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공개모집 가수 조금자님과 그 노래 / 작가 김영수, 딸 김유미님!
저의 어머니(조금자 趙錦子)는 경성방송국, 중앙방송국, 시절부터 어린이 시간에 노래지도를 하셨고 저희가 대구로 피난 가 있는 동안에도 그 때 서울중앙방송국이 부산으로 피난 갔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에 가셔서 어린이 방송시간 녹음을 하고 오시곤 했었습니다.
그 때, 아버님(김영수)은 동경에 있는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국에 파견이랄까요? 하여튼 정부의 요청 또는 명령으로 가셔서 대 이북 방송극을 쓰셨고 연출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선택된 동기는 제가 알기로는 물론 아버님이 방송극을 쓰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어가 통하는 유일한 작가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어머니에게서 그리고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가 최초의 가수 대회에서 1등 입선, 그건 잘 모르겠지만 당선 되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지금 '만주' 라 불리는 곳에 가셔서 교사로 계셨기 때문에 아마도 그래서 함경도 대표라 되어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우연히, 참으로 우연히 한국 연예계 프로를 보다가 최초의 가수대회 이야기가 나오며 "조금자" 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방송 드라마의 선구자 김영수 선생님과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로 선발된 조금자 여사님에 관해서 재미작가로 또는 교육계에서 널리 활동하고 있는 둘째 딸 김유미님에게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물었더니 위와 같은 답이 왔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노래는 1935년 6월에 콜롬비아 레코드에 취입된 조금자님의 노래입니다. 김영수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제 올려드린 유호 선생님의 글로 가름하고 조금자 여사님에 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끝 부문에 김영수님의 글 안내가 있습니다.
조금자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가수였습니다. 1933년 10월부터 1934년 2월까지 콜롬비아 레코드사 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가수선발 예선을 실시했고 1934년 2월 17일에는 최종결선을 가졌습니다. 경성방송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중계방송까지 실시했던 이 선발대회에서 정일경, 고복수, 조금자 이 세 가수가 최종적으로 선발되었습니다. 3월 13일에는 조금자, 정일경을 대상으로 경성방송국 에서 특별방송을 실시했고 곧이어 레코드가 제작되어 발매 되는 등 그 해와 1935년은 이때 선발된 가수들로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여자가수를 중시하던 콜롬비아에서 뒤로 밀린 남자가수 고복수는 OK레코드 사로 옮겨 손목인 작곡 타향을 블러 힛트 한 이래 가수로 대성했지만 정일경, 조금자는 1935년이 지나면서 조용 해 졌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방송활동을 하던 조금자님이 일본 유학생 김영수님과 마음이 맞아 결혼에 이르고 해방된 중앙방송국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김영수님은 작가로 방송국 직원이 되었고 조금자님은 어린이 노래지도 등에 힘을 기울여 부산 피난 방송 시절을 거쳐 196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 이 글 앞부분에 올린 글을 보내주신 김유미님은 이화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부를 했습니다. 마국에 머물면서 시카고 한국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내시고 재미 한국 신문 방송활동을 하는 등 在美한국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미국에서 장편소설 억새바람 등 많은 저서를 낸 김유미님은 2002년 장편소설 <작가 김영수>, 라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두권의 책으로 엮어 출판했고 그 책을 출판하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그런 아버지를 가진 저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1949년부터 성우활동을 하며 김영수님을 잘 아는 오승룡님은 김유미님이 국내에서 "작가 김영수" 출판기념회을 할때의 일을 인상깊게 얘기 해 주셨습니다. 그런 얘기들은 다음 기회에 또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은 미국의 김유미님이 메일을 보내 오셨기에 함께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들어서 알았지만 이렇게 어머님 노래를 직접 들어보는 건 처음입니다.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그 때 어머님이 가수의 길을 가실 수 없었던 것이, 교육청 (일제 때) 에서 교사는 가수가 될 수 없다고 두 길 중에 하나를 택하라 했다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런 귀한 어머님 노래를 보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김유미 드림
울지 말어요
작사 유도순 작곡 김준영 노래 조금자
지는 꽃 주어 들고 꿈을 찾으며 눈물에 빰 여이는 신세랍니다. 울어서 무엇해요 울지 말어요 운다고 깨진 꿈이 맺허질가요
구름속에 달을 보고 님을 그리며 한숨에 맘 흐리는 신세랍니다. 울어서 무엇해요 울지말어요 운다고 가신님이 돌아올가요.
잊자고 하면서도 내못잊고서 설움에 가슴 타는 신세랍니다. 울어서 무엇해요 울지말어요 운다고 흘러간들 다시올가요
맏딸 나미를 뺀 여섯가족 1963년 반도호텔 현관에서 오른쪽부터 외아들 학중, 아버지 김영수, 김유미, 어머니 조금자, 막내 은미, 셋째 다미.
오늘 사진은 김유미님 홈에서 활용했습니디.
김유미님의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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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jc21th/17780876
빙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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