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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적으로 본 어린이와 방송

이장춘 2011. 5. 4. 04:45

 

 

방송사적으로 본 어린이와 방송

  

 

이 땅에서 방송이 나가던 날부터

어린이 정규프로그램은 있어왔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이 시간대별로 고정편성된 것은

1945년 해방된 후의 일이었지만 어린이 프로그램은

일찍부터 고정된 자리에 편성되어 어린이들과  함께 해 오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금 들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는

 해방되고  최초로 편성된 어린이 시간의 시그널 음악으로

방송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노래가

 금지곡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색동회를 중심으로 어린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어린이날이 제정되던 1923년과

이 땅에서 시험방송이 시작되던 1924년은 거의 일치된 시기이고

 정규방송이 나가기 전후해서 어린이를 위한 방송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방정환선생님은 시험방송 프로그램인 1927년 2월 15일 1시 5분 육아 강좌 시간에는

 "어린 아기와 장난감"이 방송되었고 개국일에는 개국 행사로 방송이 안 되었지만

다음날 2월 17일에는 "어린이와 직업"이 방송되었습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전후부터 방송에 연사로 등장한 최초의 인물이고 워낙

말솜씨가 좋았던 님의 방송이 나가는 날이면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로부터 방송에서는 색동회 회원들과

방송국은 인연이 깊었고 방정환선생님이 세상을

뜨신 뒤에도 윤극영, 윤석중, 마해송선생님 등 방송과 인연이

 깊었습니다. 꾀꼬리 동요회, 녹성동요회 등 어린이 합창단이

방송에 자주 등장했는가 하면 어린이 프로그램이 일본에

까지 중계방송 된 일 등 어린이는 나라를 이어갈

일꾼이라는 사상이 뿌리내렸습니다.

 

 

시인 모윤숙시가 방송국의 촉탁직원이 되어 어린이 방송을 시작하던때의

조선일보의 기사입니다. 모윤숙씨는 8,15광복을 방송국 편성과 직원신분으로

밪았고 해방후 UN한국대표로 활약하는듣 눈부신 활동을 했습니다.

 

 

1927년 꾀꼬리 동요회의 노래가 일본전역에 중계방송되었습니다..

 

 

위는 1934년 유기흥선생님이 지휘하는 녹셩동요회가 우리나라는 물런

일본전역(만주등 포함)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고

아래는 1934년 일본에 중계방송된 어린이 시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어린이

 입니다. 유기흥선생님의 회고담을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1940년대 어린이 방송이 다소 위축되었어도

어린이 방송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시인 모윤숙여사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아서 방송하던 때가 1940년대부터 이고

유명한 항일단파방송 독립운동의 핵심인물이던 양제현 아나운서와

깊은 인연을 맺고 방송국에서 단파수신기로 해외방송을 듣고

독립 운동가들에게 전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도록 한 송남헌 선생님의 경우도 다 어린이

 방송에서 연유되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의 방송국에서 어린이 방송은

한층 더 활기를 띠었습니다. 우리나라 편성의 틀을 확립한

송영호 선생님은 어린이 방송이 중점을 두고 편성 제작에 임했습니다.

1945년 10월 편성에서 15분간의 어린이 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일제 강점기에

금지되었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시그널로 씩씩한 동요와 홍은순, 정규완, 

최선완님등이 재미있게 엮어가는 동화에 어린이 새 소식 등  다양한

내용이 방송되어 인기 프로그램이 되면서 1947년

10월 편성에서는 시간이 30분으로 늘었습니다.

 

 

 

 

일제 때부터 노래를 불러 일본 전역에까지

중계방송된 적도 있었던  현금봉, 작가 김영수의 부인

조금자, 그리고 조성녀, 박은봉, 김혜경, 김장숙, 김천님 등이

노래지도등 어린이 방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1946년에 방송국에

들어온 배준호님은 어린이 방송에 전념했고 이때는 봉선화동요회,

꾀꼬리동요회, 종달새동요회등 이름도 예쁜 동요 합창단들이

KBS에 출연해서 합창도 하고 동요도 보급하는 등 여러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어린이 프로그램이

활기를 띠었습니다.

 

 

 

 

1947년 KBS가 3.1절 어린이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안병원선생님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의뢰해서 작사 작곡된 (직사는 안병원님의 선친 안석영이 작곡은 안병원) 

노래를  안병원이 지휘하고 권길상이 반주한 봉선화 동요회가 노래를

 불러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때 불렀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민족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KBS어린이 합창단 창립을 서둘러

 덕수 초등학교 김순흥선생님이 지휘하고 이화여대

학생 최선자가 반주를 맡은 KBS어린이 합창단이 1947년

 9월 1일 창단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린이 합창단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이 글을 읽으신 다음 안내된 주소 따라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때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동요시간은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린이들은 방송에 나오는 새로운 동요를 따라 부르면서

 새로운 동요들이 많이 보급되었고 방송출연을 원하는

어린이들도 많아져 방송에 출연, 노래솜씨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를 사시던 많은 분들의 머리

자리 잡고 있을 연속동극 똘똘이의 모험도 이 무렵부터

방송 했습니다. 똘똘이 모험은 소년들이 쌀 모리배, 도둑,

소매치기 등을 잡는 내용으로 엮어져 내용이 바뀔 때마다

인기를 모았습니다. 구연으로 엮어지던 동화역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재미있게 듣던

 프로 그림이었습니다.

 

 

 

 

해방 후 어린이들의 친 누나 보다도 더

다정스러웠던 호기수 아나운서나 1954년 누가 누가

잘하나 프로가 생기면서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아 정열을 쏟은

 강영숙아나운서, 해방되면서부터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에 적극 출연하신 

홍은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 좋은 동요를 작곡하시고 어린이 노래회를

지도하다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게된 안병원님, 편성이나 방송책임을

 맡으면서 무었일 까요. 등의 원고를 써주신 노정팔님, 종달새

 노래회를 운영하다가 배준호님에 이어서 1954년 방송국

어린이시간을 맞게 된 한용희님이나

 

 

 

 

1956년부터 프로듀서를 지낸 김명희님,

1957년에 방송국에 들어와 오랜 기간 어린이와 함께

생활한 박인채님 등 어린이 방송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신 분들

입니다. 1950년대 강영숙님과 더불어 김인숙, 장금자, 문복순 아나운서가

어린이 공개방송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면서 널리 알려졌고 1950년대 1960년대

윤미자, 송경원 아나우선 등 어린이 공개방송을 하던 아나운서는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잘 알려졌습니다,

 

 

 

 

 

관련글 더 보기 

 

KBS어린이 합창단의 어제와 오늘

 http://blog.daum.net/jc21th/17780324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와 봉선화 동요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23

 

해방후 최초의 인기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 

http://blog.daum.net/jc21th/17780797

 

 

 

 

위는 정동방송시절 어린이와 함께 한 강영숙아나운서이고

아래는 장금자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어린이 합창단 방송 모습입니다.

 

 

  

위는 한용희 PD 와 강영숙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누가 누가 잘하나 공개방송입니다.강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새야 새야 파랑새야.mp3

 

새야 새야 파랑새야.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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