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TV방송 창시자 황태영님의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이장춘 2010. 10. 5. 20:40
 
 
 
 TV방송 창시자 황태영님의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천재 방송기술자 황태영!
그에게도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의  
회오리바람은 불어 닥쳤습니다.   이리 방송국
기술과장으로 있던 황태영님은 스스로 제작한 두대의
단파 수신기로 서울과 이리에서 해외방송을 들었다고
 경찰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100엔의  벌금형을
받으면서 풀려 닜지만 방송국에서는
물러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방방송국에서 방송은 기술과에서
실시하던 시절이라 기술과와 업무과만 있던 때에
지방 방송국 중에서 유일하게 기술과장과 업무과장
(신경석 )이 한국인이어서 유난히도 감시의 눈초리가
심했고 그로 인해서 직원7명이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황태영님이 낸 벌금 100엔은
쌀 15가마니 정도 되는돈이라고 하는데
없이 살던 그 시절 ! 쌀이  재화의 기본이 되던
시대에 지금의 쌀 15가마니와는 가치
기준이 달랐던 시절입니다.  
 

 

  
 
황태영 ( 黃泰永 )님은 1915년 2월 5일
 平安南道 大同郡에서 태어나 평양 고등 보통학교를
나온 후  일본으로 건너가 日本濱松高等工業學校를
 거쳐 지금의 시즈오카 공과대학의 전신인
濱松高工를  나오셨습니다.
 
이 학교 2학년 때부터 단파수신기를
만드는데 열중 하셨고 1933년에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아마추어 무선국을 세워 체신성의 정식 허가를 받아 운영하다가
1935년 우리나라에 돌아오면서 반납하셨습니다.
 
 
1935년에 21살의 젊은 시절 경성방송국에 들어와
연희송신소 50Kw설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 50Kw송신기는 중국에 이어 아세아에서는 두 번째로 설치된
것이었습니다.   이 50Kw송신기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리방송국 기술과장으로 가셨습니다.  손수 단파수신기를
만들 수 있었던 황태영님은 두 대를 만들어 연희송신소
사택에서도 듣고  이리방송국에서도 듣다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일로 황태영님은 방송국에서 물러나신 후
 朝鮮通信機械製作所를 스스로 경하셨고 6 . 25가
일어난 뒤에는 韓國電氣工業株式會社를 경영하시면서
미국 RCA대리점을 하셨습니다.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을 창설하셨습니다.이때까지 오랜 세월걸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지만 워낙 일직부터 일을
 하셨던 분이라 이때도나이 42세의
젊은이였습니다.
 
 
 
 HLKZ-TV에서 손을 때신 후
다른 사업을 하셨고 방송인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1987년첫 방송 터 기념비를  세울 때나
1991년 단파방송 연락운동을 기념해서 물망비를 세울 때
여러 가지 협조도 있었습니다. 님은 2000년
무렵 세상을 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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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1)

 

 

 

 

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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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본 최초의 TV방송국 HLKZ 그때 그빙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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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최초의 TV방송 HLKZ 1956년그때 그 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121


우리나라 TV방송 창시자 황태영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300

 

 

TV방송 창시자 황태영님의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http://blog.daum.net/jc21th/17780560

 

 

 

 

 

최초의 TV방송국 HLKZ사옥에 얽힌 사연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님과 방송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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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역사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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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후회 이사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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