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최요안 (崔要崔)님과 방송

이장춘 2011. 6. 13. 21:26

 

   

 

 

최요안 (崔要崔)님과 방송

 

 

환도 후 4년 기간에 작품을 많이 쓴 순서로 

이름을 적는다면 최요안, 이석정, 조남사, 김성민, 유호,  

장수철, 박흥민, 한운사, 박화목 등이라 하겠다. 필자 자신의

얘기를   자꾸 쓰기는 안됐으나 수년간 계속한 유모어극장의 약 80%는

日草의   필명으로 필자가 쓴 것을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그 기간에

사극에는  이석정씨가 솔거 황진이등의 가편을 썼고 인기프로

 인생역마차는  전기한 여러 작가들을 비롯하여 박순녀,

김자림 두여류작가가 많이 집필했다. 

 

위 글은 1959년 가을 호 방송지에 게재된

최요안 선생님의 방송문예 15년사에 수록된 글입니다.

 

 

 

 

崔要安! 님이 작가활동을 하던시절

님은 가장 많은 방송 원고를 썼습니다. 방송국

직원이 아니면서도 6.25피난시절에는 KBS 문예계를 

혼자 지키다시피 했고 정식 방송국직원이 아니면서도 오랜기간

KBS문예계장을 하시면서 방송문예의 흐름을 잡아주시던 분입니다.

흔히들 최요안 하면 드라마 작가라고만 아시는 분이 많습니다.

님은 드라마도 중요했지만 방송 전 분야에 걸친 글을

써서 선생님의 영향력은 깊고 넓었습니다.

 

 

 최요안 선생님 활동하던 시절에 함께 할동하시던 분들입니다.  왼쪽부터 박진, 김영수, 최요안. 이보라님입니다.

 

 

최요안 이라는 이름은 일생동안 부른

세례명이고 일초(一草), 함초원(咸草園) 등의 필명을 

사용해서 우리살림, 마음의 샘터, 만필, 유모어극장, 어린이극,

인생 역마차, 단막극 KBS무대, 일일연속극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대북방송 작품에 이르기까지 집필영역은 넓었습니다.

작달막한 키에 가무잡잡한 깡마른 얼굴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최요안선생님은 늘 방송작가실을 지켰고

 KBS 직원들과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친구였습니다.

 

 

 

 

1916년 인천에서 태어난 님은

일본에서 문과 대학을 수료하고 돌아와

해방 되면서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무척 노력을

기울이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8년

 방송국에서 최초로 실시한 작품모집에 응모해서 김희창,

조남사님과 함께 입선했습니다. 그때의 작품은 세뱃돈

이었고 이로부터 중앙방송국 전속 작가가 되었으며

본격적인 방송작가 활동을 했습니다.

 

 

 

 

6.25가 일어났을 때는 방송인들과 함께

 부산 피난길에 올랐고 문예계를 지키며 글을 썼습니다.

해상 이동방송선이 출동 할 때는 그 배를 타고 배안에서 원고를

썼습니다. 님의 작품 중에서 마음의 샘터는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샘터! 전쟁 중 피폐한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참다운

 인간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취지가 청취자의 호응을

크게 얻어 방송가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선생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선생님이 20년 가까운 세월 이끌어온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나가던 프로그램이 세 번으로

 늘어나고 마침내 날마다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으며 청취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상권과 하권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되어 그 시대의

베스트 셸러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읽어야 할

 교양서적이 되었습니다.

 

 

 

 

님이 쓴 대표적인 단막극으로는

주막에서 만난 미녀, 잃어버린 노래, 파랑새의 꿈,

그대 목소리, 돌다리, 이른 봄, 나비의 죽음 등이 있고

연속극으로는 뻐꾹새가 된 처녀들, 옥단춘 등과 다큐멘터리 드라마

최창익의 마지막 그림자, 노랑나비 노랑꽃에 등이 있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 시대 방송인의 가장 영예로운 상 방송문화상이

 제정 되면서 첫 번째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방송원고 뿐만 아니라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 글도 많이 썼으며 많은 저서를 내기도 했습

니다. 마음의 샘터 외에 방송극 연구, 명작 방송극선, 억 만 이의 미소,

나는 돌, 느티나무 있는 언덕. 아파도 웃는다. 등의 저서가 있고 1949년

민성에서 발표한 돌담 모퉁이의 삽화, 1955년 경향신문에 달밤과 의복,

 1956년 현대문학의 평범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1959년 

학원사 은하의 곡, 1961년 제일출판사의그대

목소리 등이 있습니다. 

 

 

 

 

최요안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방송이자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스무고개, 재치문답에 출연했습

니다. 위는 1959년 3.1당에서 열린 운전자의 날 그무고개

특집장면으로 최요안님을 비롯해서 정충랑, 안의섭, 신태민님이

출연했습니다. 한편 최요안님의 누님 최구(崔鳩)여사는 6.25 전

 최초의 스무고개에출연 한 분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59년 연말특집  공개방송에 당대의 명배우 복혜숙

여사와  함께 출연한 모습입니다,

 

 

 

 

 

“방송문예의 계보를 위하여” 라는

 부제를 달아 쓴 “방송문예 15년사”에는 (전기한

 1959년방송지 가을 호) 느티나무 있는 언덕과 도라지 고개의

전설이 방송문예작품의 계보에 오르기를 희망하면서 느티나무는 과거의

연속극이 모두 일률적으로 삼각관계의 애정문제를 취급한데 대하여 부랑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환경과 교육문제를 추궁한 주제의 새 맛을 들고 싶다고 했고

도라지고개는 우리나라의 민속적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해 보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님의 작품의 흐름은

늘 건전성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부산 피난시절에 이동화여사와 결혼한 님은

 세례명을 일생동안 본명으로 사용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줄담배를 피우시며 글을 쓰시던

님은 그 때문인지 단명하셔서 1987년 세상을 뜨셨

습니다. 부인 이동화 여사는 교회 권사로 

활동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요안 선생님 약력

 

 

  1916년  인천 출생 , 일본대학 문과 수료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방송희극공모에 입선  

  1950 년  소설 <의사없는 마을> 

  1949년  소설 <돌담 모퉁이의 삽화> 

   1952년 소설<계절의 절규>  

  1953년  서울중앙방송국 문예계장  

  1954년  드라마 느티나무 있는 언덕,

             별과 얘기하는 소년  

  1957년  제1회 방송극 작가협회상 수상 

  1958년  8월 제1회 방송문화상(문예부문) 수상

           한국방송 협회 부이사장 

  1959년   소설집 은하의 곡 발간(학원사)  

  1961년  소설집 그대 목소리」발간 (제일출판사) 

  1977년  방송공로 대통령 표창 

  2001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  

  1987년  3월 22일 인천에서 별세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방송문예 15년사 1945년부터 1959년까지/ 원로 방송작가 최요안님 유고 

http://blog.daum.net/jc21th/17781630

 

 

 

 

위의 사진은 1948년 3월 KBS가 모집한
희곡모집 심사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연출과장 송영호님, 

심사위원 김진섭님과 윤백남님,방송과장 이계원님이고 뒷줄은 유호,

 김희창,이백수, 노정팔님입니다. 이때 선발된 희곡은 1등 김희창 작 꿈의 공덕,  

2등 최요안 작 세뱃돈, 3등 조남사 작 큰 아버지의 스승, 3등 박창오 허생원

(반야월), 3등 원신연 아 ! 이청춘이 입선이 입선되었고 이 희곡이

방송 되면서 드라마가 활기를 띄었습니다.

 

문학인들과 함께 사진, 앞줄 왼쪽 분이 최요안님이고 가운데 분은 고향의 봄 작사자 이원수님

1957년,  뒷줄 왼쪽부터 김영일, 박홍민, 어효선, 장수철, 이원수, 최요안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