터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해병대 1개 여단(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국군 4만8000여명이 월남에서 싸웠다. 연인원으로는 30만이 넘는 군대가 자유 베트남(월남)에서 싸운 것이다. 그때의 월남파병은 우리나라와 자유 베트남이 공산집단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반공 통일을 국가의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두 우방국가가 자유수호를 위해 협력하고 6.25때 우리나라를 공산세력으로부터 지켜준 보답이기도 했다.
월남파병과 월남 국군방송국
월남파병을 통해서 국위선양을 위함도 있었고 이 나라를 근대화 하려는 국민적 욕망도 있었다. 장병들이 떠날때나 돌아올때는 국민적 환송과 환영이 있었고 무훈을 빌었 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피. 땀 흘리고 목숨 바쳐 싸운 장병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고 오랜 기간 그 후유증이 있었으며 또 진 전쟁에 참여했다.는 비통함도 있었지만 월남 전쟁은 한강기적의 초석을 다지는 등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파병이었다.
파월용사들의 환송을 중계방송하는 KBS이동 방송반(위) CBS의 파병 국민대회 실황 중계방송(아래)
파병 주력부대의 훈련장은 춘천인근 화천 오음리 제 7 보충대여서 출발의 첫 환송은 춘천역에서부터 있었고 마지막 환송 지는 부산이었다. 그때 필자는 춘천방송국에 있었다. KBS 춘천방송국에서는 춘천역을 떠나는 장병들에게 역에 설치된 고성능 스피카를 통해서 잘 다녀 오시라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방송을 했다. 그때 춘천역에서 출발한 장병들은 그 여자 아나운서의 환송 음성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
부산항에서 출발 환송대회 실황 중계방송을 끝내고 촬영한 KBS부산방송국 중계방송반 ( 내용은 부산방송국 편에 있음.)
필자는 그 때 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도 좋지만 아나운서에게 장병들의 용기를 북 돋울 수 있는 원고를 제공하면서 더 씩씩한 목소리로 방송 해 줄 것을 늘 주문했다. 아름답고 씩씩하면서도 용기를 불러 넣어 주면서 환송방송을 하던 그 여자 아나운서 한사람은 주윌 한국군 사령부 방송국 아나운서로 적을 옮겼고 월남에 파병된 군사들의 친구가 되었다.
마침내 채명신 주윌 한국군 사령관의 부관장교와 결혼해서 사는 이은경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이다. 그때 월남전에서 싸운 장병들은 지금도 이은경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기억 하실 것이다.
그때 KBS월남 특파원은 노영대기자였다. 노영대기자는 뒷날 방송협회 사무총장, 방우회 (한국 방송인 동우회) 사무총장을 지내셨고 지금도 방우회 이사로 재직중이다. 아래는 월남 취재차 온 KBS 송정기 기자와(가운데) 국제방송국 오택섭 (영어)아나운서가 함께한 사진이다.
전투부대인 청룡 월남에 파병된 것은 1965년 9월 25일이었고 이때부터 월남 현지 방송국 설치를 서둘렀다. 그해 10월 20일 실무진을 월남에 파견했고 주윌 국군 방송국 설치에 앞서서 퀴논에서 월남군방송 시설을 이용해서 1965년 11월 15일부터 20분간의 방송을 했다. 주윌 국군 방송국이 문을 연 것은 1966년 3월 2일 퀴논에서 50W 출력의 시험전파를 발사했고 그해 4월 15일부터 정식으로 방송을 했다.
월남 순회공연을 마친 연예인 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환담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외국에서 우리 방송국이 현지인들을 위해 방송을 실시한 처음이었고 월남 방송책임자는 1950년대 초부터 KBS에서 방송을 해 온 한용희님이었다.
6월 20일부터는 출력을 250W로 늘렸다. 계속해서 우리 군대가 늘어나고 작전지역이 확대 됨에 따라 1967년 2월 1일에는 사이공에 50W출력의 방송국을, 같은 해 4월 4일에는 나트랑에 250W방송국을, 1968년 3월에는호이안에 역시 출력 250W방송국을 설립했다. 시일이 자나면서 우리 국군의 전투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퀴논 방송국은 10Kw출력의 방송국이 되었고, 사이공과 나트랑의 출력도 5Kw로 늘렸으며 호이안 방송국도 1Kw 방송국으로출력이 늘어났다.
월남전의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쟁이었다. 1963년 수출액은 8,680만 달러 박에 안 되던 시절에 미국으로부터 연간 5억 달러의 군사원조와 경제 원조를 받았다. 미국과의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강화해서 냉전시대에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던 북한의 남침을 견제하고 한반도의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국군장비의 현대화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경제발전의 터를 닦는데 이바지 했다.
돌이켜보면 1인당 국민소득 100달라 밖에 안 되던 1960년대, 우리는 달라가 된다면 머리카락 잘라 팔고, 가마니, 새끼 꼬아 팔고, 먹고 싶은 전복이나, 왕새우 등 해산물 국내에서는 돈 있는 사람이라도 먹을 수 없었고, 외국에 팔아야했던 눈물겨운 시절이었다. 어떻게 던지 딸라 벌어 드리는 것이 지상과제이기도 했기에 독일에 광부 보내고 간호원 보내서 벌어들인 달라, 월남 파병으로 들여온 달라와 물자를 밑거름으로 경제를 일으키려 하던 시절 우리 장병들, 우리 국민들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아 세계 유수한 국가들과 어깨를 겨루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 시대를 잘 모르는 분들은 그것이 무슨 자랑이냐? 고 할런지 몰라도 이 나라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원토록 빛나리라..........
가수 김진아 선생님
월남방송 춘하추동 방송국 ~ 화이팅 입니다 .^^
김진아님 명복을 빌며 아버지 김진규 선생님 글에 님의 사연을 써 올렸습니다.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이 은경 아나운서, 검색으로
이제야 보았습니다. 그 당시 (파월시)의기억이 더 새롭게 떠 오릅니다. 뎃글을 올리신 김진아 가수님!은, 8월달에 하와이에서 유명을 달리한 잘 보았습니다.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백마전우회 중앙회 고문 (2명: 6,25참전 백마전우회 박맹호 회장님과 월남참전 백마전우회 대표로 저) 으로 있는데 "백마전우회 카페!'에 이 글을 좀 실려도 될련지 모르겠습니다. 답글 회신 받고 글 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베트남 파병 방송 소식 감사합니다.
예, 윤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하셔요. 김진아 가수 아픈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버지 김진규 글 편에 그 사연을 올렸습니다. 늘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 사진은 월남에서 방송을 협의 하는 국제 방송국장 노정팔님과 방송관계자들의 모습입니다.
VUNC 위진록 아나운서 월남 순방길에서 위는 채명신장군과의 인터부장면이고 아래는 수병과의 인터뷰장면이다.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
양방수님 사진첩에서
사진과 함께 보내온 사연
저는 군 입대전에 영화사에서 스틸과 촬영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충무로 바닥에서 근무를 한 경험으로 사진 현상과 촬영에서는 남달리 뛰어난 기술을 습득한 관계로 대전 통신학교에서 9주 동안 전신타자반을 졸업했지만 당시 사단장 윤 봉준 소장님의 직속 사진 후생병으로 발탁이 되어 18개월 동안 근무를 하다가 백마 29진으로 월남을 지원 하였읍니다. 그때 12.500명 사병중 이 사진을 촬영할 사병은 유일하게 사진 후생담당인 저만이 카메라를 들고 다닌 병사가 없었고, 카메라는 사병들이 보안상 군부대에서 금지되었고, 만약 촬영을 하게 되면 보안 부대에서 가지고 가서 일일이 검사를 맡은 다음 사진을 유출해야 돼는 엄격한 분위기 였읍니다. 이 사진들은 양 미란이를 통해서 전부 모두에게 보내어 드렸던 사진입니다. 지금은 이 사진들도 정리를 해야 되기때문에 버린 사진중에 일부 남은 사진 몇장만 있어 브로그에 남겼읍니다.
파월용사를 실코 떠나는 열차
파울용사들이 탄 부산항의 선박
월남파병의 노래
김종문 작사 김동진 작곡
조국위해 싸워이긴 불굴의 투지 나아간다 이억만리 우방을 찾아 갈라진 강도 설움나누며 갈라진 강도 설움나누며 손맞잡고 몰아내리 붉은 이리떼 파월용사 파월용사 대한의 대한의 자랑 펄펄펄 휘날린다 태극기 휘날린다.
자유위해 맥박치는 영광의 사도 뛰어든다 열풍속에 평화를 찾아 얽혀진 정글 험난헤치며 얽혀진 정글 험난헤치며 모두뭉쳐 이룩하리 밝은 아세아 파월용사 파월용사 대한의 대한의 자랑 펄펄펄 휘날린다 태극기 휘날린다.
방우회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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