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의 방송기술인들

이장춘 2011. 8. 9. 01:38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의 방송기술인들

 


방송기술인들은 방송 시발점에서부터
시험방송을 할 때나 지방방송국을 설치 할 때나
이분들의 머리와 손길, 발길이 안 미친 곳이 없었습

니다. “여기는 경성방송국 시험방송이 올시다.”라디오

에서 울려오던 이 방송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술인 노창성님의 목소리였습니다.

 

 

 

해방 될 무렵만 해도 지방방송국에서는
엔지니어 목소리로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방송 초기에 지방방송국에는 기술과와 업무과가 있었습니다.

그후 기술과에 방송계가 생기고 또 방송과가 생기면서 기술과,

 방송과,  업무과로 된 후 청취료가 없어지면서 방송과

기술과로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방송 초기에는

 기술인들의 활동영역이 넓었습니다. 

 

 

 

 

방송기술인들의 맥을 짚어 보겠습니다.
최초의 방송인 노창성님은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업 쪽으로 가셨지만 한덕봉님은 6. 25때 납북되실

 때까지 기술에 몸담고 계시면서 우리기술인의 기둥이 되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 남용님이 1929년부터 경성방송국과 인연을 맺어 왔고

고흥인님, 황태영님이 방송기술인의 대 선배였습니다. 크든 작든

경성방송국에서 기술 쪽의 보직을 지내셨다는 기록이 있는 분은

 한덕봉님과 황태영님이고이남용님은 오랫동안 계셨지만

해방된 후에야 보직을 가졌습니다. 

 

 

 

 

한덕봉님은 항일 단파수신 사건이

함흥방송국이 문을 열면서 함흥 기술과장을

하시다가 일어날 무렵 평양방송국 기술과장을 하셨고

해방 될 무렵에는 경성방송국 기술과 부과장을 하셔서 한국인

기술인으로는 제일 오래 되신 분이고 제일 높은 지위에 계셨던 분입

니다. 해방 후 조선방송 협회 회장을 선임할 때 기술인 들은 한덕봉님이

 회장이  되시도록 뒷받침 했지만 일은 그렇게 안 되어 기술부장, 기술국장,

기감을 하시다가 납북되셨습니다. 황태영님은 단파 사건이 일어 날 무렵 이리

방송국 기술과장을 하시다가 물러 나셨습니다. 이남용님도 단파사건때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방송도 해야 했기 때문에 물러나시는 일 까지는 없었고 해방되고

조정과장이 되셨습니다. 그때 기술인들의파업사건이 일어나 그민

두셨고 ( 다른 곳에 얘기있음) 그 뒤를 이어 김성재님을

 거쳐 고종수님으로 이어집니다.  

 

 

 

 

이인관님은 평양방송국을 거쳐 이리 방송국을

설립 할 때 개국요원으로  일 했고 연희송신소에서

해방을 맞으면서 소장이 되셨습니다. 다음 사진은 1949년

11월 28일노창성 국장님이 중앙방송국장으로 새로 부임하셔서

 연희송신소에를 돌아보는 자리에서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해방공간에 해방공간에 연희송신소를 지킨 방송인들입니다. 

 



 

 

해방 되던때 전국 방송기술인들

 

 

조선방송협회 기술부
김경원, 김성재, 김승열, 이상훈, 최동곤, 한영식

 

 

정동연주소
한덕봉, 고찬국, 고병완, 심상웅, 김두식,
설창덕, 이순기, 이이화, 이종일, 이원상,

 

연희송신소 
이인관, 김규한, 한기선, 김봉근,
양길승, 양중석, 정일모, 이은동

 

부산방송국
황세연, 이우봉, 박인규, 지윤상, 강재수, 김정현,

 

평양방송국
김석모, 박능상, 김한룡, 조일건, 김창운

 

이리방송국
김기선, 이종만, 김남득,

 

함흥방송국
김원용, 김도현

 

대구방송국
심긍구, 조준기,

 

광주방송국
엄상선

 

대전방송국
유병은, 민병설, 조철영

 

춘천방송국
이종훈, 이규선

 

목포방송국
이태구, 한영희

 

마산방송국
고종수, 조선재, 박한국, 강대현

 

해주방송국
이종록

 

청진방송국
정규섭, 장용식, 최방진, 안용금

 

청주방송국
이규일, 김상곤

 

신의주방송국
김득풍, 함영복, 김익모

 

강능 이동방송 중계소 : 전영설,

 

장전방송소 : 심현보, 서산방송소 : 이성흠

 

 

조선방송 협회시절 1948년에 3월 정동방속국 현관 앞에서 조정과

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 정경순, 2 고종수, 3 이종일, 4 심응주

5 김선영, 7 김무호. 8 왕종현, 10 남궁규오, 12 박옥길, 13 김석모, 14 전영설

이때의 조정과장은 고종수님이었고 이종일님은 계장이었습니다.

전영설님은 원래 박상기로 기재되어 있던것을 전영설님의

아들 전인섭님이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해방되던날 연희송신소 전력실에서 일하시던 엔지니어들의 모습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