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KBS 이사회제도와 변천 (한국방송공사-KOREAN BROADCASTING SYSTEM)

이장춘 2012. 2. 14. 21:42

 

 

 

KBS이사회는 1972년 12월 30일

한국방송공사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비롯되었

습니다.1948년 새로운 정부수립 때 국영방송이 된 KBS는

공영방송이 되어 의결기구 이사회라는 새로운 기구가 탄생했습니다.

 공사 경영 의결권을 갖는 것이었지만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에 정관, 규정,

예산 등 중요한 안건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정부의 지휘감독을 받는

 그런 공사 형태여서 여전히 국영방송이나 다름없는 운영체제 하에서의

이사회였습니다. 이때 출발한 이사회는 당연직 이사인 사장과

부사장을 포함해서 5사람의 이사로 이사회가 구성되었고

 이사는 공사의 업무를 분담해서 집행했습니다.

 

 

KBS 이사회제도와 변천

한국방송공사-KOREAN BROADCASTING SYSTEM

 

 

 

 

초대이사로는 당연직 홍경모사장,

최창봉 부사장, 그리고 조돈준, 이인관, 강찬선이

 임명되었고 분담 업부는 방송총국, 기술총국, 기술총국,

방송연수원으로 나뉘어있던 업무를 방송총국장장은 최창봉

부사장이 겸임했고 기술총국장 이인관, 경영총국장 조돈준,

방송연수원장 강찬선이 맡아 수행했습니다.

  

 

 

 

이 이사회제도는 1984년 4월까지 지속되다가

그때 다른 정부 투자기관과 보조를 같이 한다면서 의결기구인

이사회와 집행부를 분리해서 운영되었습니다. 이때 송지영 이사장을

 포함해서 6명의 이사가 임명되어 5월 7일 송지영 이사장이 부임했습니다.

이때부터 총국단위로 운영되던 집행부는 6개의 본부로 나뉘어

운영되면서 본부장제도가 생겼습니다.

 

 정부와 한국방송공사의 위상은 여전히

종속관계에 있어서 이사회가 집행부 업무와 분리

되었다는 의미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뜻이 방송의 공정성이나 공익성의 잣대였습니다. 1980년

신 군부의 출현과 억압으로 민주화 열기가 짓밟히면서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은 정부의 뜻대로 운영되었습니다. 5공은

 땡전시대로 대변되었을 만큼 방송은 오직 한곳의

 뜻에따라 운영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국민의 거샌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시청료 거부는 곧 민주화 운동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시청료 거부는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저항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나면서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6.29 선언이

나오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6.29선언이 구체화

 되면서 언론을 옥죄던 언론 기본법이 폐지되고 1987년 11월 28일을

기해 새로운 방송법 재정과 한국방송공사법이 새로운 형태로 

탄생하면서 이사회는 민주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1기 이사회가  신관 KBS홀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본관 옥상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1기 이사회

 구성원은 노정팔 이사장님을 비롯해서 고병익, 김남조. 김동철, 김동환, 김찬국,

박경환, 신세호, 양호민, 전응덕. 한운사님이고 2기는 노정팔, 김동철, 이인호,

전응덕, 깅동환 이사님이 유임되고 강찬선, 김춘수, 박흥수, 송재극,

윤여훈, 이혜복, 한남석, 홍기선님이 새로 선입되었습니다.

 

  

 

새로 제정된 방송법에 따라 국회와

대법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하는 방송위원 후보에

대통령이 4명을 추가해서 12명을 임명하는 방송위원회가

구성되고 또 방송위원회는 12명의 KBS 이사를 선임해서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대통령은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방송법 제정과 함께

 개정된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리 이사회는 이사장을 선임하고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선임, 대통령에게 제청해서

 대통령은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대통령의 KBS사장 임명은 형식적인

요건으로 받아 드려졌고 이사회 의결이 곧 사장의

임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때의 KBS 이사회는 KBS의 예산,

인사, 그 밖의 여러 제도 등 경영에 관한 모든 안건을 최종 의결

하면서 명실 공히 KBS의결기관이었습니다. 문화공보부가

검사권을 가졌지만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당시에 KBS이사회는 국민의 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업무에 임하면서 스스로 민선이사라고

 불렀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이사회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방송은 국민의 뜻에 따른 공정성, 공익성의

 새로운 잣대를 따라야 했고 또 그리 실천되어 갔습니다. 그러자

 방송장악에 익숙해 있던 정부로서는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갈등이 야기되고 정부는 다시 방송을 장악 할

구실을 찾고 있을 때 법정수당사건, PD사건

이라고 불리는 구실이 생겼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를 동원해서 KBS를 불륜집단으로

매도했습니다. 이에 맞서 KBS 전 사원을 포함한 각 방송사들과

 민주화를 지향하는 사회단체, 또는 각계인사들이 저항했습니다. 이른바

 「1990년 KBS사태」였습니다. 정부의 행위는 CATV, 위성방송 등의 실시와

곁들여 방송장악을 기도하는 행위로 의심 받기에 충분했고 방송인들의 저항은

 일부 국민 사이에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행위로 의심 받기도 했습니다.

KBS 이사회 제도의 최대 위기였지만 정부와 방송인들의 희생을 안은 채 정부의 체면을

새워주는 최소한의 몇 가지의 제도만 바뀌고 큰 틀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방송법이

 바뀌고 한국방송공사에 관한 사항이 방송법안으로 들어 가는 등다소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의 변화 없이 2009년 제 8대 KBS이사회가 구성 운영

되면서 기능과 역할은 오늘까지 이저져 오고 있습니다.

 

 

제 3기 이사회

 

이사장 김태길

 

김은구, 조찬길, 한남석, 신낙균,

이각범, 곽수일,  김우창, 전대련,

 최영도, 최정호, 추광영  

 

 

제 4기 이사회

 

이사장  이세중

 

강현두, 박성수, 백정란, 인명진, 임홍빈, 정구현, 정동윤, 한상진

 

 

 

 

 

  제 5기 이사회

 

이사장 지명관

 

박배희, 김금수. 김선우, 김창국, 김철수,

박범신, 이상희, 이연택, 전응덕, 황정태

 

 

 

 

제 6기 이사회

 

이사장 이종수

 

김상희, 김우철, 김인규, 박범신, 박원순

윤수경, 이영덕, 이영자, 이형모, 전응덕

 

 

 

 

 

제7기 이사회

 

이사장 김금수

 

남인순, 권혁부, 박동영,  박  만, 신태섭

 이기욱, 이지영, 이춘발, 이춘호, 조상기

 

 

 

제 8기 이사회

 

이사장 손병두,

 

고영신, 김영호, 남승자, 이상인, 이창근.

이창현, 정윤식, 진홍순, 홍수완, 황    근

 

 

 

 

2009년에 구성된 제8기 KBS이사회에 관한 사항은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199

 

 

제 9 기 이사회

 

KBS 이사회는 2012년 9월부터

제 9기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사 명단입니다.

 

 

김주언 시민사회신문편집인,

양성수 프라임방송연구소 대표,

이규환 전KBS편성팀장,

이길영 감사,

이병혜 명지대 교수,

이상인 KBS이사,

임정규 KBS위원,

조준상 소장,

최양수 연대교수,

최영묵 성공회대교수,

한진만 강원대교수

 

새로운 이사회는 9월 4일 제719차

임시 이사회를 열고  KBS 감사 출신의 이길영

(71)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이길영 신임

 이사장은 KBS 감사, 대구방송 사장, KBS

보도본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신임 이길영 이사장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9대 이사회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1410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성불사의 밤 기악.mp3

성불사의 밤 기악.mp3
2.3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