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호님 ! 방송 마이크 앞에서, 연극 무대에서 보낸일생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방송과 연극, 영화에서 동시에 얼굴을 들어내며 국민과 희노애락을 같이 한 사람은 없으리라. 1947년 아직 성우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 KBS 서울 중앙방송국의 전속 연기자가 되어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해서 뒷날 KBS 성우특기 라고 불려졌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극무대에서, 영화에서, TV방송에서 국민들과 친한 벗이 되어 국민배우라고 불려진다. 1924년 9월 29일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27년에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조선배우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에 해방된 후의 방송국 첫 번째 연기자 모집에 응시해서 방송국에서 봉급을 받는 전속 연기자가 되어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똘똘이 모험으로부터 연기생활이 시작되었다.
1956년, 처음으로 방송된 멜로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주역 나기사역을 맡아 김소원, 정은숙, 윤미림 등과 더불어 안방을 파고들면서 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이 무렵 날마다 방송되던 연속낭독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의 목소리는 청취자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침시간 6시 40분에 날마다 방송되었던 삼국지는 무려 370회가 방송되었고 김래성이 쓴 청춘극장 박종화의 金彩의 피, 삼국유사, 서유기 김성한의 이성계 등 오랜 기간 청취자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그때는 생방송으로 방송하던 때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누구보다도 방송국에 일찍 출근해야 했다. 그 방송이 안 나가면 안 되어 몸이 아플 수 도 없는 세월을 보냈다. 방송과 더불어 초인적이 되었다.
위 사진은 꽃피는 팔도강산을 녹화 하기위해 포항제철에 들려 박태준 회장님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고 아래는 2006년 11월 포항제철의 초대를 받고 포스코를 방문했을때의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그때의 담당 PD 김수동, 작가 윤혁민, 출연진: 최정훈, 황정순, 최은희, 장민호, 이향자님.
1956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HLKZ-TV방송이 실시되면서 시작된 TV방송 무대에 그 모습이 나타난 이래 KBS-TV 대형 프로그램에서도 그의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다. 1958년 당시 방송인으로 가장 영예로웠던 제 1회 방송문화상을 받았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성우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1970년부터는 성우협회 명예회장으로 있다.
그의 오랜 연극 연기생활은 TV연기자로서의 역할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님의 연극은 1950년 국립극단 전신인 극단 신협에 몸담은 이래, 국립극단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170 여 편의 연극 주연을 맡았고 올(2011년) 3월에는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극장 3월의 눈에 주연을 맡아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69∼71년과 79∼90년 두 차례 국립극단장을 지냈고 1986년에는 연극부문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님의 연극생활에서 파우스트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국내 초연이었던 66년과 이해랑 선생이 연출한 74년, 한독수교 1백주년을 기념했던 84년까지 님은 '파우스트' 주역을 도맡았고 1997년의 파우스트는 국립극단의 176번째 정기공연으로 님의 연기생활 50주년 기념공연이기도 했다. 그의 파우스트 연기는 원로배우의 시든 연기가 아닌 깊고 진한 연기였다. 님은 ‘파우스트 장‘으로 불릴 만큼 파우스트와는 인연이 깊다.
연극생활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극을 든다면 6·25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사랑 이야기를 그린 유치진 선생의 '한강은 흐른다.'와 사극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은 '남한산성'이 가장 좋다고 했다. 님이 방송과 연극, 영화 등 대한민국 연기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일생동안 쉼 없는 노력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님이 오래전에 한 얘기 한 토막을 옮긴다.
“나는 열심히 노력 해 왔습니다. 남들이 쉴 때 대사를 한번이라도 더 외웠습니다. 내가 받은 역할이 적다고 소홀히 여긴 적도 없습니다. 큰 역할이건, 작은 역할이건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 습니다. 나는 언제나 남이 하는걸. 주시하며 좋은 점을 배웠습니다. 내가 저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연구하며 내가 지금 저 역할을 한다는 생각으로 보고 배웠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님의 약력으로 가름합니다.
경력 사항
1947 ~ 서울중앙방송 전속배우, 성우 1950 ~ 극단 신협(국립극단 전신) 단원 1969 ~ 1971 국립극단 단장 1966 ~ 1970 성우협회 이사장, 명예회장 1968 ~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이사 1970 ~ 성우협회 명예회장 1970 ~ 1991 한국연극협회 이사 1977 ~ 1984 방송연기자협회 명예회장 1978 ~ 국립극단 단장 1978 ~ 국립극단 지도위원 1986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연극) 1993 ~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 1998 ~ 현 국립극단 원로단원 2005.11 ~ 제1회 명작코미디페스티벌 집행위원장 2011. 11. 2 88세로 별세
상훈 사항
방송문화상/1958 서울시문화상/196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상/1974 국민훈장목련장 예술원상 예술문화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 상(남자부문)/1995/한국방송협회 SBS연기대상 공로상/1996.12 올해의 배우/1997.12/한국연극배우협회 제21회 동랑 유치진 연극상/1999.4 한국토목문화대상(문화부문)/2010.1/대한토목학회 제20회 이해랑 연극상 특별상/2010 제20회 호암상 (예술상)/2010.6/호암재단 은관문화훈장/2010.7
작품 [연극]
선주 모세(데뷔작)/1947 마리우스/1950 붉은 장갑/1951 목격자/1952 줄리어스 씨저/1954 욕망이라는 이름에 전차/1955 세일즈맨의 죽음/1956 인생차압/1957 한강은 흐른다/1958 대수양/1959 죄와 벌/1960 밤으로의 긴 여로/1962 햄릿/1962 북간도 환절기/1968 성웅 이순신/1973 남한산성/1974 파우스트/1977 세종대왕/1981 제 3의 신/1983 안톤 재홉의 봐냐 아저씨(연출)/1983 비몽사몽/1986 들오리/1987 팔곡병풍/1988 간계와 사랑/1989 유치진의 소(연출)/1991 파우스트/1997.11 햄릿/1998.4 대한국인 안중근/1998.10 아큐정전/국립극단/1999.4 무의도 기행/국립중앙극장 소극장/1999.6 운상각-구서방역/국립극장 소극장/1999.11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2001
장민호님이 자랑으로 삼는 1958년의 작품 유치진선생님의 작품 "한강은 흐른다"를 끝내고 국립극장의 전신이던 시공관에서 출연진이 함께한 사진입니다. 전세권님이 제공한 사진으로 전세권님을 비롯해서 이해랑, 장민호, 박상익, 강계식, 조향, 한은진, 박암, 김형중, 황정순님등 이름있던 배우들이 많습니다,
1959년에 활동하던 성우 장민호님을 비롯해서 복혜숙, 이혜경, 구민, 오정한,박용기, 이향자, 윤미림, 박병호, 심영식, 고은정, 최옥경, 장서일, 김소원, 고은정, 김정옥, 주상현, 박순옥, 김수일, 유병희, 박신우, 남일우, 오승룡, 이창환, 최길호님 등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광복 20년 사진 왼쪽부터 해설 장민호 탁원재 오필탁, 효과보는 분 이종구님 제공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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