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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돌다리의 옛 사진과 사연들을 모아

이장춘 2010. 10. 17. 20:35

 

 
 
청계천 돌다리의 옛 사진과 사연들을 모아 
  
 
광   통   교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로 경복궁-
육조거리ㅡ 종루ㅡ 숭례문으로 이어져 남북대로를
연결하는 도성 안 중심통로였고 그 주위에는 많은 상가들이
 있어 서울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습니다. 

 

 
닭과 계란을 파는 가게, 갓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대나무를 파는 가게, 갓을 파는 가게, 부인의 머리 장식을
파는 가게, 부인들의 패물과 가락지 등을 파는 가게, 신발을 파는 가게,
물감과 중국 과실을 파는 가게, 칠목기와 장롱을 파는 가게, 잔치 때
 그릇을 세놓는 가게, 채소를 파는 가게, 솜을 파는 가게, 말총·가죽·
초·실·휴지·책 등 잡화를 파는 가게, 말안장·등자·굴레 등을
파는 가게, 서화와 책을 파는 가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네거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있고 조선시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큰 다리였으므로  대광통교(大廣通橋)
라고도 했습니다.
 
아래 영분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사항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상의 얼이 새겨진 옛 정능의 청계천 돌다리 광통교
 
 
 
 
 
수    표   교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사이청계천 위에 놓여 있던 다리로
홍수를 방지하기위해 수심을 측정하는 수표석주
(手標石柱)를 세웠는데 이 지주는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세종기념회관 뜰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위는 보물 838호로 지정된 수표석주(手標石柱)이고
아래는 수표교와 함께 촬영된 사진입니다.


 

 

아래는 장춘단 공원으로 옮겨진 뒤의 수표교 입니다.
 


 
  
 
장     교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입니다. 
 이 일대는 일찍부터 도성 안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중앙과 지방 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 보던 경주인(京主人)들의
 본거지였습니다.

 

 


 
 
  오  간  수  교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로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된
 구멍을 만들었고, 그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해서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한 다리입니다.
  
  동대문 옆의 오간수문은 물길이 잘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다리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했고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도 이곳으로 났습니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면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밖에 청계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립니다.
 

 아래사진은 일제 강점기 경복궁 동편에 옮겨진

공화문인데 청계천에 걸려있는 이 사진을 감상 하시던 분들이

자하문이라며 얘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이 사진의 사연을

설명했더니 숙연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안기영 그리운 강남 독창.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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