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임택근, 황우겸, 강찬선 / 1951년 입사 동기 아나운서

이장춘 2011. 5. 11. 03:07

 

 

 

임택근, 황우겸, 강찬선 / 1951년 입사 동기 아나운서

 

 

6.25 포성이 울리던 1951년 9월

부산 피난시절의 KBS에 임택근을 비롯해서

황우겸, 강찬선, 이수열, 정순형 (여, 정순향) 다섯

사람의 새로운 아나운서가 방송국에    들어왔습니다.

6.25를 맞아 방송에 경험이 많은 선배들 가운데 이계원,

민재호, 홍양보, 윤용노, 전인국, 위진록, 김유선 등 경험있는

 아나운서가 남북 당하거나 VOA, VUNC로 옮겨 방송국에는

 윤길구, 서명석, 장기범, 최승주 등 아나운서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던 때였습니다.

 

이때 들어온 아나운서 중에서 얼마 안 있어

방송국 생활을 접고 의사가 된 정순형 (정순향)

아나운서를 제외하고는 유능한 방송인으로 오랜 기간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임택근, 강찬선 아나운서는

 본 블로그에 여러 편 글을 올렸고 이수열 아나운서는 부산

 MBC, 서울 MBC, TBC 동양방송 창설요원으로 활약

하면서 아나운서 현업은 멀어졌기 때문에 오늘은

황우겸 아나운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와 강찬선 아나운서의 글은

이 글 끝 부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황우겸 아나운서는 1951년 아나운서가

된 이래 약 10년에 걸쳐 뉴스나, 스포츠 중계방송,

공개방송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KBS가 TV방송을

시작하던 때 제스처 게임의 사회를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0년대를 사시던 분들은 황우겸 아나운서의

야구 중계방송이나 스타탄생의 공개방송

목소리를 기억하십니다.

 

 

 

 

야구중계방송은 6.25전부터 윤길구

 아나운서가 해 왔지만 방송 간부가 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야구선수 출신이기도 한 황우겸

아나운서가 중계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야구중계방송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황우겸 아나운서가

 스포츠 중계방송은 오직 야 구중계방송에 전력투구, 한 우물을

 파다시피 해서야구 중계방송의 대명사 처럼 불렸고 뒤에 박종세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방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톤을

이어주었습니다. 야구 중계방송은 국내 방송도 많이 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아세아 야구대회 중계방송이 황우겸

아나운서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1955년 마닐라 대회와 1959년의

동경대회가 바로 황우겸 아나운서의

중계방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대회에

대해 황우겸 아나운서의 기록이 있어

 이 글의 끝 부문에 올립니다.

 

 

 

 

스타탄생은 1957년 10월에 신설되어

 1960년까지 이어진   프로그램으로 사회는

황우겸 아나운서의 전담프로가 되어이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스타탄생이라면 황우겸을 연상 할

 정도로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스타탄생은 마이크 앞에

 나와 연기를 해보고 싶은 신인들을 뽑아 기성 배우들과 함께

드라마를 엮어가는 30분 프로그램으로 세토막의  7-8분정도 

프로그램을 엮어서  진행하던 프로그램 이었습니다.스타탄생의

 게스트 스타로는 복혜숙, 박상익, 노경희, 이향자, 구민, 주상현,

오정한, 김상운, 이혜경, 박순옥님등이 번갈아 출연 해 셨고

 PD는 김규대, 진창근, 윤용중님등이 맡아 주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1959년 연말특집 스타탄생 노래경기

 장면으로 황우겸 아나운서의 모습이 보입니다.


 

 

 

 

집념이 강했던 황우겸 아나운서가

공개방송은 스타탄생으로 일관했고 스포츠

중계방송은 야구 한 우물을 팔 정도로 집착력을 가져

 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외

 활동도 활발해서 J.C활동도 활발히 벌렸고  80이 훨씬 넘으신

 오늘날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신가 봅니다.  젊은 시절부터  

조화로운  체격에 언제나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어

말쑥한 모습으로 지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부산 피난시절인 1952년에 부산방송국 앞에서

촬영한 아나운서들의 모습으로 황우겸 아나운서와

 함께 입사한 임택근, 강찬선, 이수열, 정순형(정순향)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윤길구, 서명석, 장기범,

한희동, 양재현 등의 아나운서의 모습입다.

 

 

방송 1959년 가을 호에 계재된 황우겸 아나운서 글입니다.

 

 

제2회 야구대회 (1955년 12월)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 시는 먼 곳이기 때문에 관연

 내목소리가 국내에까지 들릴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었다. 경험이 없는데다 전파에 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아나운싱을 잘 하려는 욕심 때문에 내 목소리가

고운 상태로 수신될 수 있을까. 가 걱정되어 처음 등장하는

국외서의 중계방송에 소리를 너무 크게 질렀었다. 더욱이

 경기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진전된 4개국의 희비 얽힌

 장면 묘사에는 흥분 안 할 수가 없었고 민족

의식을 북돋우느라 냉정을 찾지 못하고

마구 큰 소리를 질렀었다.

 

후에 생각 해 보니 잘한 중계방송은

못된듯 해 웃음이 절로 났다. 마닐라에는

 윤길구 선배를 모시고 갔기 때문에 안스럽지

 않았지만 기후와 음식이 맞지 않아서인지 그곳에

 도착한 날부터 병석에 눕게 되었다. 물론 윤길구 선배

혼자서도 중계방송을 잘 할 수는 있었으나 외국에서

 중계라는 책임감 때문에 나는 연방 주사를

맞아가면서 방송을 하게 되었다.


정신 차릴 사이 없이 접전하는

 우리 대표 팀과 필리핀과의 대전 때

 우리 대표 팀이 리드 하다가 역전 당하기를

 서너 번……. 분통한 장면이 연이어 전개되지 않은가.

가뜩이나  몸이 아파 짜증도 나는데  우리 선수들이 

 공연한 실수로  역경에 빠지게 되니 그 순간 메모하던

만년필을 나도 모르게 휙 내 던져 버렸다. 국제

경기의 경험이 없었던 경솔함이었다.

 

그러나 제3회 아시아 경기대회

 (1959년 9월 동경) 때는 4년 전 미흡했던

 점들을 무난히 해 낼 수 있었다. 그 예로 동경 대회

 때는 거리가 가깝다는 요인도 있었지만 내가 중계하는

것이 곧 송파 되는 것을 수신하면서 방송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닐라 대회 때처럼 목소리를 높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았거니와 마이크 감도 조절을

 생각하면서 아나운싱 할 여유도 있었다.

 

또한 마닐라 대회 때는 승패에만

주안을 두어 감정에 휩쓸린 흥분상태였으나

 동경대회에서는 20대 1이라는 큰 차로 입본에게

참패당할 때도 아나운서로서 끝내 감정을 사로잡히지

 않고 침착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역시 경험이 말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 경기에 우리 팀이 일방적으로

 압도당해 패해가는 께임 내용을 중계 할 때는

아나운서의 심리도 무척 비참하고

괴롭기만 했다.  


 



1957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박종세, 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아나운서 한길로 살다가신 강찬선 님, 강창선, 강창성, 외교관 강경화

 http://blog.daum.net/jc21th/17780891

 

강경화 외교부장관 지명자 삶과 인생역정

http://blog.daum.net/jc21th/17783175


아나운서 임택근

http://blog.daum.net/jc21th/17783161

 

멜번 림픽과 임택근 아나나운서 방송추억 

http://blog.daum.net/jc21th/17780286

 


 아나운서 강찬선, 부산방송 피난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61

.

 아나운서 강찬선의 평양방송시절부터 그 일대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079

 

아나운서 강찬선의 평양방송시절
   
 강찬선 아나운서 VOA재직과 그때 그시절 회고록

 

 

부산 피난시절의 강찬선 아나운서


강찬선, 이현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



 1.송석두, 2.이현숙, 3.문복순  4.강찬선, 5.민병연, 6.송영필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장기범아나운서가 보도부문의

제1회 방송문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시상식이 끝난후 장기범 아나운서와 1.최계환,

2.강익수, 3.김인숙, 5.윤길규 방송과장, 7.문복순,

8.민병연, 9.강찬선, 11.이규영, 12.황우겸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64년 강찬선 아나운서가 VOA파견 아나운서로

 떠나던때 김포공항에 환송나온 아나운서왼쪽부터 한사람

건너 김주환, 한사람건너 김정자, 전영우, 임택근, 강찬선,

 송한규 그리고 강경화 양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한 사진.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으로앞줄 왼쪽부터 송영필, 강익수,

장기범, 임택근, 박종세, 최세훈, 이규영, 강영숙, 전영우,

 황우겸, 유석춘, 강찬선, 김동만, 최계환, 최두헌, 문복순, 장금자,

 유창경, 김준철, 최만린, 이현숙, 윤영중, 조영준, 이본, 이광재,

한경희 아나운서이고 아래는 1959년 강찬선 아나운서

 지휘를 합창을 하는 아나운서들입니다.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이수열은 1

951년 동기 아나운서다 왼쪽부터  이상만,

황우겸, 임택근, 강찬선, 문시형, 이수열,

흥안, 조부성. 김영우님이 함께 한 사진




KBS 직장 농구팀이었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송석두, 한영식, 윤길구,

장기범, 강찬선, 김석야, 황우겸, 임택근

으로 구성된 팀으로 윤길구 아나운서

주장이었다.

 

제 48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황우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방우회 한영섭회장님 김기호,

조부성, 정항구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우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