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임택근 아나운서시절, 인기 여성 아나운서 강영숙과 예지원

이장춘 2011. 5. 3. 04:23

 

 

임택근 아나운서와 인기 여성 아나운서 강영숙 & 예지원

 

 

임택근 아나운서가 활동하던 시절에

아름다운 목소리와 재치로 오랜기간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여성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강영숙

아나운서입니다.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이름있던 여성아나운서

세 사람을 꼽으라면 이옥경, 호기수, 강영숙 아나운서를 듭니다.

이옥경은 우리나라 방송이 처음 나가던 때,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없던 시절에 이나라 최초의 아나운서로 방송 전파에

 목소리를 실으면서 청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때로는 신비한 존재로도 받아 드려졌습니다.

 

 

 

 

호기수 아나운서는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전후 홍일점 여자 아나운서로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미모등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아나운서가 1950년대,

60년대 여성아나운서, 오늘 얘기하는

강영숙 아나운서입니다.

 

 

 

 

위는 KBS시절 아나운서실에서 강영숙, 임택근, 강잔선 아나운서가 함께한 사진이고

아래는 MBC시절 1967년 대통령선거 개표 실황 중계방송을 하는 임택근, 강영숙 아나운서입니다.

 

 

 

임택근(1951년 부산피난시절 입사)보다는

3년뒤인 1954년 부산피난길에서 돌아온 후 최초로

실시된 KBS 아나운서 공개채용에서 방송국에 들어온 강영숙

아나운서!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아나운서로 부상하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인상에 남는 프로그램이 무었이냐? 고 물으면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공개방송이라고 합니다. 방송시작을

어린이 공개방송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런가 봅니다.

 

 

인천 창녕국민학교에서 어린이 공개방송을 진행하는 강영숙 아나운서입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로 들어오면 처음

몇달간은 앉아서 연습만 하던 시절에 천성적인

아나운서 재능을 타고난 강영숙 아나운서는아나운서

 생활을 시작 하면서부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린이 방송은 물론이지만  대북방송을 포함한

KBS 전 체널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은방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도 쉴사이 없이 일을 했습니다.

여성 아나운서는 결혼을 하면 방송국을 그만두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방송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난 강영숙은

 달라서 3형제를 두고도 방송을 계속했습니다. 당시 방송국의 최고

 책임자였던 오재경 공보실장 (부를때는 장관이라고 불렀음)은

강영숙의 결혼을 스스로 주선하면서 방송국에 계속

남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강영숙 아나운서였지만 3형제를 둔

어머니로서 가정생활도 중요했기에 KBS에서

퇴직을 앴습니다. 그런데 그때 새로 발족한 MBC에서

강영숙을 그대로 노아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MBC의

문을  드나 들었습니다. MBC가 개국된지 얼마 안되어서

일입니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방송부장으로

 MBC에 간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MBC에서도 모든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 그것도 1964년 도오꾜오 올림픽의

대형 중계방송 마이크를 잡았으며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실장을

지냈습니다. 1970년대, 최초의 여성국장급 아나운서,

국장급 해설위원이 되었습니다. 

 

 

남산에 있던 어린이 회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여사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67년부터 여류방송인 클럽을 운영하고 있던

강영숙은 여류방송인들과 함께 청와대도 방문하고 또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여사와 친분을 쌓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 MBC의 해설위원이 되면서 시간의 틈을  내어 초대, 2대 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내기도 하던 무렵 우리나라 예절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육영수여사가 예절교육을 담당 할 수 있는 민간인 기구를 구상하면서

강영숙 아나운서가 그 뜻을 받들어 예지원을 창설하고

 예지원 원장에 취임했습니다.

 

 

 

 

이때부터 예절교육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당시의 김종필 국무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와 3부 요인

부인들을 비롯해서 영향력있는 여성지도자들이 이 예지원에

들어와 예절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의 예법을

잘 모르던 때라 해외에 나가는 인사들은 예지원에서 예절교육을

 받고 나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외국인도 이 예지원에서 교욱을

감명을 받은사람도 있습니다. 예지원이 창설된 지 37년이 된

오늘 해외 외국인을 포함해서 30만 념는 인사들이 예지원에서

 예절교육을 받았고 그분들은 예지원 회원으로 전국에서

국민적인 예절교육의 선봉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과 예절교육을 겸비한 강영숙

예지원 원장은 예지원 일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회활동도 개을리 하지 않습니다. 1931년에 테어 나셨으니

올해 81세지만 연세와는 관계없이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즈음도 중요한 표창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2009년부터 실시된

 방송통신 위원회 첫 해의 방송대상 상식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는가 하면 작년(2010년) 3월에는 대한무궁화 중앙회가

 주최하는 19회 무궁화대상 시상식에서 장한

어머니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임택근, 강영숙 아나운서 성우 구민 장서일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아나운서 전성시대, 지난세기 50년대,

60년대, 아나운서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임택근 아나운서와 비슷한 시기에 여성 아나운서의 대명사

 강영숙 아나운서가 있었고 그 강영숙 아나운서는 예지원을 창설한지

37년 세월 이 나라 예절교육의 중심인물이 되어 지금도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신 가운데 후배들의

삶의 지표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글이 있습니다.

 

 

예지원 바로가기

http://www.yejiwon.or.kr/ 

 

 

아나운서 강영숙 그때 그얘기와 예절교육

http://blog.daum.net/jc21th/17412886

 

 

 

 남산으로 옮기고 첫해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보면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아나운서가 함께한 사진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