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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역할과 활동 1970년대 인명록

이장춘 2012. 2. 27. 03:00

 

 

 

한국방송 작가협회는 지금

한국의 방송을 움직이고 있는 여러 장르

작가들의 집합체이며 작가 권익활동의 구심점입니다.

이곳 홈페이지는 그런 방송작가 집단의 인터넷 허브인 샘입

니다. 방송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과 공기처럼 이제는 떼려야

뗄 수없는 일상의 한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방송의 임무는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방송이 끼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방송작가의 힘은

실로 커다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작가 협회 김옥영 이사장 인사말

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방송작가 역할과 활동, 1970년대 인명록

 

 

 방송국직원이 아니면서 방송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우, 탤런트. 연출가, 가수, 그리고

오늘 말씀 드리는 방송작가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땅에서

방송이 출범한 이래 시대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은 다소 달랐어도

 방송작가는 있어 왔습니다. 방송극, 방송드라마, 연속낭독, 각종

해설을 비롯해서 각 프로그램의 참여하는 폭은 넓습니다.

 

요즈음은 구성작가라고 해서 각 프로그램마다

 대부분 한, 두 명 내지는 몇 사람의 구성작가가 있어서

 방송국 직원들처럼 방송에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까지의 방송작가라고 하면 주로 드라마 작가를 일컫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드라마 작가는 프로그램마다 작가의 네임

사인이 들어가기 때문에 청취자의 입장에서는

 드라마 작가와는 친숙 해 졌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방송국에서

방송되는 그 많은 글 중에서 드라마 외에는

방송국 직원들이 쓰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또  글을

쓰기 위해서 채용한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해방직후 편성과

직원이 된 김영수, 유호님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최요안님은

 순수 작가이면서 촉탁이라는 이름으로 방송국 문예계장을

 지냈으며 조흔파, 조남사, 한운사, 김석야님도 방송국

 간부로 재직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김석야님은

 1950년대아나운서 김인숙님의

부군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윤혁민, 이기명, 최홍목(최홍준)님 등

작가였지만 방송국에서 봉급을 밭는 직원신분으로

 재직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현장 취재를 했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으며 각종 SPOT 스팟트

원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작가 분들

수도 많지 않았으려니와 남자작가가 주를 이루던

 때로 여자분은 몇분 안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른 방송국

직원들의 보수가 워낙 박봉이었던 때라 봉급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던 때여서 작품료를 받아 생활을 하기위해 드라마

네임사인은 예명을 썼던 시절이었습니다. 1973년 공사가 되면서 제작비

지급규정 등 한국방송공사 제도의 틀을 짜던 저는 현실성 있는 제작비 지급규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직원이 그 재능을 살려 방송국이 인정하

본연의 이외의 일을 할 때는 제작비 지급규정의 50%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방송국 직원 신분으로 글을 쓸 때는

 합법적으로 원고료의 50%를 지급받았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민영방송과 텔레비전의

본격적인 등장, 여성의 작가 진출 등 새로운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1960년대 라디오 방송은 대부분의 프로듀서가

제작을 했지만 드라마는 전문 연출가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텔레비전 방송 초기에도 프로듀서가 연출능력이 부족하던 때라 영화나

연극 감독이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프로듀서가 직접 연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드라마 작품은 작가들이 썼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송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확대 되었지만 직원들은 늘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의 단축 등으로 프로듀서들이 하던

 업무의 상당부문이 작가들의 몫으로 되었습니다. 주로 구성작가라고

 불리는 이분들은 옛날 프로듀서가 담당하던 업무역역까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그램의 기획에도 참여하고 글도 쓰고 연사도

섭외하며 진행에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작가 분들의 대부분은 여자 분입니다.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구성작가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수가 엄청 늘었습니다.

제가 방송제작에 참여했던 1960넌대 70년대

까지만 해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였지만작가들

스스로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를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고 하는 일도 늘어났니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합니다. 

 

 

1972년 방송작가 인명록

 

이 사 장 한운사

부이사장 이호원

상임이사 김영곤

 

이사

 

박서림, 정진건 (홍보위원회)

양근승, 윤혁민 (연구위원회)

이관석, 최 풍(권익 옹호위원회)

 

감사 박이엽, 이기명

 

회원

 

강위수, 곽일로, 곽현, 구석봉, 김경옥, 김관봉,

김광섭, 김교식, 김기팔, 김동현, 김석야. 김수현, 김순복,

김영곤, 김영수, 김원태, 김이연, 김창린, 김자림, 김중희. 김지수,

김진욱, 김포천, 김항명, 남지연, 노능걸, 민병훈, 박도원, 박서림, 박수복,

박신민, 박신호, 박우보, 박이엽, 박정란, 박조일, 박승찬, 백전교, 사유선,

서원성, 신명순, 신봉승, 심영식, 양근승, 연용모, 오재호, 오학영, 원랑운,

유보상, 유호, 윤청광, 윤혁민, 이관석, 이걸재, 이기명, 이남섭, 이문군,

이보라, 이서구, 이석정, 이성, 이성재, 이수화, 이영신, 이영준, 이용찬,

이욱열, 이원복, 이은성, 이이녕, 이인석, 이재우, 이진섭, 이철주,

이한인, 이호원, 이희복, 전창식, 전홍, 정진건, 조남사, 주옥연,

주태익, 차범석, 최요안, 최재복, 최풍, 최헌, 최호영, 최홍목,

추식, 하유상, 한운사, 현재훈, 홍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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