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앞세우고 최초로 출전한 1948년 제 14회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탄생하긴전 조선 올림픽 대표단 (KOREAN OLIMPIC TEAM)이라는 이름 으로 1936년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선수를 단장으로 참가한 런던 올림픽은 우리에게 감격에 벅찬 대회였습니다. 마라톤에 기대를 걸면서 4명의 선수를 출전 시켰지만 국민적인 기대가 분노로 변하기도 한 대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두개의 동메달을 따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한 이 대회는 해방후 최초로 해외 중계방송이 실시되었습니다. 현지 중계방송을 위해 KBS 중앙방송국의 민재호 아나운서(방송과장)가 파견 되었습니다. 중계방송이라고 해서 오늘날과 같은 중계방송은 아니었습니다. 엔지니어도 없이 시설, 장비도 없이 외국의 힘과 시설을 빌려서 중계방송을 했던 때라 그날의 경기소식을 모아 7월 30일 밤 11시 45분부터 15분간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말로 방송사상 최초로 해외 중계방송 올림픽 중걔방송이 실시되었고 국민들은 눈물어린 감격으로 그 방송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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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50년, KBS TV 스포츠방송 50년
런던 올림픽! 1948년 태극기 앞세우고 감격의 첫 출전
위 사진은 서울운동장에서 결단식을 갖고 촬영한 선수단의 일부사진입니다. 왼쪽부터농구 오수철, 레슬링 한상룡, 김주환 레슬링 코치, 마라톤 4명 서윤복, 홍종오, 함기용, 최윤칠, 5,000 10,000m 심복석800, 1,500m 이간석, 너비뛰기 3단뛰기기 김원권, 육상 김원용 선수입니다. 경기일정은 7월 29일부터였지만 요즈음 처럼 교통이 원활치 못하던 때라 서울역을 출발 기차로 부산에서 배로 갈아타고 출발 일본을 거쳐 홍콩에서 비행기를 타는 등 여러경로를 거쳐야 하는 관계로 서울역을 출발한지 20일의 여정끝에 7월 4일과7월 7일,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너무도 아쉬웠던 마라톤 최윤칠선수의 모습이고
해방되기 전 우리나라 사람이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1932년의 미국 LA대회이고 그로부터 4년 뒤 올림픽 왕 손기정선수가 세계 마라톤을 재패했지만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렸습니다. 그 일장기 달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일장기를 때어내고 신문에 실었던 그 시절의 3대 민족지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36년 배르린 올림픽이후 1940년과 1944년의 대회는 전쟁으로 무산되었고 48년의 올림픽은 12년만에 열린 대회였습니다. 아직 우리정부가 수립 되기 전이었지만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한 최초의 올림픽 이었고, 12년 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선수가 단장이 되어 67명의 올림픽 선수단이 출전했습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런던, 중앙방송국 민재호입니다』 실로 감격적인 첫 출전 올림픽, 첫 맨트 그 인사말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48년 7월 29일(목)부터 8월14(토)일까지 17일간 열렸던 그 대회에 67명의 선수가 파견되었지만 가난하던 나라에서 기술자도 없이 보조 아나운서도 없이 혼자 그 중계방송을 했습니다. 그때는 방송시간이 짧고 방송 상태가 나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성적이 좋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성적 좋고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올림픽에 출전했고 그 현장 중계방송을 들었던 그 역사적인 감격어린 순간이 중요했습니다.
1948년 7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1948년 우리선수 메달리스트
태극기를 가슴에 단 최초의 동메달리스트 심성집선수
이 대회에서 역도 김성집선수 권투 한수안선구가 동메달을 땄습니다. 사상 첫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역도 미들급에 출전한 김성집 선수는 380Kg을 들어 올려 감격의 첫 동메달을 땄습니다. 광복 조국에 첫 메달을 안겨준 김선수는 런던 하늘높이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권투 플라이급에 출전한 한수안 선수는 2차전에서 유럽챔피언 프랑스선수를 물리치고 준준결승에서 네덜런드 선수를 K. O로 제압, 준결승에 올라 이탈리아의 벤디넬 선수와 격돌했습니다. 벤디넬 선수와는 세차례나 파울을 범하는 등 시종 열세에 몰렸으나 판정은 오히려 그에게 돌아가 관중들의 새찬 비난과 함국 임원들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동메달 한수안! 경기에서 이기고 판정에서 진 눈물의 동메달!이었습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첫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 새로 독립된 나라 아시아의 변방국이던 시절, 코리아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때 때로는 중국이나 일본에 속해있던 작은 나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때 중계방송 아나운서 민재호님이 스스로 쓴 ◀런던 올림픽 기행▶에서 밝혔습니다. 올림픽 중계방송석 옆에 앉았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사람에게우리 선수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가르키며 「보시오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이 우리 코리아 사람들이오,」라고 말하자 그들은 「저렇게 많아 왔습니까?코리아가 얼마나 큰 나라입니까?」라고 놀라기에 한국이 상당이 큰 나라라고 했다는 얘기가 쓰여 있습니다.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해마다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1952년 전쟁 중에도 올림픽에는 갔고. 큰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26세의 젊은 서명석 아나운서는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을 힘차게 불러대면서 현장의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8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여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 4강 달성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
런던 올림픽 참가에 절대적인 공로를 세운 정경무님의 사진을 담은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했습니다.
산수촌 입촌하는 서수단으로 올림픽 입장식처럼 치뤄졌습니다.
선수촌에 입촌을 앞두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다음은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우리 선수들 관련사진 5장을 올렸습니다.
교실 선생님 글
귀한 올림픽(14회) 자료 볼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아직도 생생하게 그때의 감격의 시간 들을 기억나게 하며, 또한 볼 수 있게하시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소중한 자료 보관 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전쟁 참화속에 12년만에 다시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스로부터 운반된 성화가 최종주자에 들려 웸블리 스타디움 성화대에도착했습니다. 스타디움 상단 전광판에는 "올림픽 경기에서 중요한것은 승리가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잘 투쟁하느냐에 있다" 는 1908년 쿠베르탱 남작의 의해서 올림픽 제2의 표어로 채택된 올림픽 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중 폭격으로 파괴된곳을 수리하고 다음어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됐던 웸블리 구장의 공중촬영 모습
자토백은 4년뒤 헬싱키 대회 우승 등 자토백 선풍울 알으켰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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