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국희 아나운서!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은「한밤의 음악편지」「MBC 여성싸롱」 프로그램 이름과 함께 ‘임국희’ 그 이름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어 그 이름을 들으면 그 정겹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 님은 79세가 되었건만 지금도 임국희 아나운서를 20대, 30대로 머릿속에 그리시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아나운서였던가를 짐작케 한다. 1964년부터 10년 가까운 세월「한밤의 음악편지」를 들어오던 여학생들이 주부가 되었을 때 MBC는 ‘임국희’ 그 이름을 넣어 「MBC 임국희의 여성싸롱」을 편성했다. 그러자 같은 시간대 편성된 각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이 어려움을 겪었다. 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MBC 여성싸롱 한국아나서클럽회장 오랜 세월 청취율 1위를 지켜오던 같은 시간대의 TBC 동양방송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청취율을 허물어 뜨려 그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김선옥은 세월이 지난 오늘도 그때의 어려 웠던 일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밤의 음악편지를 들어왔던 여학생들이 주부가 되어 모두 임국희 방송 따라 MBC로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임국희林菊姬 아나운서! 1938년 1월 17일 만주 할빈에서 중학교 교사의 2남 1녀 중 막네로 태어나 어린시절 용정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용정 제3중학교 선생님으로 계셨고 본인은 7살때 금강소학교에 들어가 2학년때 해방되어 서울로 돌아와 살았다. 만주에서 살던 어린시절 우리말과 중국어, 러시아말을 사용했고, 또 국내에 돌아와 자라면서 영어와 일본어를 배워 모두 5개국어를 할 수 있다. 만주에서 살던시절에도 오빠들은 서울에서 경성제국대학을 다녔는데 해방되어 서울로 돌아와 전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할빈에서 살때는 할빈역 부근에 살면서 역전에 새워진 이등박문 동상 앞을 오가던 기억이 생생하고 용정에서는 해란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바지에서 살았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고향이 용정이라 그의 시에 관심이 많았고 '한밤의 음악편지'를 진행 할때는 용정과 윤동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여고시절의 임국희와 6살 아래의 S동생 황유자 남산국민(초등)학교, 경기여자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이어 1961년 KBS아나운서 공개 채용시험이 있어 응모, 아나운서가 되었다. 결혼 후에 아나운서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때였지만 임국희 아나운서가 시험에 응시 했을 때는 그런 제약은 없었다고 했다. 그때 함께 들어온 아나운서로는 배덕환, 인주희, 최정현 등이 있다. 엄복영, 이규항, 김용문, 이홍우, 길종휘, 이원춘, 김정자, 최승일 등은 1961년 같은 해에 들어왔어도 기수가 다르다.
KBS에 재직하던 1962년 KBS 연말 특집방송, 남 : 여 청백전(위 사진), 임택근 : 임국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남, 녀가수 대표 현인, 신카나리아가 어느편이 먼저하나 가위, 바위, 보 히는모습이다. 1년차 임국희 아나운서가 대스타 임택근 아나운서와 함께, 대 스타들이 출연한 공개방송에서 흔들림 없이 사회를 보 는 모습을 본 주위 분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며 대성 할 수 있는 아나운서 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3년간 KBS에서 근무하던 임국희 아나운서가 1964년 MBC로 옮겼다. MBC 창설요원들이 TBC로 옮겨가고 MBC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한민국 대표 간판 아나운서 임택근, 최세훈, 임국희 아나운서 등을 영입했다. 임국희는 KBS에서 3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2011년 MBC창사 특집 'MBC와 나' 프로그램에 출연 "직장대항 노래자랑 같은 일반인 코너나 행사 前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내가 맡고, 임택근 선배는 뒤에 등장해 스타들이 나오는 쇼만 맡았다" 는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주요프로그램을 담당했다는 의미다. 그때 MBC가 새로 내놓은 프로그램이 DJ 「한밤의 음악편지」로 청취율이 낮았던 심야 프로그램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때의 방송을 배경음으로 듣고 계신다. 심야 생방송, 여성 아나운서들이 그 심야의 생방송을 하는 경우가 없던 시절 임국희 아나운서에 의해서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날마다 이어지는 「한밤의 음악편지」는 TV가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어렵고 힘들어도 아플 시간도 없이 이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이 프로그램 담당자 또 한사람의 유명인 이종환 프로듀서와 함께................! 필자 이장춘이 임국희 아나운서를 만난 것은 50년 반세기기 넘고 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구하고 싶은 「한밤의 음악편지」사진 한장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 시절 사진을 잘 찍지 않던 시절 이어서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몇 번인가 이야기를 했더니 한 모임에 참석하시며 벽에 걸린 작은 액자를 때어가지고 오셨다. 그 사진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액자에 담은 사진과 그 사진을 손에 든 임국희 아나운서 50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을 담았다. 손에 들린 사진은 1960년대의 사진이고 들고 계시는 분은 77세, 2014년의 임국희 아나운서다. 5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50년의 시차가 있는 같은분 사진......! 그 시절 신문, 잡지 등에서는 임국희 아나운서를 화제의 인물로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 많이 보던 아리랑잡지에서 1966년 1월 임국희 아나운서 에게 상을 주었을 때 촬영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수상을 축하 해 주러 온 김동건, 이영주, 최계환, 임국희, 박종세 아나운서(왼쪽부터)와 함께 한 사진이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방송에 관한 이해를 돕기위해 2013년 12월 15일자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 초대석에서 후배 MBC 새내기 김대호 아나운서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인용한다. 당시에 어떤 방송들을 했었나요?" "대호 씨, 정말 옛날이야기 잘 모르는구나. ‘한밤의 음악편지’ 몰라? 내가 1964년부터 72년까지 진행했지." "사실 찾아보고 알았어요. 죄송하지만 잘 몰라요." "호호호! 당시에는 오전 7시 전과 오후 10시 이후에는 여자 목소리가 전파를 타면 안 되는 시기였어." "네? 정말요? 왜요?" "예전에는 그랬어. 그런데 ‘한밤의 음악편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밤 시간대에, 그것도 가요가 아닌 팝송이 나간 방송이었지. 당시에는 아나운서가 엔지니어와 작가의 일도 다했다고. 만능이 되어야 했지. 나는 음악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봤어. 그게 다 라디오 방송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다른 DJ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 앨범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 프로그램이었다고, 이 사람아!" 당시 선배님 방송 중 시낭송을 녹음해 만든 해적판 레코드가 날개 돋친 듯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한밤의 음악편지를 담당하면서 겪은 사연들, 하루에만도 갖가지 사연을 담아 보내온 수천통의 엽서가 싸이던 시절 거기에 얽힌 얘기만 해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여성이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 퇴근 하면서 겪은 사연! 등등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그때 그 얘기를 해 달라고 물으면 답 하기를 '그때 그 얘기를 다 간직 했으면 옛날에 죽었을 거야, 나 알지 않아 그때 그때 잊어버리는 것' 그렇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잊어 버리는 사람이다. 잊어버리지 않고는 하루 하루를 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괴로웠던 일, 힘들었던 일은 물론 즐거웠던일, 행복했던일 까지도 뒤로 돌리는 성격이다. 말도 꼭 필요한 단어만 골라서 한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건강비결은 바로 이것일거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복잡한 애기는 묻기도 어렵고 물어도 웃어 넘길뿐 자세한 얘기는 듣기 어렵다. 그 얘기를 다 하고 듣자면 책으로 몇십권을 써도 모자람직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사연을 안고 사는 분이지만그로부터 그 사연을 듣기도 어렵다. 그래서 남긴 사진도 없나보다. 옆에서 보면 사진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듯 하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필자가 아렵게 몇장의 사진을 받은적이 있다. 원본을 돌려드리겠다고 했더니 '버려 버리라고 한다' 필자는 엣 사진을 받으면서 '버려 버려라. 고 한 얘기를 들은적이 잆다. 그러니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엤사진이 없는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님의 곁에 있어보면 늘 행복 해 하는 모습이다.
그 시절 임국희 아나운서가 1974년 MBC 아나운서 직을 뒤로했다. 그렇다고 아나운서를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했다. 프리랜서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워낙 인기가 있었던 임국희 아나운서에게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MBC 임국희의 여성싸롱」이번에는 심야방송이 아닌 아침 생방송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 6시부터 준비를 갖추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임국희 라는 이름따라 수많은 청취자들이 함께 했다. 1965년 5월 3일 방송이 시작된 TBC 동양방송 '아차부인 재치부인'!, 뉴스, 인기연속극 스포츠 빅게임에도 청취율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이 MBC 임국희의 여성싸롱이 생기면서 된 서리를 맞았다. 그동안 한밤의 음악편지에 심취하던 여학생들이 결혼시기다 되고 또 주부가 되어 임국희 아나운서 프로그램 따라「MBC 임국희의 여성싸롱 이예요.」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TBC 아차부인 재치 부인 담당 프로듀서 김선옥은 2015년 11월에 대 한언론인회에서 출판한「그때 그 현장, 못다 한 이야기」에서 그때 그 얘기를 썼다. 임국희의 여성싸롱이 한참 인기를 끌던 1979년 3월 대중여성잡지 ‘쥬단학’에 실린 글이 있어 옮긴다.
보내져 오는 편지만 해도 3천통에 이른다. 미혼여성과 가정주부의 편지가 주로 소개되는 이 프로는 외계로부터 차단 당한 채 생활하는 집안 여자들의 바람직한 교감의 수단으로 비록 그 의미가 있다고는 하나 매월 백만통에 육박하는 만지장서가 한 프로그램에 쇄도한다. 함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요리사를 넘어선 전파 미디어를 통한 규중사연교(閨中事 緣敎)의 교주임을 알게 된다. 생방송을 위해 365일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함 틈만 나면 아무데서나 책을 펼쳐든다. 나이의 티를 느낄수 없는 것은 긴머리 탓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의 회전력 때문이라고, 취미 1호 독서를 위해 책을 선택하는 시야가 넓고 다양하면서도 기민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을 들수 있다. 그는 탐정 소설도 읽고 문학작품도 읽고 소녀스런 베스트셀러도 읽고 전공인 역사 서적도 읽는다. 스스로 변덕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독서습관을 통해 그는 부지런히 굳어져가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이를 깨고, 직업의 틀을 깨면서 매너리즘을 모르는 임국희의 청춘을 연장시켜 나가고 있다. 오늘날 대중화된 떡볶이가 이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소개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 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타면 순식간에 유행이 번지곤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1984년 MBC는 대규모의 특집방송과 행사를 했고 임국희 아나운서는 1984년 방송대상 MC부문상을 받았 으며 MC 10년, 방송 23년을 맞아 특집방송을 위해 동남아 취재길에 오르기도 했다. 1984년 10월 8일자 매일경제 기사 한편을 올린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전성기를 기억하던 후배 방송인들은 계속해서 방송 스튜디오에 모셔 2003년 4월까지 평화방송, SBS, tbs(교통방송)등에서 방송마이크 앞에 앉았고 2003년 6월부터 MBC 경영 최고 의결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역임했다. 오랜 기간 MBC 여성아나운서 모임 초록회 회장과 MBC사우회 감사, 한국아나운서 클럽 부회장을 역임한 임국희 아나운서가 2015년 3월 5일 한국 아나운서클럽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활발한 활동을 벌리고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춘하추동방송에 자세한 내용이 올라 있기에 관련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가름한다. 화 보 임국희 아나운서가 KBS에서 3년을 근무 했다. 이 사진은 1963년 강찬선 아나운서가 방송문화상을 받고 아나운서들이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남산방송국 뜰에서 임국희 ·김경숙 아나운서가 다정한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선후배라고 하셨는데 어느분이 선배이고 언니일가. 궁금하다. 아래는 같은 해에 들어온 김정자(좌) 아나운서와 함께 한 사진이다. 위 사진은 김경숙 아나운서가, 아래 사진은 미국 김정자 아나운서가 주셨다. 위 사진은 1966년1월에 아리랑 시상식무대에 오른 임국희 아나운서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이 사진의 사연을 물어 답을 보내주셨다. 당시 인사동 오진암이란 요정에 예쁜 기생 들이 가는 미장원에서 머리 올리고 분장실 없는데서 내 손으로 눈섭부치고 무대 올라갔죠. 둘째 아들 임신으로 입고싶은 드레스 못입었죠 ㅋㅋㅋ 아래는 MBC 제4대 조증출사장님과 함께 한 임국희 아나운서다. 1967년 조증출사장님은 박정희 대통령과 친분이 깊었던 분이다. 한국 아나운서클럽 회장취임때 문화일보에 나온 사진으로 임국희 아나운서는 금기시 된 심야방송의 금기를 깼다고 했다. 이철원, 임국희, 오남열 아나운서 임국희 아나운서가 MBC로 옮기고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 조규원, 최승일, 송영규, 오남열, 최세훈, 김순환, 이철원, 유창경, 최정연. 백혜정, 장인숙, 김상옥, 안영희, 임국희 아나운서가 참여한 가운데 촬영한 사진이다. 오늘의 임국희 아나운서와 필자 이장춘 한국아나운서클럽 이형균국장 촬영 춘하추동방송 동우회 카페에 이 글을 옮겨 올리고 있는 시간 2016년 5월 8일 어버이날 새벽 5시 한국아나운서클럽 황량국장 님으로 부터 한통의 카톡편지가 왔습니다. 황 량 국장님 카톡 편지 내용 수백~수천년의 중국역사를 쓴 "사마천"이 있다면.. (일설에는 모택동이 29번읽었다는 사기와 자치통감) 아나운서의 역사를 만드신 이장춘국장님의 업적은 사마천과 버금가는 명작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대작입니다. 이달 중순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좋은 일이 많은 시간되시길...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황 량 아나운서의 카톡 사연을 읽고...>
황 량 국장님껜 지금도 아나운서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린다. 임국희 아나운서! 명료한 언어와 겸허한 인품, 세상을 내다보는 예리한 안목, 깊고 폭넓은 지식과 정보력을 그의 3대 강점으로 꼽는다면 아직도 그는 분명 청춘 아나운서다. 더러는 낡은 감각을 벗지 못했던 60년대 초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과 감성의 온갖 화두를 던지며 방송에 새 물결을 일으켜, 가히 임국희 시대를 열어온 분과, 그 분의 생애를 대 서사시를 쓰듯 1인 미디어에 펼친 빅 블로거 이장춘 선배님의 업적을 <사마천>에 절묘하게 비유한 황 량 국장님의 큰 업적 앞에 무슨 내 둔필이 더 필요할까 싶다 이정부 아나운서님이 올려주신 황량 아나운서님의 글 세월이 가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그 중에 하나는 사람의 목소리 같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클럽 회장님은 1974년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더욱 밝고 영롱한 빛을 뽐내셨으니... 가히 40~50년전 인기 절정의 스타였습니다. 지금도 잊지 않고 다정다감한 그 목소리와 소박한 그 멘트를 기다리는 진정한 '소리의 벗들'이 많습니다. 이제 반세기 만에 그립고 정다운 목소리를 다시 듣게 돼 기대 만발입니다. 그리운 목소리를 찾으려 오랜 밤을 지새셨을 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대표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 감사합니다". 열번 백번 감사하다고 해도 부족해 저는 이장춘 대표님께 감사뿐만 아니라 두손을 높히 올려 " 만세", "만세", " 만만세" 불러드립니다. 좋은 명품 기대합니다. 더욱 생생한 한국방송의 역사를 써주시고 소리도 남겨 주십시요. 황 량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참, 어여쁜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느새 80을 바라보신다니 믿고싶지가 않습니다. 덕분에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남자가수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 도 들을 수 있어 횡재했습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한밤의 음악편지!" 오늘은 여기서 인사 드립니다. 임국희! 였습니다. 꿈 많은 학창시절, 사랑과 시를 노래 했던 정겨운 음악 프로그램 이였지요. 아나운서,가 오늘은 한국 아나운서 클럽 회장님!의 자격으로 우리 앞에서 환한 미소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세월속에서, 마음 속에서, 그리움 속에서, 임국희,아나운서와 함께 하였던 추억의 시간 들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 할 것 입니다. 좀처럼 얼굴 보이시기를 꺼려 하시는 이장춘 사장님!이 오늘은 임국희 아나운서와 함께 포즈를 취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사장님!.^0^ ^0^ ^0^ ^0^ ^0^ 민순혜(리아) 선생님! 너무나 소중한 글 감동깊게 잘 읽었어요. 얼마전 '동주' 영화를 보면서 감동이 블로그를 읽으며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국장님 역사의 단편인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 방송 청취도 열렬 팬이었는데요, 오늘 다시 블로그에서 임국희 아나운서 목소리를 들으니 감동 깊어요 깜비깜비님 글
너무도 소중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 학창시절 ,, 임국희님,, 감사합니다 가슴에 담아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HAHAHA님 글
너무나 그때 그 음성을 듣고 싶었는데 37년만 인가 들었습니다. 이렇게 들을수 있어 행복 합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MBC 여성싸롱 한국아나서클럽회장 http://blog.daum.net/jc21th/17782847 임국희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제 8대 회장취임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2413
임택근 황우겸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512 임택근 아나운서클럽 특집동영상 회보창간 5주년 기념 http://blog.daum.net/jc21th/17782785 한국아나운서클럽 창녕고택 모임 임국희 회장, 2016년 4월 11일 임국희 아나운서 그때의 방송(시낭송 초혼과 장기범선생님 추모)오늘의 목소리 http://blog.daum.net/jc21th/17781737 임국희 아나운서 특집대담 MBC 문화방송 김대호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http://blog.daum.net/jc21th/17782327
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MBC 여성싸롱 한국아나서클럽회장 초록회 MBC OB 여성사원모임 (PD, 아나운서-회장 임국희) 이종환 PD(DJ)와 임국희 아나운서, MBC 한밤의 음악편지 http://blog.daum.net/jc21th/17781773
윤동주의 삶과 시 별헤는 밤 낭송 임국희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749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그 이름(명단) 그 얼굴 사진 http://blog.daum.net/jc21th/17782218
임국희 (네이버 위키백과) . 1966년1월에 아리랑 시상식무대에 오른 임국희 아나운서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이 사진의 사연을 물어 답을 보내주셨다. '당시 인사동 오진암이란 요정에 예쁜 기생 들이 가는 미장원에서 머리 올리고 분장실 없는데서 내 손으로 눈섭부치고무대 올라갔죠. 둘째 아들 임신으로 입고싶은 드레스 못입었죠 ㅋㅋㅋㅋㅋㅋㅋ, 아래는 이때 시상대에 함께 섰던분들 최계환아나운서성우 오승룡, 농구선수 박찬숙님의 모습과 그리고 수상하는 모습을 담았다.' 농구선수 박찬숙, 최계환 아나운서 성우 오승룡니과 함께 수상하는 모습 2015년 6월 아나운서 클럽 MBC방문의 날에 임택근 아나운서와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회장 맹관영아나운서 제 51회 방송의 날에 문인수, 윤영미, 김상준, 임국희, 이장춘, 한이수 임국희 아나운서가 2014년 mbc창사 53주년을 맞아 골드마우스 상을 받고 후배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상암 MBC 벽에는 골드마우스 수상 임국희! 그 이름 영원히 올라 있을것이다,
오른쪽이 임국희 아나운서이고 왼쪽부터 선배아나운서 윤영중, 민병연, 문복순 그리고 아나운서 클럽 김동건 회장님입니다.
2012년 5월 24일 한국 아나운서 클럽 모임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1.이성화, 2.문복순, 3.강영숙, 4.임택근, 5.황우겸, 6.전영우, 7.김동건(회장) 8.임국희, 9.김규홍, 10.황인우, 11.임주완, 12.박민정, 13.윤영중, 14.민병연, 15.정용실 16.정영희, 17.원종배 18.이혜옥. 19.차인태, 20.맹관영, 21.박영웅, 22.배덕환, 23.이계진, 24.이후재, 25.성기영, 26. 정연호, 27. 권혁화, 28.양진수, 29.김상준, 30. 성경환, 이형균님입니다 .
2013 한국 아나운서 클럽 봄 모임에서 6번이 임국희 아나운서이고 1.김규홍, 1.김규홍, 2.박종세, 3.전영우, 4.김동건, 5.성선경입니다,
2013 한국 아나운서 클럽 봄 모임에서 5번이 임국희 아나운서이고 1.채영신, 2.김동건(회장), 3.이종태, 4.성선경, 6.박민정 아나운서입니다.
장기범 선생님 25주기에서 추도사를 하는 임국희님입니다.
추모행사가 끝난후 옛 아나운서들과 함께 한 사진으로 왼쪽부터 윤영중, 임국희, 이계진, 김경숙, 이연영, 이혜옥, 황인우 아나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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