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체육

1960년 17회 로마 올림픽

이장춘 2012. 7. 13. 03:44

 

 

최윤칠 기수가 받쳐 든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56명의 한국 선수단이 스타디움을 들어

서자 관중들은 환호 했습니다. 국민들의 기대도 커서 16개의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고 중계방송을 위해서 KBS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을 비롯, 여러 국제대회에서 역량을 발휘한

 임택근 아나운서와 새롭게 부상하던 이광재 아나운서, 그리고  김성배

엔지니어를 파견, 16걔 경기장을 쉴 사이 없이 돌아다니며 목이 터져라

중계방송을 하는 등, 힘을 기울였지만 끝내 메달 권에 진입한 선수는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차기를 약속하면서 참여하는데

의미를 두었던 대회였습니다. 뒷부분에 이광재

아나운서의 회고담이 있습니다.

 

 

1960년 17회 로마 올림픽, 중계방송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 

 

 

 

 

84개국 5,343명으로 이때까지

가장 많은 남녀선수가 참가해서 17개 종목

150개 경기가 거행되었고 찌는 듯 한 무더위 속에서

마라톤 코스를 맨발로 달린 초인 아배배가 아프리카 최초로

금메달을 안겨주어 일약 세기의 영웅으로 탄생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찌는듯한 무더위로 오후늦게 시작된 마라톤경기에사

아베베는 출발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포석(鋪石)이 깔린 아피아 가도를

 달려 계속선두를 지키면서 조금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승점임 콘슨탄틴 대제의 개선문을 2시간 15분 16초 2라는

 당시로서는 초인적인 기록으로 골인했습니다. 전대회 인간

자동차 자토백이 세운 기록보다도 8분이 앞섰고 이로서

에티오피아 마라톤 시대가 열리면서 1964년

 18회 일본 동경대회에서도 우승했습니다.

 

 

 

 

불굴을 뛰어넘어 3관왕의 영예를 쥔

흑인소녀 월마 루돌프의 인간승리, 세기의

철권 클레이의 등장, 0.003초의 극적인승패 등

숫한 화재를 남긴 대회였습니다.

  

몬테마리오 언덕위에 웅장하게

새워진 메인 스타디움과 그 주변에 건축예술의

걸작이라고 부르는 실내체육관들이 세워져 구름다리와

지하통로로 서로 연결되는 등 독립된 올림픽공원을 세우고

인공위성을 통해서 주요경기가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계전역에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모든 기록과 판정이

전자장치로 결정되었고 경기장마다 전광판이 마련

되어 각종기록이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이광재 아나운서 로마 중계방송 회고담

 

 

 

 

참으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1960년 올림픽 중계방송 차 2천년 고도인

이탈리아의 로마에 도착했다. 비행장에서 시내 중심까지

거리에 널려 있는 것이 그 옛날 화려했던 고적뿐이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등록을 마치고메인스타디움을 찾아갔다. 10만명

수용 규모의 운동장.그 운동장 중앙 제일 높은 곳에 40여개의

특별 방송실이 설치되어 있고, 각 나라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이 개회식 중계를 앞두고 제각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와 임택근 아나운서는

Korea라고 표지가 붙어있는 방송실을

찾아갔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앞으로 2주간

생으로 또는 녹음으로 경기 실황을 중계방송 해야 하는

방송 센터다. 가지 고 간 태극마크를 문에다 붙여 놓았다.  

개회식을 시작으로 중계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Korea의

피켓을 앞세우고 대한의 아들딸이 입장하기 시작했다.“왼쪽 가슴에

태극표지를 부착하고 일사분란하게 시작했다.  우리의 믿음직스러운

 대한건아, 수륙만리 몇 만 마일이던가?낮과 밤이 바뀐 악조건 속에서도

기어코 승리를 조국에  바치리라 맹세하고 나온 우리의 선수들,

중앙 본부석단상을 향해 ‘우로 봐 경례’, 10만 관중들이 동방

예의지국의 나라 한국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열을

내어 중계 방송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전파를 인공위성에

띄워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전화를 이용해서

중계방송을 하던 때라 음성이 마치 파도를 타는 것 같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거나 어떤 때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어서 KBS 본부에서는 제발 빨리 말하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하라고 주문하는 일이 빈번했다. 금메달

하나만이라도 하면서 출전했던 우리의 성적은

기대 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서 그 당시 역도 경기의

중계방송 모습을 소개해 본다.

 

 

 

 

중계방송 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관중석의 한곳을 잡아 방송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둘러보니 다른 외국의 아나운서들은 거의

한결같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중계를

하더라도 목소리가 크지 않은데 비해 우리는 나이가 20대인데다

음성도 유난히 커 퍽 대조적이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아들 이 선수

바벨 앞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합니다. 드디어 우리의 아들 허리를 굽혀 바벨을 잡은 오른손 왼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어코 들것이냐 말 것이냐. 귀추가 주목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쭉 어깨 위까지 올렸습니다.   머리

위로 올리느냐,  쭈욱쭈욱 기어코 성공했습니다.“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역도장의 이탈리아

관중들은 선수는 안보고 일제히 내 얼굴만 보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내 목소리가 워낙 크니까 역도 경기장의

 진행부에서 사람 하나를 배치하며 목소리가커지면 낮추라고 손을

밑으로 흔들어댔다. 그때 출전했던 김해남 선수는 메달 감이었다.

내가 소리 높여 “김해남선수 쭈욱 쭈욱 올리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치가 않습니다.” 하는데 나를 지키는 청년 이 어깨를

툭툭 친다. 소리를 낮추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나는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

하는 긴박한순간에 다른 것이 보일 리 없었다.

목소리를 낮추라고어깨에 신호가 오는 순간 팔꿈치를

 뒤로 제쳤다. 그러는 순간퍽 하는 소리와 함께 쿵 소리가

 났다. 그가 내 팔꿈치 에얼굴을 정면으로

맞고 나가떨어진 것이다.

 

나도 깜짝 놀랐다. 미안했다.

김해남 선수가 드디어 2차시기에 도전했다.

또 담당 청년이 목소리를 낮추라고 어깨를 두드렸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말을 더듬었다. 화가 난 나는 팔꿈치를

구부리고, 그러면 그 청년은 뒤로 3m가량 쏜살같이 도망쳤다.

 

웃지 못 할 촌극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우리 둘은 서로 미안하다면서 악수를

했지만 그 젊은 열기와 그 목소리는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다른 나라 아나운서들은 축구면 축구, 농구면 농구하는 식으로

하나 내지 두 종목만 중계하고는 이 경기장 저 경기장하며 시간을 내는데

비해 나는 수영·다이빙·승마·육상·마라톤 등 매 경기장을 뛰어 다니며

 중계하느라눈 코 뜰 새 없었다. 몇 개 종목을 중계 방송하느냐고

묻기에 16가지를 한다고 하니 모두 놀란다.

 

“몇 살이기에 너의 나라를 대표해서 왔느냐”

 

하기에 “28살”이라 했더니 18살로 밖에

안 보인다며 거짓말이라한다. 누가 소문을 냈는지

 ‘16개 종목을 중계방송 하는18살의 Korea 아나운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하이 꼬레아노’라고 인사를 했다.

올림픽 경기 기간 중 어느 날 나는다이빙을 중계하러 수영장에 가서

진을 쳤다. “다음은 우리 한국 선수의 출전입니다. 새까만 수영복에

왼쪽 가슴엔 우리의 상징인 태극표지를 달고 늠름하게

다이빙대를 높게 오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동안 닦은 기술과 필승의 정신으로

기어코 좋은 성적을 조국에 바치고 민족에 받쳐 주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드디어 호흡을 가다듬는 우리의 호프,

심판의 점수를 많이 받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두 손을 앞가슴

앞으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위까지치켜 올리면서 점핑!”

 한 바퀴 돌면서 수면으로 들어갔다… 하는 순간 말이 꽉 막혔다.

다이빙은 머리부터 들어가야 하는데몸체가 옆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소리 높여 중계 방송하던 나는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도망 치다시피

수영장에 빠져 나왔다.

 

나중에 코치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제때에 물을 갈아주지 않아 누렇게 물이 썩은

서울 운동장 다이빙장에서 연습하던 선수가 최신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펄쩍 뛰어 한 바퀴 도는데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물인지 구분이 안가 실수한 것이라고 한다.

실수를 나라의 가난 탓으로 돌렸다.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이다.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 / 국가기록원

 

올림픽 선수단 출국 / 국가기록원

 

올림픽 선수단 탑승 / 국가기록원

 

올림픽 선수단 탑승전 모습 / 국가기록원

 

  

 

로마 올림픽의 기수 최윤칠선수에 관한 얘기는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1317

 

 

 

 

 

동경대회에서 달리는 아베베

   

 

 

  로마시대의 제복으로 단장한 팡파르 주자들이 성화대 주위를 들러싼 가운데

성화 최종주자 고교생 선수인 장카로 군이 성화데에 둘길을 당겼습니다.

 

 

거대한 로마시대 조각들로 둘러싸인 데이마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필드하키에서 인도팀이 숙적

파키스탄에 패해 7연승의 꿈이 깨졌습니다. 두나라는 

종교적 갈등으로 갈라진 나라였습니다.

 

 

  휘황한 불빛으로 밝게 비춘 콘슨탄틴 대제의 개선문 앞 게선문 우측으로 콜로시엄의 일부가 보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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