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군정 3년간 실질적인 통치자 존 하지장군 (John Reed Hodge)

이장춘 2011. 8. 4. 08:57

 

 

 

군정 3년간 실질적인 통치자 존 하지장군 (John Reed Hodge)

 

 

1945년 8월 27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받고 준비를 갖추어 그해 9월 8일 미 제24군단을

이끌고 남한에 진주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남한의 실질적인 통치업무를 관장했습니다. 남북분단과 좌.우대립,

어수선했던 해방정국, 신탁통치와 반탁을 둘러싼 우리국민과 미국정부의

 상반된 이해관계, 대한민국 정부수립등 어렵고 힘든 일들을 수행해서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힙 될 수 있도로 뒷바침해서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통치권을 이양하고 1948년 8월 17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서울대학교

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하지장군의 3년간의 예기는 길고 길지만

 뒤로 미루고 그의 군 생활에 관한 얘기를 간략히 올리겠습니다.    

 

 

1946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입니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1일 복간되었습니다.

 

 

존 하지(John Reed Hodge,)장군은
미국 일리노이 주 골콘다(Golconda)에서 1893년
6월 12일에 테어나 1963년 11월 12일에 세상을 떴습니다.
미국 사관후보생학교를 마친 후 1917년에 임관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4년간 육군부의 일반 참모로 근무하는 동안 참모학교

·보병학교·화학전학교(Chemical Warfare School) 등을 졸업했으며

항공참관인 자격으로 항공전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상군 장교 가운데 이 학교를 졸업한 장교는
몇 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태평양전쟁에 참가해서
제25사단의 부사단장으로 복무 중이던 1942년 11월, 12월
과달카날 전선에서 일본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태평양
남서부의 뉴조지아 전투에서는 제43사단의 임시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이 부대를 전투 단위로 조직해서 실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명성을 떨쳤습니다.

 

솔로몬 군도에서의 공격적인 지도력을
높이 평가받아 훈공장(勳功章)을 받았고 1944년 3월
부켄빌 전투에서는 4주일간의 혈전을 치른 끝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944년 4월 1일 제24군단으로 발령을 받아 한국에

 오기 3개월 전인 1945년 6월 오키나와[沖繩]에서 중장으로 진급했습니다.

1945년 8월 27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받아 같은 해 9월 8일

제24군단을 이끌고 남한에 진주해서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남한의 실질적인

통치 업무를 관장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8월 17일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 통치권을 물려주고

포트 브라그로 돌아갔습니다. 그해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6 .25가 일어나자 미국 3군의 참모장을 맡았고,

1952년 야전군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53년 대장으로 예편했습니다.

미국 육군부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부대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방법과

간결한 비망록으로 유명하고, 정글전의 권위자로 인정받았으며,

미국 육군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중장과 장택상(문제안선생님 확인)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