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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뚝배기, 2001년 화제의 드라마 KBS 일일연속극

이장춘 2012. 2. 6. 02:26

 

  

 

그 시절 최고의 TV 시청률, 시청자들에게

KBS 채널에 관한 관심을 불러 넣었던 서울 뚝배기,

이 프로그램으로 뒤이어 방송되는 KBS뉴스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 이 서울 뚝배기는 1990년 9월 3일부터 1991년

7월 5일까지 저녁 8시 25분부터 9시까지 방송

되었던 프로그램입니다.

 

 

서울 뚝배기, 2001년 화제의 드라마 KBS 일일연속극

 

 

 

 

 

드라마와 9시 뉴스가 맞물려있어서

이 시간대의 드라마를 살리지 않고서는 9시 뉴스가

어렵다던 시절에 드라마 최고 관리자 책임자였던 김연진 PD가

발 벗고 나서 연출을 맡았던 프로그램이고 김운경 극본에 주현, 오지명,

 서승현, 최수종, 도지원, 김애경, 김성녀, 길용우 등이 열연을 하면서 화제를

 낳았습니다. 시청률 상위권을 MBC가 차지하던 시절에 서울 뚝배기의 등장

으로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오지명으로부터 3대째 내려오는

 설렁탕집을 배경으로 여러 일들을 그리면서 서민들의

삶을 밝고 코믹한 터치로 꾸며 갔습니다.

 

 

 

 

건달 역을 맡은 주현씨의 ”....걸랑요. 와

 마담역 김애경씨의 “실례 합니다아.....," 하는 코 맹맹이

소리가 장안의 유행어가 되었던 서울 뚝배기였습니다. 신인으로

발탁된 도지원은 예쁜 용모에 발랄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인기

몰이를 해서 오랫동안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해 실시된 방송 대상에서 우수 작품상과

주현이 남자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안방을 점령하고 있을 때 서울

뚝배기는 시청률 40%를 오르내리면서

MBC에 뒤져있던  KBS 9시뉴스의 시청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었고 그로부터 9시 뉴스가 방송되기 전의 드라마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KBS는 8시 반 드라마에 총력을 기울여 위상을 확립 해

나갔습니다.연출자 김연진님은 2,000년에 펴낸 자서전 내 연출

 내 젊음 35년에서 서울 뚝배기에 관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 일부를 옮깁니다.

 

 

 

 

 

90년 10월은 나로서는 유난히도 바쁜 나날이었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고 김운경 극본 서울 뚝배기 연출에

전력 투가 하느라고 사무실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TV드라마를 수십 년이나 연출해온 나로서도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중압감과

또한 그 알량한 채면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쟁쟁한 후배 PD들이 선배들을 바짝

추격하는 마당에 10년 만에 다시 일일 연속극을 연출한다는 것은 역시 산고를

치러야 하는 진통의 연석이었다. 게다가 MBC드라마에 눌려 KBS드라마가

시청자 인기도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으므로 드라마 제작진이

모두 비상이 걸려 있을 때였다.

 

 “이러다가는 파멸밖에 없다. MBC의 드라마를 맹 추격하라.”

 

그러한 필요한 노력의 결과였는지 방송 2주째부터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더니 한 달 만에 드라마 랭킹 2위로

껑충 뛰어 오르는 것이었다. 그때 시청률 조사에서 1, 3, 4, 5, 6위를

모두 MBC가 차지하고 있었다. 1위 그 여자, 3위 몽실언니, 4위 전원일기,

5위 한 지붕 세 가족, 6위 충청 가욋 골, 그리고 유일하게 서울 뚝배기가 2위였다.

서울 뚝배기는 3대째 가업으로 설렁탕집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엮은 얘기를 드라마로

엮은 드라마였다. 오지명 (홀아비 장사장역)을 주인공으로 주현 (건달 역) 서승현

 (여동생 역) 도지원 (딸 역) 길용우 (지배인 역) 최수종 (종업원 역) 김애경

 (마담 역) 등이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한탕주의 사고방식이 만연된

이 세상에서 노력하는 대가만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요체라는 것이 주제였다.

 

 

 

원래 작가가 써 온 드라마 제목은

 “소문난 집” 이었으나 나는 이 제목이 마땅치 않았다.

서울에서 소문난 집이라면 설렁창집을 우선적으로 떠 올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설렁탕이라면 그게 뭐냐. 뚝배기를 연상 할 것이다. 그래서

서울 뚝배기로 제목을 바꾸었다. 뚝배기라면 서민풍의 구수한 냄새도 나고

우리의 토속적인 냄새는 물론 사람마다 오가는 정감이 흐를 것이었다.

서울 뚝배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기가 치솟자 90년 12월 31일로

막을 내라려던 드라마가 91년 3월까지 연장된 것이었다.

나로서는 여간 신바람이 나고 기쁜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신역이 고되다고 해도 연출자의 보람은

이런데서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7시 반에 일찌감치 출근해서 밤 12시 심지어는 다음말 1시자 두시에

귀가하는 일이 많았고 그날의 할 일에 따라 새벽 0시에도 출근해서 콘티를

짜느라고 대본과 씨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서울 뚝배기의 시청율이 치솟아

덩달아 혜택을 본것은 KBS 9시 뉴스 시간이었다. 매일밤 8시 30분에 30분동안

서울 뚝배기가 방송되고 나면 곧바로 KBS 9시 뉴스가 방송되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은 자기가 선택한 프로를 보다가 다음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BS 뉴스가 MBC 뉴스를 압도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당시 뉴스 앵커 맨 박성범씨(현 국회의원)가 기분이 좋아서 방송사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칠 적마다 “김 형, 고마워. 김 형 덕분에....”

하고 감사를 할 정도였다.........이하 약.........  

김연진님의 서울 뚝배기에 관한 글

일부를 옮겼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절정에 다다르고

 있던 1991년 4월, 연출자가 바뀌어 그 일이 의외로

 받아드려 지면서 또 한 차례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나가던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본인의 뜻에 반해서 중간에 바뀌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출자 김연진님은 그로부터 머리를 식히면서

공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 뒷날 대학교 교수로 활약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어도 그때를 아쉬워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신 카나리아 나는 열 일곱살이예요-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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