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던 때 일본인 홍일점 아나운서 고가 도에 (高賀 登惠)
1940년 22살의 나이로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를 시작해서 전쟁중 활동한 고가 도에는
최후로 남은 일본인 홍일점 여성 아나운서였습니다.
울음으로 일본 패망을 맞이하면서 몇일 후 우리나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 중에 약혼남이 시배리아에 끌려가
소식이 없어 일생동안 홀로 살아왔습니다. 2차대전 후 일본에
새로 생긴 방송국 등 언론기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서울
서대문 국민학교를 나온 고가님은 지금도 동경에서 어릴
때의 국민학교 동창생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동창회
애는 100여명이나 모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학교를 나오고
아나운서생활을 통해서 첫 직장의 인연을 맺은
고가 아나운서는 늘 우리나라를 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1977년 조방회 회원들과 함께 32년만에 우리나라에 와서
옛 경성방송국 터와 신당동 옛날 살던 집 터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었고 다음해 1978년
에도 우리나라를 찾았습니다.
1987년 방송 6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방우회가 새운 첫 방송터 유허비
준공식에도 경성방송국을 최초로 세운 시노하라 아들
시노하라 요이지 부부와 함께 참여해서 옛 동지들을 만났고
여러곳을 돌아 보았습니다. 그가 남긴 경성방송국 재직 때의
간단한 회상기와 첫 방송터 유허비 참여 소감을
담은 기록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덕근, 고가 도에, 송영호님입니다.
왼쪽부터 고가 도에, 이인관, 시노하라 아들 부부, 신상운님입니다.
위는 유병은님과 고가 도에님이고
아래는 도가 도에, 이현, 이인관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근무하던 일본인
방송인들이 1972년부터 모임을 가졌던
조방회 (2007년 해산)에도 적극 참여했던 고가님은
지금도 우리 방송인을 만나면 옛정을 되새기며 친절을 배풀기도
합니다. 2009년으로 90을 넘기면서 기력이 많이 쇄진하고
시력이 감퇴되어 활동이 어렵다고 합니다. 한국을
한번이라도 더 다녀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하다면서도 여의치를 않은가 봅니다.
우리 방송인과 교류가 잦아 비교적
자료가 많습니다. 특히 방우회 정항구 이사님과는
내왕이 자주 있었고 2008년 12월에도 고가가 살고있는
미야자키에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2008년
12월 15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석간에 실린 다음 글은
방우회 정항구이사님이 구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정항구 이사님은 2010년에도 세차레나
방문해서 여러 얘기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고가
(高賀)님이 방우회 정항구 이사님께 사진과 함께 편지도
보내 오셨습니다. 연세 많으셔도 필체는 예나 다름 없으시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나오신 고가님의 동창생들이
도꾜에서 동창회를 연다는 소식이 적혀있습니다.
참고로 동영상 한편을 연결했습니다.
영문자 주소를 믈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동영상, 일제강점기 한국에 있던 일본 방송인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167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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