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해방 후 최초로 선임된 전국 방송국 책임자

이장춘 2011. 8. 4. 00:03

 

 

 
 해방 후 최초로 선임된  전국방송국 책임자 
 
 

1945년 9월 15일 군정청은 일본인 간부들을

해임했습니다. 우리방송인들은 방송국을 인수할 새로운

정부나 정당한 인수자가 나타나면 어느때던지 방송국을 떠나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그간이라도 방송국을 공백상태로 둘 수는 없는 일이어서

방송국 업무를 이어나갈 그런 임무를 수행할 인사를 방송인들의 의견을 모아

 선임하기로 해서 9월 15일자로 조선방송협회장 이접섭, 방송국장 이혜구님

등을 선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미군이 방송국을 접수했기에 새로

선임된 간부들을 비롯해서 방송인들은  방송국을 떠나려고 했어도

 미 군정은 그럴 수는 없다고 해서 그때 선임된 인사들이

 그대로 임명되어 방송을 이끌어 갔습니다.

 

 

 

 

1945년 10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 보도 내용
 

 

 10월 1일 미국 정부 당사자의 발표에 의하면
조선방송협회 (北緯 38도 이남의 10개소의 방송국을
포함)의 일본인 직원과 과장은 모두 파면되고 새로 조선인이 

취임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 이들 일본인은 고문과 같이

 유임한다. 또 해상방송을 하고 있던 인천 해상방송국을

폐지하고 직원들은 지방체신국으로
전근시키기로 되었다.
 
 방송협회의 조선인 간부는 다음과 같다.
 
會長代理 李晶燮
 
庶務課長 權泰雄
 
總務部長 李晶燮
 
技術部長 韓德奉
 
  

해방 되던때 조선방송협회에 근무하던

직원은 일본인 간자(甘蔗)회장을 비롯해서 모두

1,034명이었고 이 가운데 일본인은 281명이었습니다. 일본인이

 숫자는 적었어도 주요 직책은 대부분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보직을

갖은 우리방송인은 이혜구 제2보도과장과 이정섭 기획과장, 권태웅 총무과장,

 한덕봉 기술과 부과장, 이리 업무과장 신경석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해방된뒤 우리방송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이밖에도

오랫동안 경성방송국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했던 시인 김억,

수필가 김진섭, 이계원님등이 새로운 보직을

받아 방송국을 이끌어 갔습니다. 


 

  
지방 방송국장으로는
 
 
부산 박찬주,  대구 이현택, 이리 허옥, 

광주 엄상선,  대전 김봉열,  목포 진말봉, 

마산 오기영,  춘천 지윤상, 청주 문돈식, 

강능 전영설님이 임명되었습니다. 

 
 
이혜구선생님이 그때 일을 써 놓으셨습니다. 
 
하루는 직원들이 방송국장실에 소집되었다.
그 날짜는 확실치 않지만 10월 16일 이승만 박사 귀국

전이었다. 국장 테이블 뒤에 얼굴이 하얗고 갸름한 미국인 캪트

 “퍼시빌”이 우리를 맞대하고 앉아서 직원의 성명과 경력을 일일이 

묻고 나더니  방송을 종전대로 계속 하라고 지시하였다. 일제시대에

방송에 종사한 직원은 일단 사양하였으나 캪튼은 방송경력을

가진 사람이 안하면 누가 하느냐고 일소에 붙여 버렸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들어 설 때까지 다시

맡기로 하였다. 

 
 

 

 

 

방우회의 지도를 받아 글을 올리는 춘하추동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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